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대교북스캔 클래식 23
버지니아 울프 지음, 김정란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돈과 자기만의 방이 가져다 줄 지적 자유.
 
자연과 사물을 의식하고 기술하는 감성적인 그녀의 사고를 뒤따르고 있자니, 바삐 좇아가는 나의 눈길도 어느새 기쁨의 빛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잠긴 문 밖에 있는 것이 얼마나 불쾌한 일인가를 생각'하다가 '잠긴 문 안에 있는 것이 더욱 나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울프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실은 나도 당신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고 읊조리는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최근에 본 적이 있던가? 나도 모르게 꼭 원어로  다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적당히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분명했지만, 울프의 필력은 조심스럽게 느껴지리만큼 풍부한 감성에서 우러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도 그럴것이 '대부분의 여성은 성격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 포프나 '여성은 극단적이다. 그들은 남성보다 우월하거나 또는 저열하다'라고 말한 라 브뤼예르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옮겨놓고선 자신의 복합적인 또는 감추어진 분노를 상냥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2장에 이르기까지 울프는 '여성과 픽션'이라는 자신의 강연 주제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그러다가 3장에 다다르면 우리는 시대적으로 배제되고, 내동댕이쳐졌던 여성의 처지를 이야기하던 중 셰익스피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그의 누이를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시인으로 탄생시키는(물론 그녀는 허구의 인물이다) 재치를 발휘하는 울프를 만날 수 있다.


16세기에 여성에게 문학적 재능은 축복이라기 보다는 저주였을지도 모른다. 특히 가난한 여성에게 재능은 부단한 시련과 투쟁의 삶을 감내할 것을 종용하는 원동력이었을 터다. '여성에게 지적으로 기대할 만한 것은 전혀 없다는 남성의 의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곳에서라면 이 짐작은 거의 확실하다.

 

울프는 남성이 속물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만 재능있는 여성의 삶이 무성히 자란 잡초와 가시나무로 뒤덮여지는 것에 유감을 표할 따름이다. 그리고 여성의 글쓰기에 만연한 적대감이 여성이 글을 씀으로써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순 없는 노릇이나, 자기만의 방에서 쓰여지지 않은 여성의 글이 더 큰 혜택을 받을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점도 애석히 여긴다. 어쩌면 '결핍'이 여성의 글쓰기에 필요악은 아니었을까?

 
울프의 책읽기, 상상력, 글쓰기에 대한 신념에 부러움의 시선을 던지며 삶의 기록 또는 예술적인 기록으로서의 여성의 글쓰기란 어때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문단 하나 하나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책을 읽고 쓴다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찰나 짐짓 모른 체 해왔던 여성으로서 글을 쓰는 작업에 뒤따르는 분노와 한계를 부끄럽지 않게 고백할 수 있게 하는 설득의 힘에 탄복했다.

까짓 한 번 믿어보자. 돈과 자기만의 방이 가져다 줄 지적 자유와 무엇을 쓰더라도 그것이 무한한 가치를 가지게 될 것임을.

 

 


아쉬워요! : 개인적인 느낌입니다만 번역문장의 마침이 거의 '~해요'로 되어 있었는데, 읽으면서 글이 조금 가볍고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어 아쉬웠습니다. 어색한 표현들도 더러 있었구요. 읽던 중에 도서관에 들러 일부러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과 대조해서 읽어 보았는데, '~습니다' 표현을 적당히 혼용한 것이 읽기에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개인적 취향에 따른 것이겠지만, 번역이 좀 더 매끄러웠더라면 감동이 더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래 인상깊은 구절에서 회색 글씨가 본 책의 번역이고, 파란색 글씨는 제가 비교해 본 다른 책(출처는 일부러 밝히지 않았습니다만, 삭제해야 한다면 언제든 삭제 하겠습니다)의 번역입니다. 리뷰 작성하면서 유난스럽지 않느냐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느낌이 다른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비교해보시라는 의미에서 옮겨 봤습니다. 번역판 두권을 대조하다 보니, 원서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완벽한 번역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분명 색다른 기쁨일거라고 확신합니다.  

