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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한 날들 - ★공고 별별학생들과 함께한 교단일기
조혜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평점 :
지난 2년간 교단일기를 썼었다. 나의 교육활동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의욕도 있었지만, 글을 통해 교직생활에서의 심리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려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울퉁불퉁한 날들>이라는 교단일기를 쓴 선생님의 말처럼 나 역시 마음이 조금 편해지고, 교단 생활에 더욱 요령이 생겨서인지 일기를 쓰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어버렸다. 조혜숙 선생님의 교단일기를 읽으며 많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의 일기를 되돌아보고, 나의 아이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보다 앞서 지난 ‘울퉁불퉁했던 날’들이 나를 찾아왔다.
저자의 일기를 보며 나 역시 내가 만났던 선생님들을 떠올렸다.
그들도 그랬겠구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실업계 고교로 진학해야 했던 나는 이내 내 선택을 후회했고 이후 3년을 절망과 싸워야 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도 가정형편보다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이 실업계 고교에 진학하는 사례가 많았고, 실업계 고교 재학생은 공부 못하는 학생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던 때였다. 그런 학생들이 모인 학교에서 나는 특이한 사례였다. 중학교에서도 전교 상위 5%내의 성적대였던 나는 인문계고교 진학과 대학등록금까지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집 자식이었다.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선택한 학교. 학교는 기존의 편견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 편견 속에 갇힌 내가 열등감 덩어리가 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그런 학생들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교사들도 뭔가 의미있는 것을 가르칠 의욕이 없어 보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떤 선생님은 우리를 ‘쓰레기’라고 불렀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책상 위에 엎드려버렸다. ‘쓰레기통’에 갇혀있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울퉁불퉁한 날들>에서 묘사되는 남학교에 비해 교사들이나 학생들의 사정은 나은 편이었다. 그래도 1학년 때 우리반에서만 중도에 학교를 그만 두거나 정학을 당한 이가 모두 8명, 1학년만 통틀어 40여명이 징계를 받았다. 징계를 받은 아이들이 약간은 불량하다고 속으로 생각은 했지만 그 처벌은 꽤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교사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미건조하거나 혹은 잔인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나마 모범생과였던 나도 선생님들과 시비가 붙으며 말대꾸를 했다는 이유로 ‘버릇없다’는 소리를 듣었다. 학교 가기가 싫었다. 지각도 잦았고, 가끔은 수업도 들어가지 않았다. 졸업을 며칠 앞두고는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깊이 공감하는 한편 매우 불편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시간들을 여행하는 기분이랄까.
실업계 고교를 졸업했고, 대학 입시와 상관없는 교육과정을 이수했지만... 본래 공부하는 일이 괴롭지(?) 않았던 덕에 무난하게 나름 인지도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나의 출신 고교를 알게 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등학교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구나’라고 반응했다. 실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공부 못하는 학생이 정말 죽어라 공부해서 이만한 대학에 들어왔다는 편견과 부딪치면서 나는 내가 어느 학교를 나왔다는 말을 어지간하면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아이러니하게 실업계 고교로 교육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다시 몇 년 전의 나처럼 심심하고 담담한 눈빛을 하게 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때 내가 그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방법은 결국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지만, 그 아이들의 미래가 어떨지 확신할 순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보단 훨씬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긴 사연이 있지만 어쨌든 다니던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교육대학을 들어가 졸업했다.)
교사가 되기까지 숱한 고민의 시간들을 견뎌야 했다. 선생님을 믿지 못했던 내가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소위 버릇없고 예민하다는 아이들을 내가 다 보듬을 수 있을까?
조혜숙 선생님의 일기를 읽으며... 어쩌면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이 분 같은 선생님이 계셨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바라보며 소망을 품고, 꾸준히 응원을 보내던 분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그런 마음까지 헤아릴 만큼 마음엔 여유가 없었고, 상처투성이었다. 나도 그랬고, 함께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도 그랬다. 모두가 ‘막돼먹은 애들’이었던 건 아니었다. 다음 학기 등록금이 없어 눈물을 글썽이던 친구, 부모님 호강시켜주고 싶다던 친구, 취업 턱으로 밥 한끼 사며 웃어보이던 친구, 취업을 하고 야간대학에 가서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던 친구, 더이상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다며 담담하게 오늘 자퇴할 거라고 말했던 친구, 실업계 학교에 온 덕에 등수가 중학교 때보다 많이 올랐다며 뿌듯해하던 친구...
아이들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로 다시 아이들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던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따뜻하게 말을 건내고 ‘넌 잘 할 수 있을거야’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던 선생님들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이 선생님을 만난 아이들도 분명 따뜻함을 느꼈을 것이고, 조금은 더 힘을 냈을 거라 믿는다.
이 교단일기를 읽고 뭔가 거창한 대안 따위를 운운하고 싶진 않다. 그저 현재 우리 주변의 보듬어줘야 하는 학생들, 편견보다는 따뜻한 어루만짐으로 다가가야 하는 학생들의 삶을 많은 사람들이 돌아보고 알아봐주길 바란다.
이렇게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며 애쓰는 선생님이 있음을 알았으니 그의 글을 읽고 마음으로나마 힘을 보태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리라.
선생님의 간결하고 재치있는 글솜씨와 고등학생이긴 하지만 여전히 아이답고 순수한 면들을 간직한 학생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들 덕에 순식간에 읽어버린 책. 처음엔 간단한 서평을 쓰려고 했는데... 불편했던 마음, 안타까웠던 마음, 옛 생각 등이 줄지어 찾아와 결국은 정리되지 않은 개인적인 생각만 잔뜩 쓰게 된 듯. ^^;
2012.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