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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일 - 동물권 에세이
박소영 지음 / 무제 / 2020년 12월
평점 :
내가 마지막으로 함께 지낸 개는 똘이었다.
'여기서 개를 키운다고? 그게 가당키나 해?' 내가 어린 강아지 똘이를 처음 만난 날 들었던 생각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란 게 더 자연스러운 곳에서 살 때였고 대학등록금 뿐 아니라 내 식비를 충당하기 위해 과외를 할 때였다. 쓰러져가는 낡은 집에서 살면서 대책 없는 동정심을 품는 엄마를 원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도 엄마도 없는 텅빈 낡은 집, 피곤한 몸을 웅크리고 내가 스르르 잠이 든 사이 똘이는 내 곁을 파고 들었다. 그리고 크고 위험한 이 집에 체온을 나눠 나란히 누웠던 우리는 자매가 되었다(?). 스타킹을 신어서 안된다며 뿌리치는 나를 보면서도 어떻게 해서건 달려들려고 폴짝거리는 똘이를 보면서 기운을 얻었고 내 밥은 거르더라도 똘이 간식을 챙겨 들어가는 날은 뿌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이별을 해야 했다. 이사를 급히 가야 헸으므로. 엄마는 가까운 거리로 이사를 하는 거지만 빈 집에 똘이를 둘 수 없으니 구청에 연락을 했다고 했다. 거기서 새주인을 만나게 되나보다, 하고 넘겼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똘이는 잘 크고 싶을까 궁금했던 나는 구청으로 인계된 동물들은 유기동물보호소에 가게 되고 거기서 새식구와 연이 닿지 않으면 안락사 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무지했다. 구청 사람이 주변의 좋은 사람에게 똘이를 보내줄 거라 추측만 했지 진실은 알지 못했다.
낯설고 무서운 누군가가 내 뒤를 쫓아왔었다. 몹쓸 짓을 당할 뻔했지만 무탈했고 우리 식구는 서둘러 이사를 준비했다. 결국 내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똘이와 우리는 계속 함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뒤늦게 찾아온 펫로스(pet loss)의 후유증은 엄청 났다. 엄마의 무지를 넘어서 결국 나에게 돌아왔다. 내가 똘이를 죽게 했어.... 그때 유기견과 유기묘에 운명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동시에 어떤 동물에게도 함부로 곁을 주지 못했다. 나의 무책임한 사랑이 다른 동물에게 크나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트라우마가 남았는지도.
『살리는 일』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물들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말하는 작가님의 말이, 이 사회에서 소외된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꼼꼼히 눈을 돌릴 것이라는 출판사의 말이 얼어있던 마음을 깨웠다. 그리고 믿고 싶어졌다, 이들의 진심은 뜨겁고 강할 것이라고.
동물권 에세이,라고 소개된다. 동물을 사랑하기 시작하며 세상을 다시 곱씹기 시작한 기자님의 성장기가 담겨 있다. 위태롭고 때론 안쓰러운 길 위의 고양이가 보이기도 하고 고양이의 식사를 헤집고 사라진 너구리, 어딘가에 쓰여지기 위해 길러지는 곰을 만나기도 한다. 춥지 않은 겨울이 걱정이고 너무 더운 여름을 우려한다. 무지해서 벌어지는 언어 폭력도 쉽게 지나칠 수 없다. '동물권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 이 놀라운 변화는 길고양이의 존재를 인식하면서부터 그들의 삶이 작가님의 삶으로 파고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기자여서 더 깊이 파고 들 수 있다는 장점이 어쩌면 작가님의 마음을 할퀴고 갈 치명적인 독이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쓸 데 없는 걱정,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작가님께는 함께 행동하는 동생이 있고 그 뜻을 헤아려 주는 친구가 있고 동료가 있으니까. 누군가를 구하러 가는 길이 외롭지 만은 않으니까.
-나만의, 읽기와 담기-
(ohho02)마음을 읽다:
책이 곱고 예쁘다, '이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데리고 왔어'하던 어린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렇게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내가 특별히 마음을 써주마,하는 악의 없는 무례함을 느낀다.
그래, 이렇게라도 널리 읽혀야 해. 책이 똑똑해 보였다.
조금 작은 책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실제로 같은 사이즈의 다른 책은 거친 종이로 가볍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번 품기 시작하면 묵직해서 버티기 힘든 이야기를 너무 어렵게 들이밀지 않았다. 훌륭한 생각이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사람들이 멸종 위기 동물을 보호하려고 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학습표본' 확보 차원에서 몇 안되는 개체라도 남기기 위해? 동물원에 가둔 후 구경거리로 삼기 위해? 그것도 아니면 인류가 다른 종을 향한 일말의 동점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가상히 여기기 위해서? 도무지 모르겠다. 오늘도 숱한 동물이 위기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지만 인간들은 팔짱 낀 채 방관하고 있으니. (p.230)
작가님의 진심이 담긴 일갈에 속이 시원해졌다. 꿰뚫어 볼 줄 아는 거친 작가님, 내 스타일이다. 그래요, 아름다운 문장만 쓰겠다는 고집을 버리시고 이런 생생한 목소리를 내어 주세요.