 
좋아요! : 좋은 작품을 예쁜 표지의 양장으로 간직할 수 있다는 점, 들고 다니며 보기에 적당히 작은 책이라는 점, 글자크기와 본문편집 등이 수월한 읽기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럽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
검푸르고 망막한 하늘에는 수천 개의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었어요. 헤아릴 길 없는 사회를 상대로 홀로 서 있는 듯했어요. --- 본문 45쪽 중에서

 [다른 이의 번역]'푸르고 광막한 하늘에는 수천 개의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마치 불가사의한 사회에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삶은 남성, 여성 모두에게 - 나는 길을 따라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어요. - 고되고 어려운, 끊임없는 투쟁이에요. 엄청난 용기와 힘을 요구하지요. 우리처럼 환상을 지닌 피조물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필요한 듯해요. 자신감이 없다면 우리는 요람 속의 아기 같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헤아릴 수 없지만 무한한 가치를 지닌 특성을 가장 신속하게 창출해낼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본문 65쪽 중에서

 
[다른 이의 번역]어느 성에게나 삶은 힘들고 어려운 영속적인 투쟁입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용기와 힘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같이 환상을 지닌 피조물에겐 그것은 아마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필요로 할 겁니다. 자신감이 없다면 우리는 요람에 누운 아기와 마찬가지이지요. 이 측정할 수 없이 가벼운, 그러나 무한한 가치가 있는 자질을 어떻게 해야 가장 신속하게 획득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함으로써 가능하겠지요.

그렇긴 해도, 내가 지금 쓰려고 하는 첫 번째 문장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을 생각하면 치명적이라는 거에요. 나는 책상을 향해 가로질러 가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제목이 적힌 종이를 집어 들며 말했어요. 순전히 남성 또는 여성이 되는 일은 치명적이에요. 남성적인 여성이나 여성적인 남성이 되어야만 해요. 여성이 어떤 불만을 조금이라도 강조하거나 또는 정당하더라도 어떤 원인을 변명하는 것.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여성임을 의식하고 말하는 행위는 치명적이에요. 치명적이란 말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에요. 의식적인 편견을 가지고 쓴 글은 모두 소멸될 운명에 처해져요. 풍요롭게 될 수가 없지요. 하루 이틀 정도는 빛나고 효과적이며 유력하고 걸작처럼 보이나 해질녘이 되면 시들어 버려요. 다른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자라날 수가 없어요. 창조 행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 안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협력해야 하지요.  ----본문 191쪽 중에서

[다른 이의 번역]내가 여기에 쓰게 될 첫 번째 문장은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을 염두에 두면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순전한 남성 또는 순전한 여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인간은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성이어야 합니다. 여성이 어떤 불평을 조금이라도 강조하거나,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어떤 대의를 변호하는 것, 어떤 식이건 여성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치명적인 일입니다. 여기서 '치명적'이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의식적인 편향성을 가지고 쓰인 것은 필연적으로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비옥해질 수 없지요. 그런 작품은 당장 하루 이틀 동안은 빛나고 효과적이며 강력한 걸작처럼 보일지 모르나, 해 질 무렵이면 시들어버립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라날 수 없는 것이지요. 창조적 예술이 이루어질 수 있으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협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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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미래 2009-06-2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분이 같은 출판사에서 번역한 <오 헨리의 봄날의 메뉴> 역시 번역에 아쉬움이 많더군요. 알고보니 깔끔한 번역을 자랑하는 상지대 김정란 교수(시인, 문학평론가)와 동명이인이었습니다...
 
