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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 개역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1년 12월
평점 :
《여행의 기술》(이레, 2004)은 제목만 보면 저렴하게 여행하는 법이나, 여행지에서 살아남는 법 등 전문 여행가가 되는 기술을 알려줄 것 같은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여행정보로 가득한 여행안내서와 같은 부류의 책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그보다 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 여행하는 이유와 새로운 세상을 본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고 해답을 제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작가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알랭 드 보통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흔히 하는 생각, 느끼는 감정, 행동 같은 것을 세밀하게 분석해 낸다는 거다. <여행의 기술> 또한 여행의 시작부터 마침까지 ‘출발-동기-풍경-예술-귀환’의 순서로 구성, 작가가 여행지에서 겪은 경험과 생각, 관련된 예술가들의 일화까지 담겨있어 여행에 대한 철학적 사유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작가의 생각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에서 작가는 여행한다는 것과 본다는 것을 구분하는데 존 러스킨의 말을 인용한 부분이 특히 와 닿았다.
"한군데 가만히 앉아 시속150킬로미터로 달린다고 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튼튼해지거나, 행복해지거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느리게 걸어 다니면서 본다 해도, 세상에는 늘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 (p. 301)
돌이켜보면, 나 또한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최대한 많은 것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수를 던져 빡빡하게 여행 일정을 짜곤 했다. 더 많은 장소에 가기 위해 빨리빨리 보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여러 장소에 가서 많은 것을 보면 더 많이 보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이 지적한 것처럼 이런 여행은 '주제가 아닌 크기에 따라 책을 권하는 것만큼 피상적'이었다. 여행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보다 어디 어디 갔었다가 중요해지니까 말이다.
일상으로의 ‘귀환’을 다룬 부분도 좋았는데 여행 후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끼는 이들의 공허를 메워주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다들 한 번쯤은 이런 경험 있지 않을까? 여행하는 동안의 즐거움 때문이든, 새로운 환경이 주는 자극에서든, 여행에서 의욕 충만해 돌아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행지에서의 다짐은 사라져 버리고, 다시 여행 전 도피를 꿈꾸던 그때로 돌아가 허무해지는 그런 경험 말이다. 난 이런 적이 많았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이 제안한 사비에르의 ‘내방여행’이 반가웠다. 그는 파자마를 입고 자신의 방에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우리가 이미 다시 본 것에 주목해보라고 하는데, 여행심리를 우리가 사는 곳에 적용해 보라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어디에 있든 “이런 곳들도 훔볼트가 찾아갔던 남아메리카의 높은 산 고개나 나비가 가득한 밀림만큼이나 흥미로운 곳이 될 수 있다”(p.334)고 한다.
책을 덮고 나니 우리가 여행하면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건, 일상을 즐기는 법이란 생각이 든다. <여행의 기술>을 추천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여행지에서의 멋진 장면과 다사다난했던 모험담만을 다루는 게 아니라 여행을 통해 보고 느낀 것을 일상에 적용, 새로움을 ‘보도록’ 돕는다는 책이라는 거. 더불어 떠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방랑의 가치를, 여행지에서 사진만 찍느라 여행의 진짜 의미를 잃어버린 이들에게는 진정한 여행의 의미까지 알려준다는 점 때문이다.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라며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리고 여행 후 일상으로의 복귀해야 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Vincent Van Gogh, Cafe Terrace,1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