-잠깐 나도 팔짱 낀 한 사람은 아닌가.(잠시 쭈글;;;;)
책의 구성이 거칠어서 일정한 부제 위에 나란히 줄 서 있지 않아서 어색해 보일 때도 있지만 진심이란 걸 아니까, 그야말로 박소영 작가님의 성장기니까, 이런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 읽는 이에게 전해진다. 당신이 걷는 길 위, 읽는 책 속, 부러 시간을 낸 영화 속, 익숙하게 쓰고 있는 말 속까지 작가가 겪은 작은 일렁임이 넘실거릴 것이다.
(ohho02)마음을 담다:
비건. 반려견 그리고 유기견과 유기묘. 장애와 비장애.
나였다. 미약하지만 꾸준히 비건이었고 편견에 맞설 자신은 있었지만 임신한 내 몸이 나만의 것이라고 여기진 말라는 주위의 시선은 이겨내지 못했다. 자매처럼 강아지(똘이)를 대했고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끝내 지켜주지 못했다. 똘이의 일을 가슴에 묻으며 유기견과 유기묘에 대해 지속적으로 마음을 쏟았다. 집안에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얻으신 어른이 계셨고, 낡아버린 아빠의 몸이 한 순간에 장애 판정을 받는 걸 봤다. 과거의 나, 뜨겁게 타올랐고 주변을 바라봤고 외쳤지만, 보잘 것 없는 나였던 것에 실망했다.
지금의 나, 나의 생각과 뜻은 그대로지만 변했다. 아이들에게 '채식이 옳다'는 식으로 엄마의 선택을 강요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그리고 '문화의 다양성'을 익히지 못하는 좁은 시선을 가질까봐- 가능하면 덜 특별한 식습관을 택한다. 다만 덜 공장화된 곳(이라 믿어보는 것)에서 나온 고기와 달걀을 아이에게 준비하고 생으로 된 채소와 과일을 즐기는 엄마를 보여준다. (물론 이 엄마는 아이들이 남긴 음식이 쓰레기가 되지 않아야 지구가 덜 아플 거라 생각해서 고기건 달걀이건 먹기도 한다. 아주 웃픈;;;;) 걷다가도 이탈한 지렁이를 흙으로 옮기고 나야 걸음을 떼고 날개가 다쳐 인도에 떨어져 버린 매미를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지 말라고 다시 나무 위로 올려보내며 길고양이를 보면 가만히 앉아 해치지 않는다는 뜻을 전하는 사람인 건 그대로인데 그 곁엔 내 아이들이 있다. 그저 불편할 뿐 다를 바 없는 사람을 보면 아이들에게 그들의 '불편함'을 돕는 것으로서 특별한 뭔가에 대해 설명을 한다. 그저 그뿐, 그냥 아저씨이고 아줌마이고 네 친구일 뿐이지 다를 건 없다고. (사실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는 운명의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안으로 삼킨다,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하며.)
모두를 문제 삼자 과하게 예민한 사람이 되고 이상하도록 까칠한 사람으로 내쳐지니까, 힘없는 내가 여기까지 밀려왔다. 뒷심이 부족한 나여서, 내 부족함이 나만의 것이 아닐까봐 책을 접하기도 전에 걱정만 앞섰다.
사랑을 확인하려는 애달픈 연인처럼 출판사에게 매달려 강짜를 놓았다. 의외로 쉽게 무너질 수 있더란 나만의 경험이 이런 실수를 만들었다. (출판사에 자꾸 엉뚱한 질문을 메일로 보냈던 것, 다시 한번 사과합니다. 너무나도 좋다 감사하다는 진심이 먼저였는데.. 혼자 다음 걸음까지 달려나갔어요.) 책을 덮으며 감사했다, 어설픈 걱정이었구나. 강력한 힘을 낼 줄 아는 사람들이 좋은 뜻을 널리 크게 내어주었다는 것에 안심하며 좀 덜 밀려나야겠다, 함께 나아가야겠다 결심했다.
'이 행성이 모두가 자유롭고 안전하게 숨쉬는 곳이 될 수 있기를'이란 편집자 P의 마음은 그저 멋진 문구로만 남지 않을 거란 걸 안다. (책을 판매하는 곳에 손수 적어놓은 문구를 보았다.)
온 마음을 다해 이 책에 감사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