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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때가 있다. 여러가지 선택지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들러리다 보니 차떼고 포떼다 보면 결국은 두 가지만 남는다. 그 두가지는 소위 “비용대비 효과가 좋은 녀석” 하나와 “돈이 좀 들어도 어쩐지 멋져보이는 녀석”이다. 효율성이 첫번째가치인 효율왕국 대한민국에서는 첫번째가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누이 좋고 매부좋은 상황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심하다. 재미가 없다. 일은 지루하거나 길을 잃기 십상이고, 어찌어찌 해서 마무리하지만 남는건 피로뿐인 경우도 왕왕있다. 잘 마무리 되면, 그저 여러가지 실적중에 하나로 남아 결재를 받고, 문서고에 들어간다. 하지만, “비싸고 멋진 녀석”은 어딘지 무모하다. 이렇게 돈을 써도 되는거야? 주변의 시선도 만만치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재무팀이라든가... 문제는 이 녀석은 재미가 있다. 덜 떨어져 보인다고 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 팀원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재밌겠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일이 흘러간다. 이런 일들이 많은 회사는 뭔가 시끌벅적하고, 살아있다.
얼마전 medium에서 다가오는 초인공지능시대를 준비하는 자세에 대한 글을 읽었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론은 사람을 위한 일을 하되 전문성과 경험을 갖추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대로 주저앉던지 일을 계획하던지 그건 우리손에 달렸다고 했다. 한 때, “중간만 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지배했던 시절이 있었다. 튀지 않고,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는 무던한 사람이 오래 살아남으니까. 사실 그런 그룹에서 사는 것도 쉽진않다. 끊임없이 주변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손과 발을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 무리의 바깥쪽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리에서는 낙오자로 취급했다. 그러다, 자발적으로 무리에서 나오는 사람이 생기더니, 이제는 낙오자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무리를 구경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진즉에 무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불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필요한 사람은 들어가려고 애쓰겠지만, 그 안과 바깥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조직의 똘마니로 살 던 “오카다”는 그 짓을 그만하려고, 함께 행동하던 형님에게 이야기한다. 건들대고, 허세 가득한 난폭한 형님이었지만, “너는 언젠가 나갈 줄 알았다”는 심정으로 한가지 시험을 본다. “저하고 친구해요. 밥도 먹고, 드라이브도 해요!” 라고 아무번호로 전송했을 때 받아들이겠다는 답변이 오면 통과다. 애를 만들기는 쉬워도 친구를 만들기는 어렵다는 오늘날, 어찌보면 가장 어려운 시험이었다. 우연히 그리고 운좋게도 이 시험에 통과한 오카다는 그날 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날들을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협박이 아닌 친절로 대할 때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주변의 문제를 유쾌하게 엮어간다. 비단 이야기는 오카다가 주인공이 되어 흘러가지 않는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빌리뱃”처럼 등장은 하는데, 말하는 “나”는 시종일관 다른 사람으로 옮겨다닌다. 그래도 이야기 안에는 오카다가 들어있다. 조직의 바깥에도 세상이있다. 바동거려도 그러지 않아도 세상은 서두르지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입자를 이용하지 않아도, 빛의 속도로 여행하는 우주선을 타지 않아도 디디고 서 있는 세상은 한결같은 속도로 가고 있었으니까.
이 작가의 책은 왜이리 집중하기 어렵지? 하고 물으며, 100페이지를 읽어내려갔다. 대개 소설을 읽으면, 주인공으로 빙의해서 이야기에 빠지곤 한다. 이 소설에서는 구름을 타고, 내려다 보는 느낌이었다. 마무리가 꼬다리 없는 김밥같은 느낌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책을 덥고 난 아쉬움은 어쩐지 딸기가 올라간 타르트를 먹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