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무해한 이슬람 이야기 - 천의 얼굴을 가진 이슬람 문명의 위대한 모험
황의현 지음 / 씨아이알(CIR)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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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무해하다'라는 안도, 안내의 메시지. 아마도 조금은 유해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주로 무지로 비롯되는 것이겠지만 오랜 시간 가볍고 또한 두텁게 쌓인 편견으로 인해

오랜 역사에 걸쳐 다양하고도 역동적으로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동 이슬람권의 이야기는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학문처럼 느껴져왔습니다.

누구나 책을 고르는 다양한 기준이 있을 텐데 필자의 경우, '칼리프'라는 단어에서 호기심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지내던 동네에 '칼리프'라는 작은 카페가 있었는데 자라는 동안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떠올랐지요.

대체 칼리프는 무엇이며 술탄이란? 무엇인지 성과 제국은 또 어떤 모습으로? 거대하고 멀게만 느껴지던 이슬람이란 종교는 또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함이 차곡차곡 쌓이더군요.

책을 접하고 나니 '칼리프'는 이슬람의 왕을 이르는 말로 '할리파'의 영어식 발음이라는 것도 이제는 정확히 알게 되었네요.

아무튼 책은 사상 처음으로 종교가 지배이념이 된 제국, 이슬람의 이야기를 '쿠란'이라는 이슬람교 경전을 소개하고 동시에 다양한 시대와 시각의 해석과 글쓴이의 코멘트들이 어우러져 학문적으로도 역사적 배경으로도 낯설었던 이 제국의 문명과 역사를 흥미롭게 들려줍니다.

책 <대체로 무해한 이슬람 이야기>는 분명 처음부터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만 점점 낯익은 용어들과 얇게나마 알고 있던 내용들이 깨우침과 버무려지면서 작은 알아감부터 압도적인 무함마드와 후반 칼리프 제국의 전성기와 분열, 초승달, 칭기즈칸의 정복 이야기에 이르면 흥미진진함이 고조되어 읽히는 속도 또한 빨라지는 그런 흡입력을 가진 책입니다.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기에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책 속에서 처음 만나는 이야긴데도 특히 재미있다 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시대의 기록을 꺼내오는 설명방식에 있었는데,

숫자 40과 7에 얽힌 이야기를 예로, 이런것들이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에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떻게 나타나며 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가 하면 숫자 40은 천지창조 및 모세와 출애굽 이야기 등에서도 강조되던 것이 신약성경에도 등장하고, 쿠란(46장 15절은 인간이 성년이 되고 나이가 40살에 이르면)에서도, 이슬람권의 장례 의식(이슬람의 전통 장례에 고인이 사망한 후 40일간 애도)에서도 등장하는 등 폭넓고 다양하게 사용되어 나타남을 소개해줍니다. 또 성경이나 쿠란만이 아니라 중세 무슬림들이 남긴 다른 기록에서도 마찬가지로 40이라는 숫자에 관한 관념이 굉장히 먼 과거부터 이어져 온 것을 알 수 있고 이는 완성과 성숙을 의미하는 어떤 수사로까지 해석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글쓴이의 '쿠란 등 그간 남긴 이슬람의 기록에서 문화적이고 문학적인 상징을 역사적으로 잘 구분하여 기록하는 일이야말로 후대의 우리의 몫'이라는 말,

책의 이름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SF 코믹 소설의 이름에서 따 온 이유처럼, 저자 또한 '대체로 무해한' 이슬람을 이해하는 안내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삶의 다른 모든 방면에도 통용되는 진실이겠지만 다양한 문화에는 그만큼 다양한 해석과 시각이 있음을 이해하고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우주를 우리가 편견 없이 이해하고 탐험 할 수 있도록,

개인적인 편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 다양한 기록과 견해 그리고 글쓴이의 시선도 보태어져 읽는 이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다는 부분이 책의 가장 친절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방대한 역사와 문명을 담아내는 책을 단 몇글자의 말로 옮길 수는 없겠으나 글쓴이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을 조금 옮기고, 책의 갈래를 보실 수 있는 목차를 보태어 글을 줄입니다.

이슬람의 방대한 전통에는 알카에다와 IS의 테러를 정당화하는 근거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 간 평호와 공존, 관용과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해석과 견해도 있다.

이슬람에 대한 편협하지 않은 이해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슬람 내에 다양한 해석과 견해, 관점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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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프트 - 삶을 선물로 바꾸는 12번의 치유 수업
에디트 에바 에거 지음, 안진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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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빛깔도 참 예쁘죠.

이번에 소개 드리는 책은 커버 디자인도 꽤 마음에 들었는데 자주 볼 수 있는 그라데이션 컬러지만

희망이나 삶 빛 등을 컬러로 표현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어 잘 어울린다 생각되더군요.

