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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없는 세대 ㅣ (구) 문지 스펙트럼 16
볼프강 보르헤르트 지음, 김주연 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 어디서 이 책을 구매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이별 없는 세대》란 제목이 마음에 들어 구매했다는 사실만 기억난다. 구매하자마자 손에 쥐고 읽기 시작했었다. 두껍지 않은 이 책엔 짧은 분량의 단편 26편과 「함부르크를 위한 시」 15편이 담겨있다. 단숨에 읽어버리고 난 뒤, 한 문장 한 문장 공들여 다시 읽었다. 읽고 나면 몸살이 난 것처럼 몸은 무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이 그랬다. 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고, 몇 번을 반복해 읽었는데도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가슴이 먹먹하고, 아프다. 우리는 행복도 모르고, 고향이라 할 만한 곳도, 돌아갈 곳도, 가슴을 어루만져 줄 사람도 없는 이별 없는 세대란 말을 곱씹으며 울컥하고,
"어머님은 아침마다 십일월이 되거든 외투를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 압니다. 그렇지만 어머님은 돌아가신 지가 벌써 삼 년이 됐는걸요. 어머님은 제가 이제 외투가 없다는 걸 아실 리가 없죠. 아침마다 어머님은 얘야, 벌써 십일월이다, 라고 말씀하시지만 외투 같은 건 아실 리가 없죠. 정말로 돌아가셨으니까요." (p.45)란 구절을 읽으며 눈물을 훔친다.
반복해 읽으면서 새로 밑줄을 긋기도 하고, 같은 문장에 덧대어 밑줄을 그으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아껴가며 공들여 읽었다. 여기 몇 구절 옮겨본다.
" 우리는 서로 만남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깊이는 나락과도 같다. 우리는 행복도 모르고, 고향도 잃은, 이별마저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태양은 희미하고, 우리의 사랑은 비정하고, 우리의 청춘은 젊지 않다. 우리에게 국경이 없고, 아무런 한계도, 어떠한 보호도 없다 - 어린이 놀이터에서 이쪽으로 쫒겨난 탓인지, 이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를 경멸하는 사람들 건네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 이 세상의 모진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우리 마음이 의지할 수 있는 신을 마련해 주지는 않았다. 우리는 신이 없는 세대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만남도 없고, 과거도 없으며, 감사할 아무런 것도 갖고 있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별없는 세대」p.98)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만나, 서로 함께 지낸 다음 - 그러고 난 다음 각자 몸을 감춘다. 우리는 아무 만남도 없고, 오래 머물지도 않고, 이별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별을 모르고, 제 가슴에서 나는 소리를 두려워하며, 도둑처럼 그 자리에서 몸을 숨기는 세대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향이라고 할 만한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져줄 만한 사람이 우리에게는 없다. - 우리는 이별 없는 세대가 되었고 돌아갈 고향이 없는 것이다." (「이별없는 세대」p.101)
"이 세상에 마지막 것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상속의 문이 열리면서 많은 다른 문들이 뒤따라 열렸다. 문들은 모두 겁에 질리고 초췌한 사내를 일렬로 밀어내어 한가운데 푸른 줄이 덮이고 잿빛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마당 안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민들레꽃」p.158)
"삶이란 빗속을 달려가며 문의 손잡이를 붙잡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이죠. 그것은 얼굴을 서로 스쳐가며 냄새를 생각해내는 것 이상의 것입니다. 삶은 말이예요, 불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도 가지죠. 기차 밑으로 들어가는 불안. 기차 밑으로 들어가지 않는 기쁨. 계속 더 걷는 기쁨." (「도시」p.186)
우리는 서로 만남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깊이는 나락과도 같다. 우리는 행복도 모르고, 고향도 잃은, 이별마저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태양은 희미하고, 우리의 사랑은 비정하고, 우리의 청춘은 젊지 않다. 우리에게는 국경이 없고, 아무런 한계도, 어떠한 보호도 없다 - 어린이 놀이터에서 이쪽으로 쫒겨난 탓인지, 이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를 경멸하는 사람들을 건네주고 있다. (p.98)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만나, 서로 함께 지낸 다음 - 그러고 난 다음 각자 몸을 감춘다. 우리는 아무 만남도 없고, 오래 머물지도 않고, 이별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별을 모르고, 제 가슴에서 나는 소리를 두려워하며, 도둑처럼 그 자리에서 몸을 숨기는 세대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향이라 할 만한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져줄 만한 사람이 우리에게는 없다. - 우리는 이별 없는 세대가 되었고 돌아갈 고향이 없는 것이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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