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심리학 3 - 작은 시도로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스몰 빅의 놀라운 힘, 완결편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로버트 치알디니 외 지음, 김은령.김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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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한참 전에 설득의 심리학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지금보다 어리고 어리석었기에 미처 다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이 넘쳐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설득력있고 유용했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완결편이 나왔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작은 시도로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이자 그 방법을 이 책에서는 "스몰 빅"이라고 지칭한다. 이 책에는 52개의 스몰 빅이 간략하지만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 있다. 이 책의 강점을 꼽자면 적은 비용을 들여 효과적인 결과물을 낼 비법을 1.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서 제시하고, 2. 그것들을 개념화시켜서 정리하기 쉽게끔 만들었으며, 3. 이런 방식들의 쓰임을 어디까지나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활용하게끔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책의 역자가 제시해준 장점이고, 또다른 장점으로는 챕터 어디를 펼쳐서 읽어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해가 될 정도로 단편들의 묶음을 잘 구성해놨다는 점이 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정독하기란 (반드시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하는 문학장르가 아니고서야) 쉽지 않은 일이다. 출퇴근길에 간단히 아무데나 끌리는 챕터를 펴서 읽어내려가도 이해가 될 만큼 한편한편의 내용이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다. 아래 사진처럼 어느 챕터를 펼쳐도 길을 잃지 않게끔 도와주는 장치가 군데군데 배체돼있는 친절한 책이다.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눈으로만 정독하는 습성을 지닌 사람이지만 이 책은 두고두고 쓸모가 있을 법하여 내용을 충분히 정독하며 하나하나 메모해가며 읽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내용 몇가지로는 우선 사람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하려는 습성이 있다는 점. 즉 하나의 개체인 당신이 얼마나 세금을 내지 않았는지보다 남들이 얼마나 냈는지 납부율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납부율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책에는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들 눌러보는 실시간 인기검색어도 이 범주에 들 수 있다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남들이 하려는 만큼의 평균치를 따라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 다른 기억에 남는 점으로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떠한 일을 하겠다/혹은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그 행위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언제까지 무슨일을 완수하겠다고 스스로 되네이는 것만으로도 뇌리에 충분히 각인된다는 맥락인듯하다. 아무리 전략이 좋아도 뭐 이런 경우에는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예를 들어 나는 오늘까지 할일을 마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고 선언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할일의 기한이 나도 모르는 새에 당겨져서 이미 1주일 전에 마감이었던 것이다. 이런 당황스러운 경우 빼고는 이 전략이 사소하지만 큰 결과를 가져다주는 의미있는 그런 전략일 것이다.
  그밖에도 어떤 업무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 앞으로 남은 과정보다는 지금까지 이룬 업적에 더 집중하면 성취도가 올라간다는 점을 책을 통해서 몸소 보여주었다.책이 거의 끝나가는 부분에 이런 챕터를 배치한 것은 이 자체가 설득의 심리학을 실천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게 했다. 놀라웠다. 지금까지 그냥 단편적으로 무슨 노하우를 제시한 책은 많이 봤지만 이를 실제로 책 내부에서도 실천하고 있는 책은 처음 접해봤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이 그런 부분이다.