그리고 빛을 표현하는 듯한 사선들을 감싸고 있는 중앙의 긴 동그란 타원은 창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나의 알약같은 느낌도 들어 '치유'를 내포하고 있는 책의 정서가 담긴 것 같아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 소개를 잠깐 하면, 유명한 상담가이자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홀로코스트의 몇 남지 않은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발간했던 책으로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다>가 있습니다.

책 <더 기프트>는 현실에 존재했던 유일한 지옥이라고도 볼 수 있는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심리치료 상담가 '에디트 에바 에거'

의 내담자들과의 심리치료 상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심리 상담을 진행한 저자들의 책이 거의 그렇듯 직접 상담한 내담자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겪은 바, 긴 통찰과 버텨냄이 있던 그녀 삶의 통찰을 통한 그녀의 치유 방식을 버무려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옥으로도 묘사되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서 돌아온 사실만으로도 물론 경이로왔지만 그녀의 도전은 살아돌아 온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십이 넘는 나이에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40년이 넘도록 내담자들을 치료해왔다고 하죠.

이런 부분만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을 또 느끼게 되고 타인의 삶에 참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대단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있지만 스스로는 잘 알지 못하는 선물. 과연 이것은 무엇일까요?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선물'이라는 것은 '삶' '살아있음' 그 자체라고도 말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필자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녀의 이런 삶의 모습 자체가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그 이유때문인데

학창 시절을 지나 오면서도 '홀로코스트'에 대한 내용은 그다지 잘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나치와 홀로코스트 등에 대한 것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영화로 마주했는데 어림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그 고통의 크기나 엄습했을 삶의 무기력함 절망 죽음에의 공포 등은 사실 상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내담자들의 마음 상태 역시 그런 지옥 안에 있을 때와 다름 없지 않을까 생각되더군요.

'왜 지옥을 다시 방문해야 하지?'라는 말은 그녀가 주장하는 내용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질문 같기도 했는데

이는 고통이 되는 사건이나 슬픔을 꼭 벗어나야 하는 어떤 굴레처럼 여기고, 그저 도망칠 것이 아니며

이상주의에 가까운 마음으로서 근거없는 '괜찮아', '잘 될거야' 같은 주문을 자신에게 하며 회피 할 것이 아니라 말합니다.

나에게 닥친 슬픈 현실, 어떤 고통의 상황을 직접 마주하고 이때 표출되는 감각들. 눈물이나 우울해지는 상황 또한 오롯이 느끼고 받아들이며 나의 현상을 잘 알고 지내는 것이 결국 고통에서 스스로 걸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이죠.

누군가에게 말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수 많은 어떤 고민들처럼, '이런 일련의 일들을 공유하는 것이 심리학의 핵심 원리라고도 할 수 있다'는 부분은 많은 심리학 도서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개념으로 또 한 번 각인되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나의 자유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비밀'이라고 한다면 아우슈비츠나 스스로의 일생에 서린 비밀을 만천하에 내놓는 방법으로 전작<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라는 책의 출간 또한 그녀가 그간의 고통을 치유한 한 형태로 느껴집니다.

누구에게나 자책과 죄책감의 시간은 있겠지만 '나는 가치가 없어'라고 생각하던 시간이 분명 저에게 있었고, 여러모로 공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참 많이 알려진 말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그 누군가가 그토록 바라고 애원했던 '내일'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슬픔이나 죽음 등 사람들이 선뜻 말하기를 꺼려 하는 많은 주제들이 사실은 더 자유롭게,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하는 주제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최악의 경험이야말로 가장 좋은 선생님이 되어 새로운 것들을 만나게 해준다'는 말, 즉 고통으로 내재된 삶이라도 그 고통들이 결국 내안의 마음 감옥의 문을 열어 준다는 저자의 강한 신념과 믿음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호기심, 기쁨, 충격, 고통, 슬픔, 절망, 희망과 환희. 이렇듯 다양한 표정을 품고 있는 우리의 삶. 이 것은 하나의 선물 <더 기프트> 인 것이죠. 좋아하는 책의 부분을 옮기며 글을 줄입니다.

마늘에 초콜릿을 씌우지 말기 바란다.

맛이 좋을 리가 없다.

희망은 어둠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희망은 어둠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다.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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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후 나에게 - Q&A a day (2024 판타지아 Edition)
포터 스타일 지음, 정지현 옮김 / 토네이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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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NA a day 5.

'5년 후 나에게'는 작은 손수첩 다이어리 북입니다.

저명한 유명 인사들보다도 독자들이 극찬한 책, 노트,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따뜻하고 추천 넘치는 후기가 많아 궁금했고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여 어떤 형태의 책인가 궁금했답니다.

