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세상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고은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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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12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개중에는 괜찮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본문의 말을 따르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 정도로 쳐두자.

  12편의 글쓴이는 모두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직업도 제각각 특색이 있다. 저마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전체적으로 긍정적이었다.


  이전에 <나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등을 읽으며 "나"라는 존재 자체의 내면에만 집중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는 그 다음 단계인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1부와 2부로 나뉘는 이 책은 1부에서는 "너를 살피고 나를 다스리는 지혜"라는 주제로, 주로 과거의 이야기를 예로 많이 들며 과거의 지혜를 좇고자 시도한다. 황금기의 그리스, 임진왜란기의 조선, 톨스토이 등이 누비던 러시아를 누비며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비슷한지, 그리고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살아갔는지 위기를 극복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징비록>에 대해서 다루는 <징비록, 과거를 경계해 훗날을 대비하다> 파트는 기억에 남는다. 흔히 철학 하면 서양을 떠올리고 그것이 주류인 것이 당연시되는 그런 풍토에 살고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사실 지명부터가 낯설어 와닿지 않는 서양의 사례보다는 동양의 사례가 내게는 훨씬 의미있게 다가온다. 이미 우리 조상중에도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하며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사색한 사람이 많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징비록>을 쓴 유성룡이다. 그는 조선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기간동안 직접 겪은 바를 바탕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하고 부국강병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사람이다. 정작 <징비록>에 주목한 곳은 조선이 아닌 일본이라서 이런 훌륭한 시각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데에 안타까움이 남기도 한다. 결과적으로는 과거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과거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반성 없이 그저 과열된 감정으로만 대응하는 것은 득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런 내용을 딱딱하지 않고 실제로 임진왜란기의 일화를 통해서 무거운 주제임에도 옛날이야기처럼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주고싶다.

  이외에도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현재를 더 알차게 살아가라는 톨스토이의 이야기를 담은 <톨스토이, 성장을 말하다>라는 부분도 인상깊다. 아래 대목에 여기서 전하고싶은 내용이 얼추 다 담겨있는 듯하다.


  죽음을 기억하면 현재가 놀랄 만큼 풍요로워집니다. 매 순간이 선물처럼 느껴지고 또 그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되지요. 그래서 톨스토이는 <인생의 길>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오늘 밤까지 살아라. 동시에 영원히 살아라."


  참 의미 있는 대목입니다. 오늘 밤까지 살라는 것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바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살라는 말에는 바로 죽음을 기억하기 때문에 삶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유한한 삶과 영원은 하나가 됩니다. 이때의 영원히 산다는 것은 끝없이 지속되는 시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때의 영원은 양의 개념이 아니라 충만한 시간, 완전히 채워진 시간, 그리고 풍요로운 시간으로 해석됩니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중 <톨스토이, 성장을 말하다>에서 인용




  2부에서는 "삶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다"라는 주제를 걸고 상처, 고통을 넘어 행복해질 수 있는 여러 방안에 대해 제시한다. 앞부분에서 다소 객관적으로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다시 침착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면, 뒷부분인 2부에서는 결국 행복은 우리 내면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요약하자면 그렇다. 다만 1부에 비해서는 실망스러운 내용이 일부 있었다.

  <고통을 넘어 희망으로>라는 대목에서는 내가 가진 것보다 더 큰 것을 원하기 때문에 고통받게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나 부적절한 예가 오히려 개인적으론 내용 몰입에 방해가 됐다. 인용하자면 아래와 같다.


  대부분의 여성은 쇼핑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주로 눈으로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생각지도 않았던 봉투라도 건네면 큰맘 먹고 아웃렛에 가서 명품 백을 삽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동창회에 나갑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자기보다 훨씬 공부를 못했던 친구가 신상백을 들고 나왔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이렇게 욕구를 끌어올렸다가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우리는 고통에 빠집니다.


???????

  본인의 성역할에 대한 기치관 잘 들었습니다.