  이외에도 당장 일어날 무언가를 결정하기보다는 유예기간을 주고 그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결정을 할때 우리는 부담감을 덜 느낀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같은 요청에 대해서도 우리는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하는 것은 좀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미래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 호소 전략"이라고 제시하는 등, 구체적인 용어를 제시하는 과정을 통해서 머리속에서 내용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있다. 앞서 언급했던 내용이지만, 이런 사례들을 추상적으로 제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실험에서 나온 수치들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기 경험만을 강조한 자기계발서류 교양도서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책을 한 코스의 요리로 치자면 별미는 맨 마지막에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 이름은 "최고의 것은 마지막을 위해. 스몰 빅이 어떤 차이를 만들 수 있을까?"이다. 제일 좋은 것은 제일 뒤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책의 앞부분에 나왔던, "의외의 선물이나 서비스로 고객을 감동시키고자 한다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하라"는 전략을 고스란히 적용하여 맨 마지막 챕터 뒤에 덤이자 정리본이 될만한 그런 챕터를 하나 더 얹어줬다. 이 점만으로도 충분히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만들어내는 효과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미처 이 글에 다 담지못한 여러가지 작지만 유용한 팁들이 이 책의 군데군데 풍성하게 배치되어 있지만, 그것이 산발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설득력 있게 와닿았던 이유는 책 전체를 통해서 그 전략을 몸소 보여주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역자도 일반 역자가 아니고 원저자인 로버트 치알디니에게 직접 교육을 받고 스스로도 관련 강의를 하고있는 전문가라서 번역서라는 사실을 읽는동안 잠시 잊을만큼 매끄럽다. 그런 점이 이 책에 있어서 또하나의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가독성은 중요하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냥 유용하겠거니 별 기대않고 읽다가도 점차 설득당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책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말하고자하는 바는 설득 그 자체이다. 설득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법한 여러 전략을 얻어간다. 이 사실을 내가 진작에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감이 들던 내용도 있었다. 내가 겪었던 그런 시행착오를 좀 더 줄이기 위해 주변에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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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거장의 작품중에서도 덜 유명한 작품들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와 루쉰의 작품세계를 연대순으로 탐독해나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들이 거장이라는 사실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지만 정작 우리는 그들의 대표작을 한두개 알거나 읽어봤을 뿐입니다. 꼭 1등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치있고 의미있듯이 그들의 작품도 대표작이 아니더라도 의미있다는 것을 올해의 독서계획을 통해 증명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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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무엇인가 - 진정한 나를 깨우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 에세이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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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심리학자가 쓴 이론서도, 철학자가 쓴 사상서도, 그렇다고 자기계발서도 아닌, 한 소설가가 쓴 일종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그래서인지 철학사상서 특유의 어렵고 진지한 분위기도, 자기계발서 특유의 추상적인 분위기도 아니고 소설책의 에필로그와 소설가의 경험을 버무려놓은 듯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화나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뤘던 내용을 덧붙이며 서술하기 때문에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일반 대중도 공감할 만한 내용으로 풀어쓴 작가의 문체와, 빠르면 한두시간 안에 다 읽을만한 분량이 부담감을 덜어주는 것은 덤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분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서양 용어인 "individual"을 풀어내며 "in(~할수없는)+dividual(나누다,가르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사람은 온전한 하나의 존재가 아닌, 여러 가지 분인이 두루 섞여있는 결합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분인을 "individual"에서 나온 "dividual"에 해당하는 개념이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즉, 분인(diviaul)+분인(diviaul)+분인(diviaul)+그 밖의 여러개의 분인들(diviauls)=이 개인(individual)이라는 의미이다. 상대(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나의 모습이 즉 분할 가능한 분인이다. 이 내용만 알면 일단 이 책의 절반은 이해가 된다. 


