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동병상련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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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남자들이 기대하는 바대로 나는 남자들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의 힘듦, 아픔, 고통, 성장통, 자존감 이슈들을 가까이에서 보았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일 게다. 남자들은 일을 통해 만나는 여자동료들에게 적이 신뢰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런 신뢰감을 토대로 남자들이 토로하는 꽤 깊숙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로서 내가 겪는 심적, 심리적 괴로움까지 남자들과 공유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삶의 궤적이 다르거니와 무엇보다도 입장이 다르다. 그것이 성적 긴장감이든 심리적 긴장감이든 어떤 긴장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성의 인간과 완전한 교감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가능성의 측면에서 확률이 떨어지기는 한다.
그래서 외로워진다. 일을 하면서 외로움은 수시로 찾아든다. 정말 아무도 없어서 외롭고, 내 속을 확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그냥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 일중독이 만만치않은 나를 잘 아는 엄마는 항상 “일 좀 그만해. 먹고 일해!”같은 말로 무조건적인 위로를 건네주지만 내 속사정까지 털어놓기란 어렵다, 피로 얽힌 자매들은 서로 아이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 시댁 이야기, 옛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면서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지만, ‘동료의 마음’까지 공유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동병상련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참으로 요긴한 마음 상태다. 그냥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스르르 풀어지는 것이다. 방어 기제도 풀리고 공격 기제도 풀린다. 같이 마음 아파 하고, 같이 마음 고파 하고, 같이 걱정해주고, 같이 분석해주고, 같이 화내주고, 같이 궁리해주고, 같이 웃어주고, 때로는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문제로 아파본 사람이라야 나의 아픔, 괴로움, 불안, 갈등, 그리고 쓸데없어 보이는 온갖 걱정까지도 이해해줄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수많은 현장에서 수없이 외로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적으로 씩씩할 것을 주문한다. “외로움은 당연한 것이다. 외로움은 당신을 키워주는 자양분이다”라고 격려할 것이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자체가 성장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씩씩함 속에는 언제나 외로움이 있고, 그 외로움 속에는 그리움이 있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내가 씩씩해 보인다면 그 속에는 수많은 외로움이 있고, 그 외로움 속에는 항상 그리움이 배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디어 걸즈’와 ‘시스터푸드’를!
그래서 우리에게는 ‘디어 걸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더 나아가 디어 걸즈와의 ‘시스터푸드(sisterfood, sisterhood를 바꾼 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