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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세상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ㅣ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고은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12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개중에는 괜찮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본문의 말을 따르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 정도로 쳐두자.
12편의 글쓴이는 모두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직업도 제각각 특색이 있다. 저마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전체적으로 긍정적이었다.
이전에 <나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등을 읽으며 "나"라는 존재 자체의 내면에만 집중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는 그 다음 단계인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1부와 2부로 나뉘는 이 책은 1부에서는 "너를 살피고 나를 다스리는 지혜"라는 주제로, 주로 과거의 이야기를 예로 많이 들며 과거의 지혜를 좇고자 시도한다. 황금기의 그리스, 임진왜란기의 조선, 톨스토이 등이 누비던 러시아를 누비며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비슷한지, 그리고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살아갔는지 위기를 극복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징비록>에 대해서 다루는 <징비록, 과거를 경계해 훗날을 대비하다> 파트는 기억에 남는다. 흔히 철학 하면 서양을 떠올리고 그것이 주류인 것이 당연시되는 그런 풍토에 살고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사실 지명부터가 낯설어 와닿지 않는 서양의 사례보다는 동양의 사례가 내게는 훨씬 의미있게 다가온다. 이미 우리 조상중에도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하며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사색한 사람이 많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징비록>을 쓴 유성룡이다. 그는 조선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기간동안 직접 겪은 바를 바탕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하고 부국강병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사람이다. 정작 <징비록>에 주목한 곳은 조선이 아닌 일본이라서 이런 훌륭한 시각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데에 안타까움이 남기도 한다. 결과적으로는 과거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과거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반성 없이 그저 과열된 감정으로만 대응하는 것은 득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런 내용을 딱딱하지 않고 실제로 임진왜란기의 일화를 통해서 무거운 주제임에도 옛날이야기처럼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주고싶다.
이외에도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현재를 더 알차게 살아가라는 톨스토이의 이야기를 담은 <톨스토이, 성장을 말하다>라는 부분도 인상깊다. 아래 대목에 여기서 전하고싶은 내용이 얼추 다 담겨있는 듯하다.
죽음을 기억하면 현재가 놀랄 만큼 풍요로워집니다. 매 순간이 선물처럼 느껴지고 또 그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되지요. 그래서 톨스토이는 <인생의 길>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오늘 밤까지 살아라. 동시에 영원히 살아라."
참 의미 있는 대목입니다. 오늘 밤까지 살라는 것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바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살라는 말에는 바로 죽음을 기억하기 때문에 삶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유한한 삶과 영원은 하나가 됩니다. 이때의 영원히 산다는 것은 끝없이 지속되는 시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때의 영원은 양의 개념이 아니라 충만한 시간, 완전히 채워진 시간, 그리고 풍요로운 시간으로 해석됩니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중 <톨스토이, 성장을 말하다>에서 인용

2부에서는 "삶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다"라는 주제를 걸고 상처, 고통을 넘어 행복해질 수 있는 여러 방안에 대해 제시한다. 앞부분에서 다소 객관적으로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다시 침착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면, 뒷부분인 2부에서는 결국 행복은 우리 내면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요약하자면 그렇다. 다만 1부에 비해서는 실망스러운 내용이 일부 있었다.
<고통을 넘어 희망으로>라는 대목에서는 내가 가진 것보다 더 큰 것을 원하기 때문에 고통받게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나 부적절한 예가 오히려 개인적으론 내용 몰입에 방해가 됐다. 인용하자면 아래와 같다.
대부분의 여성은 쇼핑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주로 눈으로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생각지도 않았던 봉투라도 건네면 큰맘 먹고 아웃렛에 가서 명품 백을 삽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동창회에 나갑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자기보다 훨씬 공부를 못했던 친구가 신상백을 들고 나왔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이렇게 욕구를 끌어올렸다가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우리는 고통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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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성역할에 대한 기치관 잘 들었습니다.
저자인 박승천 교수님은 이런 예시를 듣고나면 기분이 어떤가요? 되묻고 싶은 대목이다. 아무리 저자가 남성이고 연령대가 있고 가치관이 지금 세대와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성차별적인 발언이고 실례이지 싶다. 여성이 쇼핑을 좋아하고, 직접 돈을 벌지 않으며,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 중에서 여유가 생기면, 명품백을 사고, 그리고 그것을 자랑차원에서 동창회에 들고갔다가 망신을 당한다는 사례는 도대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 너무 마초스러운 예시 아닌가? 저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본인 주변에서 겪었던 사례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행복을 전하는 강연을 담은 책에 포함되기에는 부적절하다못해 불쾌하기까지 한 내용이다. 다른 내용은 흔히들 말하는 자기계발서랑 별다를 것 없었다. 친구들에게 연락하는걸 주저하지 말고 사는 동안 많이 사랑하는 내용인데, 중간에 문장이 섞인 오타도 있고 이 파트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여러모로 신경을 덜 쓴 부분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이후 다른 분야에서는 저자마다 자기 분야를 살려서 행복에 대해서 전파하는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명상 쪽으로 집중해보라는 저자도 있었고,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저자도 있었다. 그 중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는 글은 최인철 교수의 <행복은 몸에 있다>였다.
우리는 소비사회에서 살면서 소비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 저자에 따르면 소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소비할 것이냐, 무언가를 경험하고 체험하기 위해 돈을 쓸 것이냐가 바로 그것이다. 소유하기 위한 소비의 결과로는 재화가 남고, 경험하기 위해 소비한 결과로는 경험이 남는다. 예시로 전자는 옷이나 장신구를 들 수 있고, 후자는 공연이나 여행을 들 수 있다. 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후자가 훨씬 더 지속성이 뛰어나고 행복의 강도도 높다고 한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도 수입 규모도 다르지만 어차피 소비하면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있다면, 경험을 택하는 쪽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나는 실제로 재화를 사서 남기기보다는 소위 말하는 문화생활로 경험을 쌓는 데 더 치중하는 편이라 이 편이 전반적으로 감사하게 와닿았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헛짓거리만은 아니구나. 결국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당연한 수순이었구나. 이 부분에는 참 많이 감사를 표하고싶다. 그리고 내가 행복해진다면 내 주변사람도 행복해질 것이고 이상적으로 나아가면 우리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종의 방향과 정당성을 제시해준 것 같아서 이 장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장마다 저자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기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내용도 일부 있었지만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인문학이 끊임없이 고민해오던 그 질문이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행복이 멀리 있다고 생각말고 주변에서 찾고자 노력하며 내 스스로에게 좀더 관심을 가지고, 남이 아닌 나의 삶을 살며 그리고 주변에 친절과 자비를 베풀라는 말이 이 책에서 전하고 있는 바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실천하기는 힘들겠지만, 일부일부씩을 그때그때 적용해나가게 된다면 내 삶도 어느순간 뒤돌아봤을 때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든 책이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실천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