  나라는 존재는 상대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이는 내가 이중인격이라서가 아니고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 상황에 따라 적절한 분인화를 잘 해내는 사람은 성공적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반대로 분인화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곤란함을 겪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누구에게나 잘 해주는 사람은 연애 상대로 좋지 않은데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분인화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연인이 되고 나서도 연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굴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에 따라 다른 내모습을 보이는 개념인 분인화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분인화는 상대방이라는 존재에 의존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뒤집어보면 분인으로 이루어진 나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다. 절반쯤은 상대방의 것이 된다. 그렇기에 친한 사람이 자살 등의 이유로 삶을 마감하면 주변인이 겪게되는 상실감 등을 이 작가는 예측하지 못한 분인의 소멸이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살면서 누구나 겪을법한 일에 분인이라는 개념을 대입시켜서 쉽게 이해하게끔 하는 내용이 계속해서 나온다. 자신의 작품에서 나왔던 인물들의 상황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는 것을 보고 문득 깨닫게 됐다. 아 이사람 소설가였지. 그런 점에서 이 작가의 소설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이 정도로 자기 세계가 확고한 사람이 쓴 내용은 달라도 무언가 다를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분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작가는 진짜 나는 없다는 약간은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는 주장으로 책을 마무리해간다.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허무주의가 아니고, 진짜 나/가짜 나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없고 흑백논리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그 어떤 분인도 진정한 나일수밖에 없고 그렇게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주는 존재인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는 길만이 오히려 나를 아끼는 방법이라는, 오래된 지혜같은 말을 건넨다. 이것이 이 작가가 살아가는 방식이구나, 참 따뜻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에서 다 적어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온 다양한 상황들, 다양한 예시들이 구시대의 그것이 아닌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적은 생동감있는 이야기라서 더욱 설득력있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다만 한가지 옥의 티를 찾아보자면, 일본 작가의 특성상 영어를 음차한 용어가 너무 많아서 이질적인 면이 있었다. 파워 해리스먼트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같은 용어는 한글로 대체하거나 아니면 원어 자체로 써주든가 하는게 더 낫지 않았나 싶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읽는데 몰입을 방해하는 정도는 아니었기에 이 책을 한 작가의 사상이 담긴 차분하지만 따뜻한 에세이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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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작품선 - 이룸근대문학텍스트
이광수 지음, 사에구사 도시카쓰 엮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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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의 단편 소설에 나타난 욕구에 대한 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욕구를 표출하는 데 있어서 매우 솔직하다 못해 뻔뻔하기 짝이 없거나, 혹은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욕구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억제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이다. 전자의 시간적 배경은 이광수가 살던 시대이고 후자의 시간적 배경은 아주 먼 과거라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특히 후자는 신라 시대의 설화를 각색하여 만든 이야기가 많은 것으로 보아서 어찌 보면 이는 중국사에서 태평성대라고 회상되던 요순시대같은 시대라고도 볼 수 있다. 얼핏 보기에도 이상적인 인간상을 다룬 후자의 이야기들은 시간적으로도 거리감이 있기에 현실감이 덜하다. 이광수가 본 현실은 전자에 가까웠기에 관련된 이야기는 전자가 훨씬 많다. 이광수의 모든 소설들을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 단편선에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욕구란 어떻게 보면 상당히 개인적인 영역이면서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보편적인 영역이다. 사회적인 존재이기 이전에 동물이기 때문에 욕구가 들고 그것을 채우기를 갈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는 욕구를 대놓고 드러내는 것을 상당히 저급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과거의 조선시대 사회에서는 표면상으로 드러내기를 극도로 꺼려하던 대상이 바로 욕구다. 체면과 선비다움을 중시하던 과거 조선시대에서 양반들은 제 아무리 배가 고파도 허겁지겁 먹지 않고 오히려 늘 입맛이 없다는 말을 인사치레처럼 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조차도 표면적으로 드러내기를 꺼렸던 것이다. 식욕뿐만 아니라 성욕이나 수면욕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으로서 향유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인 사랑이라는 요소도 대놓고 드러내기를 금기시되고 터부로 여겨졌다. 그랬던 욕구에 대한 인식을 이광수는 상당히 파격적인 방식으로 표면으로, 대중들에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단편선의 첫 번째 순서로 나온 <나>는 욕구에 대해 솔직하다 못해 뻔뻔하다. 유부남인 ‘나’가 과부인 문의 부인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상당히 거북하게 전개된다. ‘나’는 이기적인 필요에 의해 이미 결혼을 해 놓고는 아내는 타박하면서 오히려 가질 수 없는 대상인 과부를 넘본다. 자신의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려는 욕구와 동시에 사회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과부를 탐하는 육욕을 동시에 느끼는 ‘나’는 욕구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솔직하다. 이 제목이 ‘나’인 것은 작가인 이광수가 욕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서 지은 것으로 판단된다. 대비적으로 마지막 작품이지만 시대적으로는 이광수의 초기작인 <사랑인가>에서는 욕구에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꿈을 실현할 가능성도 없이 불행해지는 주인공이 나온다. 이런 점에서 교훈을 얻은 것일까. 욕구는 당연한 것이고 드러내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이광수의 주장은 이 뒤로 전개되는 작품들에 잘 나온다.

 