영혼의 해부 - 뇌의 발견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나
칼 지머 지음, 조성숙 옮김 / 해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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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7세기 초, 영혼이 물질적이며 육신과 함께 죽는다는 생각 즉 소멸주의(mortalism)는 분명 획기적인 것이었으나, 청교도 전쟁과 내란으로 얼룩진 당시의 영국에게 이는 신성모독과 같은 것이었다. 이 책은 1장에서 4장에 이르기까지 영혼의 서식처로서 심장을 중요시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과 더불어 철학에서 천문학, 연금술 등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서술하는데 그 장들을 할애하고 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이렇게 다채로운 관점에서 중세를 파악하지 못했던터라 익숙한 학자들의 이름이 마구마구 튀어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어려움을 느끼며 책을 읽었더랬다. 자신의 주장에 광적인 불관용을 보이는 이들을 향해 존 윌킨스(John Wilkins)가 자신의 책에 '냉담한 독자를 납득시키거나 만족시킬 방도가 없다 해도,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의견을 향유할 수 있다.'(본 책의 본문 125쪽)라는 헌정사를 적었다 했듯 나 역시 당장의 만족을 요구할 방도는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토머스 윌리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5장에 다다르자 재미있게 읽히기 시작했다. 물론 책 전반에 걸쳐 윌리스와 관련되거나 또는 그의 이론에 영향을 끼쳤을만한 사람과 배경이 계속 펼쳐진다. 어느날 꾼 이상한 꿈으로 인해 그만의 관념론을 정립하게 된 데카르트가 얼마나 거만한 인물이었는지를 알게 된 일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진실을 밝히는 일은 아무것도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에서 시작된다'부터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익히 알려진 명제까지 데카르트는 어쨌거나 이후의 지식 세계에 큰 파장을 주는 대단한 인물이긴 하다. 그리고 윌리스가 평생 모범으로 삼은 그의 스승 하비에 대한 이야기도 한참 다루어진다. 하비는 조금 괴짜같은 면모를 지닌 것 같지만, 그가 윌리스에게 전한 가르침은 터부시해선 안될 법하다. '눈에 보이는 사실을 택하라'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해부 장면을 묘사하는 저자의 센스가 식사를 하면서 책을 읽던 나에게 일침을 가했다. (ㅠ.ㅠ)
'인간 정신의 비밀 장소를 열기 위한' 대담한 연구를 위해 '머리를 열고', 물감을 동맥에 주사해 뇌실로 물감이 들어가지 않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기존의 해부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들을 반박하는 윌리스. <뇌와 신경의 해부학>을 출간함으로써 그의 명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9장의 '경련'에는 윌리스가 '매우 아름다웠으며 대단히 지혜로웠다'라고 적은 앤 콘웨이(Anne Conway)가 등장한다. 그녀의 고통은 의학적인 기술로는 치유되지 못했지만, 종교적 힘으로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 사례는 윌리스에게 던져진 수수께끼였는데, 제멋대로인 독자였던 나는 잠시 콘웨이의 사연에 빠져 그녀의 재능이라던가 삶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듯 이 책에는 꽤 많은 등장인물들이 출현한다. 친절하게도 책의 뒷부분에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페이지가 있는데, 소개된 인물만 48명이다.(소개되지 않은  이름들은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가볍게 지나치는 것이 좋을듯하다.) 그러니 이야기를 읽다가도 이것이 윌리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순간 착각을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빠지게 되는 것이었다.
여튼 이야기의 핵심은 환자와 증상, 그리고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한 윌리스의 관찰, 연구이다. 그의 연구가 점점 정점을 향해 치달아가고 있는 와중에도 그는 '인간만이 이성적 영혼을 가지며 자신의 연구가 인간의 영혼이 비물질적인 것임을 입증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의 이론들은 교회와 왕립학회의 환영을 받는데, 이는 기독교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기계론적 철학에 대응하고, 퀘이커교도나 광신도들을 '종교적 죄인'이 아닌 병자로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었다.

 

 



윌리스는 뇌를 재정의하면서도 영혼도 재정의했다. 영혼은 간과 심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립자가 감정과 기억, 지각능력을 만드는 뇌와 신경에서 나온다. 윌리스는 뇌에 비물질적이고 불멸적인 이성적 영혼이 들어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감각적 영혼에 의존했다. 이성적 영혼은 자력으로 외부 세계를 지각할 수 없으며 감각적 영혼이 병들면 이성적 영혼도 병들게 된다. 그리고 윌리스는 영혼을 치료하기 위해 춤이나 즐거운 대화 또는 강철시럽 등을 이용해서 뇌의 부패한 미립자를 바꾸고자 노력했다.(308-309쪽 중)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 윌리스의 학설이 근대 서구 사상을 구성하는 주춧돌 중 하나가 되었음에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는 존 로크(John Locke)의 책임이라고 하는데,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존 로크가 그의 스승의 연구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물론 나 역시 저자처럼 그가 스승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한 그의 이론들을 확인하면서 미소를 짓긴 했지만.
보일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보일(Robert Boyle)의 이야기도 책의 중간중간 등장하는데 이 역시 흥미롭다. 그런데 책의 328쪽에서 한글로 '로버트 보일만'으로 표기되어 있어 순간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닌줄 알고 깜짝 놀랐다. 아마 오자인 듯 하다. 여하튼 그도 포함되어 있는, 서로의 연구에 기여하는 '옥스퍼드 회합'이라는 모임의 성과는 매우 지대하다고 여겨진다.
12장에 이르러서는 MRI의 공이 커진다. 윌리스가 두려워했던 것들. 뇌의 활동을 눈으로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견해들과 마주 설 수 없는 그의 두려움은 여지껏 확인해왔던 시대 상황으로 미루어보건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우리를 놀라운 세상으로 이끌어주었음'은 분명하다.
이 책이 순전히 신경학, 의학 등의 전문 분야의 지식의 서술에만 급급한 것이었다면 나같은 독자는 감히 도전할 용기를 못낼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 과학역사서다. 그리고 누군가의 평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서사의 힘도 느껴진다. 쉽게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의외로 재밌는 부분도 많다. 사실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통독을 했지만, 다음은 정독을 해야겠다는 호기를 부리고 있다. 이런 책은 한번 읽고 잊혀지면 안된다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이런 장르의 책에 더욱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을 일으킨 책. 그렇지만 아무래도 관련 분야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히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인상깊은 구절 :