  저자인 박승천 교수님은 이런 예시를 듣고나면 기분이 어떤가요? 되묻고 싶은 대목이다. 아무리 저자가 남성이고 연령대가 있고 가치관이 지금 세대와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성차별적인 발언이고 실례이지 싶다. 여성이 쇼핑을 좋아하고, 직접 돈을 벌지 않으며,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 중에서 여유가 생기면, 명품백을 사고, 그리고 그것을 자랑차원에서 동창회에 들고갔다가 망신을 당한다는 사례는 도대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 너무 마초스러운 예시 아닌가? 저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본인 주변에서 겪었던 사례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행복을 전하는 강연을 담은 책에 포함되기에는 부적절하다못해 불쾌하기까지 한 내용이다. 다른 내용은 흔히들 말하는 자기계발서랑 별다를 것 없었다. 친구들에게 연락하는걸 주저하지 말고 사는 동안 많이 사랑하는 내용인데, 중간에 문장이 섞인 오타도 있고 이 파트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여러모로 신경을 덜 쓴 부분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이후 다른 분야에서는 저자마다 자기 분야를 살려서 행복에 대해서 전파하는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명상 쪽으로 집중해보라는 저자도 있었고,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저자도 있었다. 그 중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는 글은 최인철 교수의 <행복은 몸에 있다>였다.

  우리는 소비사회에서 살면서 소비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 저자에 따르면 소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소비할 것이냐, 무언가를 경험하고 체험하기 위해 돈을 쓸 것이냐가 바로 그것이다. 소유하기 위한 소비의 결과로는 재화가 남고, 경험하기 위해 소비한 결과로는 경험이 남는다. 예시로 전자는 옷이나 장신구를 들 수 있고, 후자는 공연이나 여행을 들 수 있다. 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후자가 훨씬 더 지속성이 뛰어나고 행복의 강도도 높다고 한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도 수입 규모도 다르지만 어차피 소비하면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있다면, 경험을 택하는 쪽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나는 실제로 재화를 사서 남기기보다는 소위 말하는 문화생활로 경험을 쌓는 데 더 치중하는 편이라 이 편이 전반적으로 감사하게 와닿았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헛짓거리만은 아니구나. 결국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당연한 수순이었구나. 이 부분에는 참 많이 감사를 표하고싶다. 그리고 내가 행복해진다면 내 주변사람도 행복해질 것이고 이상적으로 나아가면 우리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종의 방향과 정당성을 제시해준 것 같아서 이 장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장마다 저자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기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내용도 일부 있었지만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인문학이 끊임없이 고민해오던 그 질문이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행복이 멀리 있다고 생각말고 주변에서 찾고자 노력하며 내 스스로에게 좀더 관심을 가지고, 남이 아닌 나의 삶을 살며 그리고 주변에 친절과 자비를 베풀라는 말이 이 책에서 전하고 있는 바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실천하기는 힘들겠지만, 일부일부씩을 그때그때 적용해나가게 된다면 내 삶도 어느순간 뒤돌아봤을 때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든 책이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실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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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3 - 작은 시도로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스몰 빅의 놀라운 힘, 완결편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로버트 치알디니 외 지음, 김은령.김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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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한참 전에 설득의 심리학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지금보다 어리고 어리석었기에 미처 다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이 넘쳐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설득력있고 유용했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완결편이 나왔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작은 시도로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이자 그 방법을 이 책에서는 "스몰 빅"이라고 지칭한다. 이 책에는 52개의 스몰 빅이 간략하지만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 있다. 이 책의 강점을 꼽자면 적은 비용을 들여 효과적인 결과물을 낼 비법을 1.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서 제시하고, 2. 그것들을 개념화시켜서 정리하기 쉽게끔 만들었으며, 3. 이런 방식들의 쓰임을 어디까지나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활용하게끔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책의 역자가 제시해준 장점이고, 또다른 장점으로는 챕터 어디를 펼쳐서 읽어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해가 될 정도로 단편들의 묶음을 잘 구성해놨다는 점이 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정독하기란 (반드시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하는 문학장르가 아니고서야) 쉽지 않은 일이다. 출퇴근길에 간단히 아무데나 끌리는 챕터를 펴서 읽어내려가도 이해가 될 만큼 한편한편의 내용이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다. 아래 사진처럼 어느 챕터를 펼쳐도 길을 잃지 않게끔 도와주는 장치가 군데군데 배체돼있는 친절한 책이다.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눈으로만 정독하는 습성을 지닌 사람이지만 이 책은 두고두고 쓸모가 있을 법하여 내용을 충분히 정독하며 하나하나 메모해가며 읽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내용 몇가지로는 우선 사람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하려는 습성이 있다는 점. 즉 하나의 개체인 당신이 얼마나 세금을 내지 않았는지보다 남들이 얼마나 냈는지 납부율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납부율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책에는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들 눌러보는 실시간 인기검색어도 이 범주에 들 수 있다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남들이 하려는 만큼의 평균치를 따라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기억에 남는 점으로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떠한 일을 하겠다/혹은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그 행위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언제까지 무슨일을 완수하겠다고 스스로 되네이는 것만으로도 뇌리에 충분히 각인된다는 맥락인듯하다. 아무리 전략이 좋아도 뭐 이런 경우에는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예를 들어 나는 오늘까지 할일을 마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고 선언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할일의 기한이 나도 모르는 새에 당겨져서 이미 1주일 전에 마감이었던 것이다. 이런 당황스러운 경우 빼고는 이 전략이 사소하지만 큰 결과를 가져다주는 의미있는 그런 전략일 것이다.
  그밖에도 어떤 업무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 앞으로 남은 과정보다는 지금까지 이룬 업적에 더 집중하면 성취도가 올라간다는 점을 책을 통해서 몸소 보여주었다.책이 거의 끝나가는 부분에 이런 챕터를 배치한 것은 이 자체가 설득의 심리학을 실천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게 했다. 놀라웠다. 지금까지 그냥 단편적으로 무슨 노하우를 제시한 책은 많이 봤지만 이를 실제로 책 내부에서도 실천하고 있는 책은 처음 접해봤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이 그런 부분이다.