  특이하게도 두 번째 순서인 <꿈>에는 승려인 주인공이 욕구를 느끼는 내용이 나온다. 그 누구보다도 욕구를 절제하고 억제하여야 하는 승려가 욕구에 못 이겨 외간 처자와 야반도주를 하고 말년에는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러고 난 뒤 깨어보니 꿈이라는 이야기의 구조는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구조이지만 욕구의 측면에서는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승려도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인 이상 욕구를 느낀다는 점을 빌려서 이광수는 욕구가 누구에게나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임을 드러내려 한다. 다만 그것을 도덕이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효과적으로 절제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뒤로 가면 욕구에 있어서 더욱 솔직해져서 불결해 보이기까지 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무명>인데, 감옥 안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식욕, 수면욕 등의 아주 기초적인 욕구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인물들이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도 욕구를 도덕으로 절제하지 못한 데에 있다. 그런 점에서 <떡덩이 영감>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은 자신에게 귀찮은 일을 떡덩이 영감에게 모조리 맡기지만 그에 대해서는 매정하리만큼 무관심하다. 자신의 욕구를 채울 때에는 와서 찾아보지만 영감이 죽고 난 뒤에는 뒤처리를 귀찮아할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작품선의 후반에 나오는 <가실>은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욕구에 대해 무절제적이고 뻔뻔한 당대 사회에 대해 제시된 일종의 이상적인 인간형이 가실이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안에서 효과적으로 절제한다. 그 결과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동안의 일에 대해 보상을 받는 것처럼, 자신의 욕구를 위해 떠나가게 된다. 이는 이광수가 보기에 일종의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시간적으로도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이기에 당대와는 다른 조건이 많을 터이고, 세상은 가실의 이야기처럼 그리 호락호락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적어도 이광수가 살던 시대에는 그랬다. 이 이야기는 일종의 요순시대에 대한 환상처럼 과거에는 이랬던 적도 있었다는 점을 막연하게 꿈처럼 제시함으로써 일종의 이상향을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더 이상 선비의 체면치레를 중요하게 여길 수 없고 생존을 위해 욕구에 대해 솔직해져야만 하는 시대에 이광수가 태어났기에, 그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은 당연히 그렇다고 느꼈다. 욕구에 대해 쉬쉬하고 솔직해지지 못한 양반들은 몰락해갔다. 그랬기에 이광수는 살기 위해서는 욕구에 대해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런 주장을 직접적으로 펼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의 작품을 통해서 보건대 그는 욕구에 상당히 충실했다. 물론 과하게 충실해서 거북스러울 정도까지 간 작품도 있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 그러한데 이는 이광수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 일종의 변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욕구에 충실한 것과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행위를 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다 보니 미처 그 규범이 내면화되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그런 면 마저도 현실에 적응해나간 그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초기작인 <사랑인가>에서는 보다 순수한 형태로 사랑이 제시되었지만 이후의 작품인 <나>에서는 보다 세속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측면을 제외하면 욕구에 대한 솔직함은 사회적 규범에도 적절해 보인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사회적인 규범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욕구에 충실해질 필요가 있다. 이 주장이 바로 이광수가 단편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의 작품에서 과거는 긍정적인 면모가 지배적이고 현재는 그 반대로 묘사되어 나타난다. 규범과 욕구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던 과거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독 그의 작품에는 꿈과 관련된 제목이 많다. 어쩌면 이광수는 소설을 통해서 문화 지체 현상을 극복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에 나온 시간들은 욕구에 충실하다. 그렇지 못하면 존재할 수가 없다. 전반적으로 현재의 자신에 대한 약간의 자기변호와 시대에 대한 새로운 가치 판단이 보인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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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 - 삶의 지혜를 넘어 도전의 철학으로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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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설적이면서 호기로운 제목이었다. 제목 식으로 표현해보자면, 제목부터 이미 멱살잡고 한판 붙으면서 시작하는 책. 지금까지 어느 누가 동양철학과 맞짱을 나란히 둘 생각을 했을까? 동양철학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연상되곤 하는 단어가 유교, 불교, 공자, 맹자, 예, 도처럼 다소 고분고분하면서도 조용한 어감의 단어이다. 이 책에서는 바로 그런 이미지가 오해라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제목부터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본문에서 충분히 그럴 만한 근거를 제시해 보였다.

 

  이 책의 특징으로는, 서양의 사상가 위주로 철학적인 주제를 이야기하던 기존의 교양서들과 다르게 동양의 사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다루고 있는 시대는 필요에 따라 고대에서부터 현대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마찬가지로 필요하다면 동양의 사상가와 서양의 사상가를 동일한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도 한다. 동서양의 철학을 각각 나누어서 배우고 이후에 대학 교양과목에서 리차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를 교재로 택해서 배워온 나에게 이 책은 철저하게 동양의, 동양에 의한, 동양을 위한 철학 교양서로 다가왔다. 비록 지금 세계가 서구화되고고 세상의 주류를 차지하는 세력이 서양으로 꼽힌다고 해도 분명히 비주류는 존재하며 비주류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힘의 논리에서 다소 억눌려 있어서 빛을 발하지 못했을 뿐이지 오히려 어보면 금광일 수도 있다. 동양 철학의 매력이자 강점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동양에 대한 편견을 파괴하듯이 파괴적이라고 할 수 있는 동양철학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모험을 떠나 도전하고 독립이라 할 수 있는 주제로 묶인 철학적인 이야기를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창조적인 주제로 묶은 뒤 선언하고 이제 미래를 향한 기획가 꿈을 담은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왜 이거만 사진이 작아졌는지 미스터리)

