‘이 여자는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싶어 했던 것들은 쉽게 다가오지 않고, 익숙하고 좋아하지만 주변에서 만류하는 것들이 자꾸 내게 들붙는 것만 같던 어느 날, 내 시선의 끝에 작가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가 와닿았다. 그 유명한 프랑스의 ‘아름다운 시절 Belle Epoque'을 살았던 여자. 작가였고 댄서와 배우였으며 공쿠르 아카데미 회장이었으며 자신의 장례식이 프랑스 국장으로 치뤄진 여자. 남자들이 지금보다 더 어깨에 힘주고 목소리 높이던 그 시절에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여자,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그녀의 삶과 그녀의 글과 그 사이를 관통하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녀의 그 ’무언가‘가 내게도 해결책이 되어줄 것만 같다는 기대로.
‘나’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 두 번의 결혼을 경험하고 사랑으로부터 지쳤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삶을 살기 위해 프로방스 바닷가, 사람들 사이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집일까?’
여자들은 행복한 사랑을 해본 횟수만큼 많은 고향을 가지며, 사랑의 고통이 치유되는 하늘 아래서 매번 새로 태어난다. 그렇다면 소금기 어린 이 푸른 해안, 토마토와 피망을 먹으면서 더없이 행복할 수 있는 이곳은 이중으로 나의 고향이 된다. 얼마나 큰 호사인가! 그것도 모른 채 얼마나 긴 시간을 보냈던가! (p.19)
이 한가로운 곳에서 얻은 소박한 행복은 별다른 것으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불행한 ‘나’를 연민하며 바라봐 주던 고양이들과 개들, 프로방스의 대자연에 순종하며 우아한 게으름을 즐기는 이웃 사람들의 방문이 전부다. 그리고 그 이웃 중에는 비알, 엘렌 클레망 같은 젊은이들도 있다. 서른 대여섯 쯤의 나이인 비알은 균형잡힌 잘 생긴 얼굴이다. 아니, ‘나’는 잘 모르겠다. ‘이곳에 한 달만 있으면 모든 남자들은 다 멋있고 잘 생겨지니까. 태양의 열기 때문에, 바다 때문에, 그리고 벗은 몸 때문에(p.50)'. 스물 다섯의 클레망은 ’단지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지나치게 성실(p.62)'한 ‘덩치만 큰 처녀아이(p.93)'이다. 하지만 싫지도 좋지도 않다.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 없고 싶다. ‘나’의 나른하고도 평온한 삶에 그런 것 따위는 중요치 않다. 푸른 바다가 내 앞에 있는 걸.
“모든 것이 덜 파래. 아니면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가......푸른 색은 정신적이거든. 그래서 식욕도, 관능에 대한 욕구도 죽여버려. 푸른 방은 살 만한 곳이 못 되지......”
“언제부터 그렇게 됐죠?”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부터! 당신이 더 이상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경우라면 당신은 푸른 방에서 살 수 있을 거야......”(p.74~75)
그러나 그런 삶이 조금씩 깨어지게 되었다. 엘렌이 ‘화학적인 청색 위에 아연의 청색을 덧발라, 약간 답답할 정도로 진지하게 그려(p.86)’진 바다 그림을 가지고 나를 방문했던 그 날 때문에. 그녀는 ‘내’게 이상한 부탁을 했던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오늘 오후에 느꼈던 불쾌감을 생각하니 아직도 기분이 나쁘다. 아직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왠지 모를 불편함, 나도 모르게 붉어지는 얼굴, 그렇게도 단순한 몇 마디를 어색하고 서툴러 발음하는 것, 이 모든 일들의 이유에 이제야 이름 붙일 수 있다. 그것은 ‘수줍음’이라는 단어이다. 사랑으로부터, 그리고 사랑의 행위로부터 멀어진 지금 또 다시 그 ‘수줍음’이란 것과 조우했단 말인가?(p.93)
이 소설에는 붉은 색의 향연이 한 가득이다. 붉은 선인장 꽃, 빨갛게 빛나는 제라늄, 붉은 벽, 붉은 속살 드러내 보이는 수박, 익어가는 포도와 검붉은 포도주, 불꽃, 아름다운 갈색 피부. 그리고 붉은 이미지들 덕분에 푸른 색은 더욱 강조된다. ‘마치 분을 칠한 듯 뽀얗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저녁의 푸른빛으로 인해, 장식이 거의 없는 벽은 더욱 붉어 보(p.80)'이는 것처럼 두 색은 첨예하게 대립되는 것 같다. 푸른 바다를 그려 온 엘렌과 갈색 피부를 가진 비앙 사이에 놓인 ‘나’의 갈등과도 닮았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불꽃들...... 사랑하는 어머니, 당신의 정원까지 뒤흔들어놓은 화재 때문에 엉망이 된 모란꽃들...... 당신은 숟가락을 손에 들고 테이블에 앉아 느긋이 말했었지요. “고작 지푸라기가 탈 뿐인 걸......”(p.92)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들은 하나같이 붉은데, ‘나’는 좋아하고 싶은 푸른 색의 것들로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간다. 그 붉은 것들은 미운 모양이다. 딸 부부의 초대에 붉은 선인장 꽃이 피는 것을 지켜봐야 하기에 갈 수 없다고 거절하신 엄마에 대한 미움이 ‘붉은 색’을 볼 때마다 이는 게 아닐까.
붉은 빛과 푸른 빛 뿐 아니라 모든 빛깔이 모이면 그 빛은 점점 밝아진다. 점점 투명해진다. 그리고 붉은 색과 푸른 색의 경계를 푸는 것은, 동이 터올 무렵의 신비로운 순간에 이루어진다. 딱 새벽 세시쯤, 여명의 시간이다!
새벽 세 시는 들판에서 새벽을 맛보는 사람들을, 새벽이 오는 푸른 창 밑에서 몰래 만남을 약속하는 사람들을 관대하게 만든다. 텅 빈 투명한 하늘, 벌써 찾아온 짐승들의 졸음, 꽃잎을 다시 움츠리게 하는 냉랭한 긴장감, 이런 것들은 열정과 타락을 방해한다.(p.27)
엘렌은 젊은 ‘내’가 되고 ‘나’는 엄마가 되고, 황혼이 여명이 되고, 달의 자리가 다시 해의 자리가 되듯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고 싶은 것은 함께 어우러져 결국 화해한다.
책을 다 읽고도 수없이 책을 뒤적거렸다. 그녀의 소설과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열쇠’는 어디에 숨겨진 걸까. 어느 날, 소설의 끝에서 그녀가 웃고 있었다,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렇게 서두르지 말자!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순간의 목마름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를! 창에서 뛰어내린, 아직 정체불명의 이 새벽이라는 친구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변화하는 형태를 완성할 시간이 부족했는지, 그것은 땅에 닿은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내가 그 과정에 참여하자 모든 것이 변했다.(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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