  이외에도 당장 일어날 무언가를 결정하기보다는 유예기간을 주고 그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결정을 할때 우리는 부담감을 덜 느낀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같은 요청에 대해서도 우리는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하는 것은 좀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미래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 호소 전략"이라고 제시하는 등, 구체적인 용어를 제시하는 과정을 통해서 머리속에서 내용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있다. 앞서 언급했던 내용이지만, 이런 사례들을 추상적으로 제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실험에서 나온 수치들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기 경험만을 강조한 자기계발서류 교양도서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책을 한 코스의 요리로 치자면 별미는 맨 마지막에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 이름은 "최고의 것은 마지막을 위해. 스몰 빅이 어떤 차이를 만들 수 있을까?"이다. 제일 좋은 것은 제일 뒤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책의 앞부분에 나왔던, "의외의 선물이나 서비스로 고객을 감동시키고자 한다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하라"는 전략을 고스란히 적용하여 맨 마지막 챕터 뒤에 덤이자 정리본이 될만한 그런 챕터를 하나 더 얹어줬다. 이 점만으로도 충분히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만들어내는 효과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미처 이 글에 다 담지못한 여러가지 작지만 유용한 팁들이 이 책의 군데군데 풍성하게 배치되어 있지만, 그것이 산발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설득력 있게 와닿았던 이유는 책 전체를 통해서 그 전략을 몸소 보여주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역자도 일반 역자가 아니고 원저자인 로버트 치알디니에게 직접 교육을 받고 스스로도 관련 강의를 하고있는 전문가라서 번역서라는 사실을 읽는동안 잠시 잊을만큼 매끄럽다. 그런 점이 이 책에 있어서 또하나의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가독성은 중요하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냥 유용하겠거니 별 기대않고 읽다가도 점차 설득당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책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말하고자하는 바는 설득 그 자체이다. 설득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법한 여러 전략을 얻어간다. 이 사실을 내가 진작에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감이 들던 내용도 있었다. 내가 겪었던 그런 시행착오를 좀 더 줄이기 위해 주변에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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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거장의 작품중에서도 덜 유명한 작품들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와 루쉰의 작품세계를 연대순으로 탐독해나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들이 거장이라는 사실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지만 정작 우리는 그들의 대표작을 한두개 알거나 읽어봤을 뿐입니다. 꼭 1등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치있고 의미있듯이 그들의 작품도 대표작이 아니더라도 의미있다는 것을 올해의 독서계획을 통해 증명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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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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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심리학자가 쓴 이론서도, 철학자가 쓴 사상서도, 그렇다고 자기계발서도 아닌, 한 소설가가 쓴 일종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그래서인지 철학사상서 특유의 어렵고 진지한 분위기도, 자기계발서 특유의 추상적인 분위기도 아니고 소설책의 에필로그와 소설가의 경험을 버무려놓은 듯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화나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뤘던 내용을 덧붙이며 서술하기 때문에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일반 대중도 공감할 만한 내용으로 풀어쓴 작가의 문체와, 빠르면 한두시간 안에 다 읽을만한 분량이 부담감을 덜어주는 것은 덤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분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서양 용어인 "individual"을 풀어내며 "in(~할수없는)+dividual(나누다,가르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사람은 온전한 하나의 존재가 아닌, 여러 가지 분인이 두루 섞여있는 결합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분인을 "individual"에서 나온 "dividual"에 해당하는 개념이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즉, 분인(diviaul)+분인(diviaul)+분인(diviaul)+그 밖의 여러개의 분인들(diviauls)=이 개인(individual)이라는 의미이다. 상대(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나의 모습이 즉 분할 가능한 분인이다. 이 내용만 알면 일단 이 책의 절반은 이해가 된다. 