 

  생각해 보면 내가 수능을 볼 때 선택해서 열심히 공부하던 윤리 과목에서도 교과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은 서양 철학이었다. 동양에 살고 있는 내가 정작 동양 철학에 대해서는 깊게게 배우지 못한 것이다. 주류인 서양 철학을 배우느라 동양 철학에 대해서는 깊이 들어가지 못했던 나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마저도 내가 동양 철학 중에서 주류만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득이하게 주류 비주류라는 용어를 쓰지만 그것이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동양 철학에 조예가 깊지 않던 나는 이 책에서 "양자"라는 사상가를 처음 접했고, "묵자"와 "양자"가 당시에 사상적으로 양대산맥을 이루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묵자"가 단순히 사상을 이론적으로 펴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용병 집단을 결성해서 강대국의 침략으로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기를 해결해주는 천군(하늘이 내려준 군대)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사실도. 교과서에서는 알려주지 않던 얌전한 동양의 이면의 모습을 이 책에서 접할 수 있었다.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있으면서도 동양에 이미 스파르타쿠스보다 130년 이전에 비슷한 행적을 걸어간 "진승"이라는 사람이 있는 것 또한 처음으로 알았다. 단순히 흥미로운 일화를 전달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여기에서 법치주의 국가에서 나타날 수 있는 내재적인 결함을 묻고 이를 스파르타쿠스와 연관지을 수 있는 저자의 안목에 좋은 평가를 주고싶다.

 

  맹자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그의 사상이 도스토예프스키와 닮은 점이 많아서 놀랐다. 책에 나오는 부분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맹자는 실제로 지극히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을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있는 사람"은 물질의 풍요를 누려보았기에 그것이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있는 사람"은 더 나은 물질을 가질 수만 있다면 예의의 가치를 돌보기를 소홀히 할 수 있다. 반면 "없는 사람"은 멸시와 조롱에 익숙하리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물질인 밥보다 자존심을 더 내세울 수 있다. 밥은 굶으면 그만이지만 자존심은 무너지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으며 저런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던 그의 사상에 놀라던 나인데 이미 동양에서 몇십 세기 이전에 존재하던 사상이라니, 동양 철학의 깊이와 위대함을 다시 한번 체감한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서양에서 나온 사상도 누가 먼저다를 떠나서 동양에 존재했던 것이리라.

 

  이외에도 동양의 뜻밖의 여러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동양 철학 내에서도 주류였던 공자 사상은 당대 제후 등 권력을 가진 세력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칭송받게 된 배경이 있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겸애를 주장하던 묵자의 주장은 그 이해관계와 맞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묵살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결과적으로는 국가 통치에 도움이 되는 유교나 불교 사상을 위주로 기록되어 내려왔다는 점도 이 책을 읽어보면서 다시금 체감했다. 이토록 다양한 사상과 일화들이 존재했다니.. 동양 철학 내에서도 주류와 비주류 싸움이 존재하며 그중에서도 비주류에 주목한 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예전에 서양 철학에서 비주류로 내려오는 철학 쪽을 배운 적이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로부터 시작해서 이어내려오는 상상력에 대한 이론인데, 이런 내용을 배웠으면서 왜 동양 철학에 있어서 비주류는 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약간은 후회도 된다. 어디에나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주류가 부각됐을 뿐이지 비주류도 분명히 존재 의의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동양에 있어서 주류로 내려오는 사상이 얌전하고 수동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기에 전부가 그렇다고 오해받기 쉽지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동양에도 서양의 과격한 사상 못지않게 다양한 사상이 존재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동양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성인이 된 경우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 <나홀로 집에>나 현대 서구 사상가를 예시로 들면서 읽기 쉽게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원래 한자를 어려워하는 나라서 한자가 나오면 피하기 바빴는데 이 책에서는 그래서 더 수월하게 읽어내려갔던 걸지도 모르겠다. 또한 각각의 편이 네이버에 연재됐던 내용이라 그런지 책의 순서대로 읽어도 좋지만 그냥 아무 편이나 열고 읽기 시작해도 부담없이 볼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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