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심리학자가 쓴 이론서도, 철학자가 쓴 사상서도, 그렇다고 자기계발서도 아닌, 한 소설가가 쓴 일종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그래서인지 철학사상서 특유의 어렵고 진지한 분위기도, 자기계발서 특유의 추상적인 분위기도 아니고 소설책의 에필로그와 소설가의 경험을 버무려놓은 듯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화나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뤘던 내용을 덧붙이며 서술하기 때문에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일반 대중도 공감할 만한 내용으로 풀어쓴 작가의 문체와, 빠르면 한두시간 안에 다 읽을만한 분량이 부담감을 덜어주는 것은 덤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분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서양 용어인 "individual"을 풀어내며 "in(~할수없는)+dividual(나누다,가르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사람은 온전한 하나의 존재가 아닌, 여러 가지 분인이 두루 섞여있는 결합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분인을 "individual"에서 나온 "dividual"에 해당하는 개념이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즉, 분인(diviaul)+분인(diviaul)+분인(diviaul)+그 밖의 여러개의 분인들(diviauls)=이 개인(individual)이라는 의미이다. 상대(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나의 모습이 즉 분할 가능한 분인이다. 이 내용만 알면 일단 이 책의 절반은 이해가 된다. 


  나라는 존재는 상대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이는 내가 이중인격이라서가 아니고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 상황에 따라 적절한 분인화를 잘 해내는 사람은 성공적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반대로 분인화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곤란함을 겪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누구에게나 잘 해주는 사람은 연애 상대로 좋지 않은데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분인화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연인이 되고 나서도 연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굴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에 따라 다른 내모습을 보이는 개념인 분인화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분인화는 상대방이라는 존재에 의존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뒤집어보면 분인으로 이루어진 나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다. 절반쯤은 상대방의 것이 된다. 그렇기에 친한 사람이 자살 등의 이유로 삶을 마감하면 주변인이 겪게되는 상실감 등을 이 작가는 예측하지 못한 분인의 소멸이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살면서 누구나 겪을법한 일에 분인이라는 개념을 대입시켜서 쉽게 이해하게끔 하는 내용이 계속해서 나온다. 자신의 작품에서 나왔던 인물들의 상황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는 것을 보고 문득 깨닫게 됐다. 아 이사람 소설가였지. 그런 점에서 이 작가의 소설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이 정도로 자기 세계가 확고한 사람이 쓴 내용은 달라도 무언가 다를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분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작가는 진짜 나는 없다는 약간은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는 주장으로 책을 마무리해간다.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허무주의가 아니고, 진짜 나/가짜 나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없고 흑백논리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그 어떤 분인도 진정한 나일수밖에 없고 그렇게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주는 존재인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는 길만이 오히려 나를 아끼는 방법이라는, 오래된 지혜같은 말을 건넨다. 이것이 이 작가가 살아가는 방식이구나, 참 따뜻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에서 다 적어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온 다양한 상황들, 다양한 예시들이 구시대의 그것이 아닌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적은 생동감있는 이야기라서 더욱 설득력있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다만 한가지 옥의 티를 찾아보자면, 일본 작가의 특성상 영어를 음차한 용어가 너무 많아서 이질적인 면이 있었다. 파워 해리스먼트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같은 용어는 한글로 대체하거나 아니면 원어 자체로 써주든가 하는게 더 낫지 않았나 싶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읽는데 몰입을 방해하는 정도는 아니었기에 이 책을 한 작가의 사상이 담긴 차분하지만 따뜻한 에세이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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