  나라는 존재는 상대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이는 내가 이중인격이라서가 아니고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 상황에 따라 적절한 분인화를 잘 해내는 사람은 성공적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반대로 분인화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곤란함을 겪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누구에게나 잘 해주는 사람은 연애 상대로 좋지 않은데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분인화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연인이 되고 나서도 연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굴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에 따라 다른 내모습을 보이는 개념인 분인화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분인화는 상대방이라는 존재에 의존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뒤집어보면 분인으로 이루어진 나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다. 절반쯤은 상대방의 것이 된다. 그렇기에 친한 사람이 자살 등의 이유로 삶을 마감하면 주변인이 겪게되는 상실감 등을 이 작가는 예측하지 못한 분인의 소멸이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살면서 누구나 겪을법한 일에 분인이라는 개념을 대입시켜서 쉽게 이해하게끔 하는 내용이 계속해서 나온다. 자신의 작품에서 나왔던 인물들의 상황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는 것을 보고 문득 깨닫게 됐다. 아 이사람 소설가였지. 그런 점에서 이 작가의 소설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이 정도로 자기 세계가 확고한 사람이 쓴 내용은 달라도 무언가 다를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분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작가는 진짜 나는 없다는 약간은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는 주장으로 책을 마무리해간다.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허무주의가 아니고, 진짜 나/가짜 나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없고 흑백논리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그 어떤 분인도 진정한 나일수밖에 없고 그렇게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주는 존재인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는 길만이 오히려 나를 아끼는 방법이라는, 오래된 지혜같은 말을 건넨다. 이것이 이 작가가 살아가는 방식이구나, 참 따뜻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에서 다 적어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온 다양한 상황들, 다양한 예시들이 구시대의 그것이 아닌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적은 생동감있는 이야기라서 더욱 설득력있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다만 한가지 옥의 티를 찾아보자면, 일본 작가의 특성상 영어를 음차한 용어가 너무 많아서 이질적인 면이 있었다. 파워 해리스먼트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같은 용어는 한글로 대체하거나 아니면 원어 자체로 써주든가 하는게 더 낫지 않았나 싶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읽는데 몰입을 방해하는 정도는 아니었기에 이 책을 한 작가의 사상이 담긴 차분하지만 따뜻한 에세이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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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작품선 - 이룸근대문학텍스트
이광수 지음, 사에구사 도시카쓰 엮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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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의 단편 소설에 나타난 욕구에 대한 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욕구를 표출하는 데 있어서 매우 솔직하다 못해 뻔뻔하기 짝이 없거나, 혹은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욕구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억제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이다. 전자의 시간적 배경은 이광수가 살던 시대이고 후자의 시간적 배경은 아주 먼 과거라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특히 후자는 신라 시대의 설화를 각색하여 만든 이야기가 많은 것으로 보아서 어찌 보면 이는 중국사에서 태평성대라고 회상되던 요순시대같은 시대라고도 볼 수 있다. 얼핏 보기에도 이상적인 인간상을 다룬 후자의 이야기들은 시간적으로도 거리감이 있기에 현실감이 덜하다. 이광수가 본 현실은 전자에 가까웠기에 관련된 이야기는 전자가 훨씬 많다. 이광수의 모든 소설들을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 단편선에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욕구란 어떻게 보면 상당히 개인적인 영역이면서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보편적인 영역이다. 사회적인 존재이기 이전에 동물이기 때문에 욕구가 들고 그것을 채우기를 갈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는 욕구를 대놓고 드러내는 것을 상당히 저급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과거의 조선시대 사회에서는 표면상으로 드러내기를 극도로 꺼려하던 대상이 바로 욕구다. 체면과 선비다움을 중시하던 과거 조선시대에서 양반들은 제 아무리 배가 고파도 허겁지겁 먹지 않고 오히려 늘 입맛이 없다는 말을 인사치레처럼 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조차도 표면적으로 드러내기를 꺼렸던 것이다. 식욕뿐만 아니라 성욕이나 수면욕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으로서 향유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인 사랑이라는 요소도 대놓고 드러내기를 금기시되고 터부로 여겨졌다. 그랬던 욕구에 대한 인식을 이광수는 상당히 파격적인 방식으로 표면으로, 대중들에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단편선의 첫 번째 순서로 나온 <나>는 욕구에 대해 솔직하다 못해 뻔뻔하다. 유부남인 ‘나’가 과부인 문의 부인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상당히 거북하게 전개된다. ‘나’는 이기적인 필요에 의해 이미 결혼을 해 놓고는 아내는 타박하면서 오히려 가질 수 없는 대상인 과부를 넘본다. 자신의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려는 욕구와 동시에 사회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과부를 탐하는 육욕을 동시에 느끼는 ‘나’는 욕구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솔직하다. 이 제목이 ‘나’인 것은 작가인 이광수가 욕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서 지은 것으로 판단된다. 대비적으로 마지막 작품이지만 시대적으로는 이광수의 초기작인 <사랑인가>에서는 욕구에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꿈을 실현할 가능성도 없이 불행해지는 주인공이 나온다. 이런 점에서 교훈을 얻은 것일까. 욕구는 당연한 것이고 드러내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이광수의 주장은 이 뒤로 전개되는 작품들에 잘 나온다.