실수를 바로잡고 동물 정기의 비밀을 밝혀내려면 뇌와 신경을 적절한 방법으로 연구해야 했다. 윌리스가 제대로 된 연구를 수행하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다. 이에 대해 그는 "지도자나 동료 하나 없이 정도에서 벗어난 길을 걷는 것은 인적이 없는 황야를 여행하는 것과 같다"고 기록했다.(201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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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 - 국경없는 의사회 이야기
댄 보르토로티 지음, 고은영 그림 / 한스컨텐츠(Hantz)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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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Mdecins Sans Frontires

 

우리에겐 일반적으로 국경없는 의사회 Inside the World of Doctors Without Borders 라고 알려져 있는 MSF에 관해 이보다 더 생생한 기록은 없지 않을까?

평화교육의 소재로도 익히 활용되었지만, NGO 활동이라던가 봉사의 삶을 꿈꿨던 이들에게 MSF는 상당히 낭만적으로(?) 여겨졌을 법도 하다. 막연하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 의사들의 자발적인 모임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지라 이 책을 만나게 되니 그동안 정확히 알지 못했던 이들의 활약상 뿐만 아니라 이 단체의 사명, 갈등, 고민 등 이들의 구구절절한 삶과도 마주보아야만 했다.

 

거즘 300여페이지에 달하는 구성이었지만 처음 걱정한 것보다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MSF가 달려가는 곳곳에 펼쳐지는 급박한 상황과 안타까운 삶들에 대한 연민에 휩싸여서일 것이다. MSF의 탄생비화부터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자원하는 의사들의 번민,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제3세계 사람들의 꺼져가는 삶, MSF가 당면한 갖가지 어려움 또는 과제... 이런 이야기들로 MSF가 어떤 단체인지를 좀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타인을 위한 삶이 곧 자신을 위한 삶(순전히 자기만족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 안타깝긴 하지만)이 되어버린 사람들과 그리고 그들이 고수하고 있는 모두를 위한 원칙이 MSF를 지탱하고 있었다. 책에 실린 활동사진과 실감나는 증언들이 MSF에 대한 호기심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 준다. 언젠가 좀 더 삶이 안정되고, 처한 삶 그 이상의 것을 꿈꿀만한 형편이 될 때가 되어서야 봉사활동을 해보겠노라는 나의 호기넘치는 바람이 참으로 부끄럽다. 인도주의의 한계를 끊임없이 경험하면서도 다시 미션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쿠슈네르는 결국은 유렵으로 돌아가서 적십자사와의 약속을 깬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파리의 동료들과 함께 그는 시위와 미디어를 통해서 비아프라의 진상을 일깨웠다. 그는 나이지리아 정부를 제지하기 위해 국제 사회에 로비를 하며, 적십자사가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대량 학살을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의료를 지원하고 침묵하는 것, 의료를 지원하며 아이들이 죽게 내버려 두는 것, 이것은 내게는 명백히 공모였습니다" 그는 2003년 하버드 공중 보건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말했다. "중립성은 공모를 낳았습니다. 개입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__48쪽 중에서

 

"사람들은 MSF에 대해 듣고 '성자 명단에 오르는 것 아니오?'라고 말하지만 절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들에게 의료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지만, 저는 이 일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고 또 제가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것 뿐이지요.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에요.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제가 세상을 돕고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장에 가는 것입니다." __77-78쪽 중에서

 

"...'국경없는'은 단지 카우보이식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반항아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주의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고통을 돌보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___152-153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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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게 박사의 위대한 육아조언
얀 우베 로게 지음, 추기옥 옮김 / 들녘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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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을 감싸고 있는 표지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 장난기가 가득하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보기보다 가벼웠던 책의 무게, 그리고 대체로 깔끔한 편집상태. 목차를 봐도 짐작할 수 있듯, 로게 박사는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따라가고 있었다.

 

여는 글에서 로게 박사는 누군가 자신에게 "다음에 새 책을 낼 때는 색인을 넣어주세요. 그러면 박사님 책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제안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밝힌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 보인다.) 자신의 책들이 성공을 보장하는 육아기술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그의 고백은 빈 말이 아니다. 육아와 관련한 명쾌한 처세술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적잖이 실망할지도 모른다.


