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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쁨 - 이해인 시집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08년 3월
평점 :
그 옛날의 소녀가 돌아왔다?!
이 책은 내 제자가 내 생일 선물로 보낸 책이었다.
들꽃을 말려 달고 자잘한 글귀를 곁들여
'세상에서 하나 뿐인 책'으로 거듭나 내게 왔으니.
내 어린 날 누군가에게 선물한 '그 책'이
마치 내게 돌아온 기분이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어
십대의 시작과 함께
시린 세상을 보면서부터,
애달아하며 사랑하던 시(詩)란 녀석이,
열아홉 나이가 되던 그 때에 나를 떠나 버렸다.
커다란 보랏빛 멍울같은 두려움만 남기고.
덕분인지,
아니면 수녀님의 글이 맑고 투명하여서인지,
나는 늘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읽으며
조용히 고개를, 마음을 내려놓곤 한다.
<새를 위하여>
기도 시간 내내
창밖으로 새소리가 들려
나도 새소리로 말했습니다
어찌 그리 한결같이 노래할 수 있니?
어찌 그리 가벼울 수 있니?
어찌 그리 먼 길을 갈 수 있니?
우울해지거든
새소리를 들으러
숲으로 가보세요
새소리를 들으면
설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삶을 노래하는 기쁨을
숨어서도 사랑하는 법을
욕심 부리지 않는 자유를
떠날 줄 아는 지혜를
새들에게 배우세요
포르르 포르르
새가 날아가는 뒷모습을 보면
말로 표현 못 할 그리움에
자꾸 눈물이 나려 합니다
살아가는 동안은
우리도 새가 되어요
날개를 접고 쉴 때까진
땅에서도 하늘을 꿈꾸며
열심히 먼 길을 가는
아름다운 새가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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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이 되어갈 수록,
담담하고 산뜻한 시의 간결한 글자보다
시큼털털한 사람들의 길고 긴 이야기에 취해
'이 세상은 참 야속한 녀석'을 웅얼거리는 일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다시 나를 정화시킨다.
'아- 맞아요, 수녀님. 저도 그런 곱고 착한 마음...
제 속 어딘가에 두고 있었어요...그래서 세상이 참 좋아요.'
이제 곧 글꽃이 피어날 겁니다-
<글자놀이>
오늘은
일을 쉬고
책 속의 글자들과 놉니다
글자들은 내게 와서
위로의 꽃으로
향기를 풀어내고
슬픔의 풀로 흐느껴 울면서
사랑을 원합니다
내 가슴에 고요히
안기고 싶어합니다
책 속의 글자들도
때론 외롭고
그래서 사랑이 필요하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너무 바쁘지 않게
너무 숨차지 않게
먼 길을 가려면
나와 친해지세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는 글자들에게
나는 웃으며 새옷을 입혀줍니다
사랑한다고 반갑다고
정감 어린 목소리로 말해주다가
어느새 나도
글꽃이 되는 꿈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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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모든 것에 고개 숙여 감사하고
낮은 곳에서 많은 것을 보듬으려 하시는
차분하고 섬세한 수녀님의 곱고 맑은 마음이
글꽃이 되어 내 가슴에 와닿는다.
이제 곧 글꽃이 피어날 시간이다.
처음의 그 마음, 그 뜻이
다시 내게 돌아왔으니.
어떤 글이건 내게서 꽃이 되어 피거라.
아마 제일 처음 틔울 꽃은,
보랏빛의 멍울에서 피어난 붓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