 

  특이하게도 두 번째 순서인 <꿈>에는 승려인 주인공이 욕구를 느끼는 내용이 나온다. 그 누구보다도 욕구를 절제하고 억제하여야 하는 승려가 욕구에 못 이겨 외간 처자와 야반도주를 하고 말년에는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러고 난 뒤 깨어보니 꿈이라는 이야기의 구조는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구조이지만 욕구의 측면에서는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승려도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인 이상 욕구를 느낀다는 점을 빌려서 이광수는 욕구가 누구에게나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임을 드러내려 한다. 다만 그것을 도덕이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효과적으로 절제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뒤로 가면 욕구에 있어서 더욱 솔직해져서 불결해 보이기까지 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무명>인데, 감옥 안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식욕, 수면욕 등의 아주 기초적인 욕구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인물들이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도 욕구를 도덕으로 절제하지 못한 데에 있다. 그런 점에서 <떡덩이 영감>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은 자신에게 귀찮은 일을 떡덩이 영감에게 모조리 맡기지만 그에 대해서는 매정하리만큼 무관심하다. 자신의 욕구를 채울 때에는 와서 찾아보지만 영감이 죽고 난 뒤에는 뒤처리를 귀찮아할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작품선의 후반에 나오는 <가실>은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욕구에 대해 무절제적이고 뻔뻔한 당대 사회에 대해 제시된 일종의 이상적인 인간형이 가실이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안에서 효과적으로 절제한다. 그 결과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동안의 일에 대해 보상을 받는 것처럼, 자신의 욕구를 위해 떠나가게 된다. 이는 이광수가 보기에 일종의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시간적으로도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이기에 당대와는 다른 조건이 많을 터이고, 세상은 가실의 이야기처럼 그리 호락호락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적어도 이광수가 살던 시대에는 그랬다. 이 이야기는 일종의 요순시대에 대한 환상처럼 과거에는 이랬던 적도 있었다는 점을 막연하게 꿈처럼 제시함으로써 일종의 이상향을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더 이상 선비의 체면치레를 중요하게 여길 수 없고 생존을 위해 욕구에 대해 솔직해져야만 하는 시대에 이광수가 태어났기에, 그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은 당연히 그렇다고 느꼈다. 욕구에 대해 쉬쉬하고 솔직해지지 못한 양반들은 몰락해갔다. 그랬기에 이광수는 살기 위해서는 욕구에 대해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런 주장을 직접적으로 펼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의 작품을 통해서 보건대 그는 욕구에 상당히 충실했다. 물론 과하게 충실해서 거북스러울 정도까지 간 작품도 있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 그러한데 이는 이광수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 일종의 변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욕구에 충실한 것과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행위를 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다 보니 미처 그 규범이 내면화되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그런 면 마저도 현실에 적응해나간 그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초기작인 <사랑인가>에서는 보다 순수한 형태로 사랑이 제시되었지만 이후의 작품인 <나>에서는 보다 세속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측면을 제외하면 욕구에 대한 솔직함은 사회적 규범에도 적절해 보인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사회적인 규범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욕구에 충실해질 필요가 있다. 이 주장이 바로 이광수가 단편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의 작품에서 과거는 긍정적인 면모가 지배적이고 현재는 그 반대로 묘사되어 나타난다. 규범과 욕구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던 과거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독 그의 작품에는 꿈과 관련된 제목이 많다. 어쩌면 이광수는 소설을 통해서 문화 지체 현상을 극복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에 나온 시간들은 욕구에 충실하다. 그렇지 못하면 존재할 수가 없다. 전반적으로 현재의 자신에 대한 약간의 자기변호와 시대에 대한 새로운 가치 판단이 보인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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