스티브 비덜프의 <아이에게 행복을 주는 비결>을 즐겁게 읽었던 분이라면 좀 더 관대한 마음으로 로게 박사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육아의 기본은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 더불어 아이에게 두려움은 주지 않으면서 엄격한 사랑을 보여주려는 부모의 노력이 지속될 때, 아이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키우고 성장 과정 중 직면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기에게 적합한 해결 전략을 개발하여 발전을 이룬다. 


로게 박사는 먼저 일상적인 아이의 삶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의 마음이 (대체로) 어떠한지를 친절하게 설명한 다음 부모 또는 아이와 대화하게 되는 어른이 참고할만한 몇가지 원칙들을 제시한다. 이 원칙들 중엔 우리에게 식상할 정도로 익숙한 것 뿐 아니라 미처 깨닫지 못해 시도해 보지 않았던 흥미로운 조언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조언은 다양한 사례 연구/경험 그리고 그의 견해를 뒷받침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다양한 교육학자들의 선행연구와 상담이론들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므로 그것의 실천은 분명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유의 번역 문체로 인하여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표현들이 간혹 보였지만, 대체로 간결하고 쉽게 쓰여진 글이라 많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읽기는 수월했다. 우리가 한번쯤은 보고 혀를 끌끌 찼을지도 모를 엄마 말 안듣고 제멋대로인 것 같은 아이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도 가득하다.(이건 순전히 우리의 오해다. 녀석들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특별한 서사를 바탕으로 한 글이 아니므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내용의 쪽을 찾아 읽어도 좋을 법하다. 교육학과 상담이론을 공부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익숙한 처방을 많이 발견하게 되리라 본다.
부모 되기를 준비하는 사람, 아이를 가르치고 돌보는 사람들이라면, 머리로만 알고 있던 아이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긴 하다. 개인적으로 - 아직 아이를 키우고 있진 않지만 - 부모 되기를 계획하고, 교직에 입문하려는 사람으로서 이 책이 유익했기 때문이다.

 


딱히 인상깊었던 부분을 선별하기는 어렵지만 (각각의 내용들의 비중을 다르게 둘 수가 없어서.. ^^;), 로게 박사가 드라이쿠르스의 인용을 통해 조언한 부분을 옮겨 보겠다.

 

 

드라이쿠르스는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의 목적을 밝혀낼 수 있는 특별한 질문을 개발했다. 그는 "어른이 핵심에서 벗어난 질문을 해대는 걸 보고 아이들은 우리가 뭘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오직 아이들 자신만이 우리의 질문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뿐이다. 모든 질문은 '... 하고 싶니?'로 시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 경계를 침범했을 때 : "내가 너랑 같이 놀아준다면 좋겠다는 뜻이니?. "내가 너한테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니?"
#. 힘겨루기를 할 때 : "넌 지금 나한테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지?", "네가 결정하고 싶다는 뜻이니?"
#. 복수나 보복행위를 할 때 : "너는 지금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니?", "넌 나한테 벌을 주고 싶니?"
#. 속수무책인 상황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조용히 쉬고 싶다는 뜻이니?", "무엇이 됐든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다는 거니?"

질문을 하되 아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아이들은 보통 숨기는 이유를 스스로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핵심을 찔러 질문하면 갑자기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 중략 ...


그러다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 아이들은 이해받았다고 생각하면서 협조적인 자세를 취한다.


로게 박사의 위대한 육아조언, 331-332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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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선생님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2
패트리샤 폴라코 지음, 서애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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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라지만, 이 책은 어른들이 꼭 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교육 관련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필독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지식의 맛이 꿀맛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하는 트리샤의 할아버지와 풀숲을 나는 작은 개똥벌레들을 가리키며 '다름'의 자연스러움을 일깨워주는 할머니, 그리고 트리샤로 하여금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깨닫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폴커 선생님이 이 책 속에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행복하게 하고, 그 아이가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하는 것은 당연히 어른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글 읽기가 두려웠던 어린 트리샤는 이제 어린이 책을 만드는 작가가 되었다.

내가 만날 아이들에게, 그들의 꿈이 쑥쑥 자랄 수 있도록 물을 줄 수 있는 그런 교사가 될 수 있다면... 고맙습니다라는 말의 감격이 아니라 진정 자신의 꿈을 이뤄낸 그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감에 젖을 수 있는 상상을 하며 그 아이들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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