굳이 카테고리를 나누자면 다이어리에 더 가깝습니다.

나온 지 제법 된 모델인 폰보다도 짧은 길이와 손바닥만 한 크기.

하지만 이 작음에도 양장본으로 반짝이는 예쁨을 장착하고 있지요.

첫 장을 펼치면 앤디 워홀의 의미심장한 명언이 새겨져 있네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변한다고들 하지만

자기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_앤디 워홀

모양은 그야말로 노트입니다.

단지 특별한 것은 상단에 매일 생각할 질문이 놓여 있고

이 랜덤 한 365개의 질문들은 해마다 반복해서 다섯 번까지 쓰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흡사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오늘의 질문씨처럼 랜덤한 질문을 매일 던지는 것인데,

아마도 이 모든 질문에 충실히 답하고 사고한다면 분명 1년 후, 2년 후, 그리고 5년이 지난 후에 다시 다이어리를 펼쳤을 때

스스로의 삶과 생각에도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벌써 1년 후의 제 반응이 궁금해지네요.

매일 마주하며 새롭게 즐겨야 할 질문들이겠지만

미리 조금 넘겨 질문들을 살펴보면,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인지, 친구란 무엇인지, 하루는 어땠는지.

다양하면서도 내 마음에 다가가는 일상적 질문이 많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왜 나는 일하는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등은 일상적인 듯하지만 사실 궁극적인 삶의 목표에까지 닿게 만드는 생각 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조금은 식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음 해 똑같은 질문을 마주한다고 생각하니 쓰면서도 그 의미가 또 다르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루 동안 스쳐 지나갔을 작은 생각과 감정이 질문을 통해 새로워지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런 생각들을 거름 삼아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나로 진화하는 어떤 발판,

변화의 힘을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고, 자발적으로 글과 기록으로 마주하게 하고 싶은, 그런 만든 이들의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분명 좀 더 나은 미래의 나, 아니면 시종일관 한결같은 나, 또는 그 밖의 나의 다른 모습을 기대하는 상상, 유지할 수만 있다면

1년 전 오늘 2년 전 오늘 또 3년 전, 4년, 5년까지도.

스스로의 히스토리를 기록하는 작은 보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아쉬운 점은 글을 적기에는 노트가 좀 작은편입니다. 기록하기 위해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쓰며 치우칠 때 끄적이기 편리한 사이즈는 아닙니다. 단 그렇기 때문에, 그러니까 작기 때문에 어디에나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정 반대의 장점 또한 있겠네요.

새 공책이나 다이어리를 보고도 막상 무엇을 쓸지 고민이 생기고

다이어리는 매일 쓰고 싶지만 어떤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지,

생각할 거리가 늘 있기를 원하는 분들이라면 더없이 반가운 나만의 소품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총 365개의 질문과 5년 동안 스스로 이어갈 1,825개의 답.

아직은 이르지만 다가오는 2024년 새해에 주는 특별한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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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트 산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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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글릭(1943-2023.10) 그녀의 수사는 꾸밈없는 꾸밈으로,

수수하면서도 덤덤하게 다가오는 시와 심상의 색채에 비해 화려한듯한 타이틀로 먼저 만났습니다.

미국 현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면서 24년 만의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그리고 퓰리처상

거기에 국내 시인들의 찬사와 번역으로 실린 일부의 시들은 명성보다도 먼저 만날 수 있어 왔는데

그 이름만을 알고 있던 여류 시인 루이스 글룩을 이 겨울에 드디어 봅니다.

아직, 야생 붓꽃<1993년 시집 The Wild Lris>도 접하지 못해서 최대한 많이 그녀의 시를 알고자 <내려오는 길>, <아라라트 산> 2 권의 시집을 한 번에 읽었네요.

먼저 읽은 <내려오는 길>을 읽고 나서야 <아라라트 산>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앞의 시집도 그랬지만 여운이 강한 시들은 여러 번씩 읽고도 오래 생각하게 되는 힘이 있습니다.

루이즈 글릭의 5번째 시집.

왜 <아라라트 산>인가? 시집의 제목이고 시의 제목인 아라라트 산은 무엇일까.

아라라트 산은 지명이면서 동시에 성경 속, 창세기에 나오는 산으로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끝에 표류하다가 닿은 그 산을 말한다고 합니다.

위치적으로는 튀르키예 보스포루스 해협과 지중해와 연결된 지점에 있는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아주 높은 산.

죽음의 수사, 담대하게 죽음을 응시하는 그녀의 성찰이 담긴<내려오는 길>이 형상의 낙하만을 일컫는 것은 당연 아니었고

신화의 배경이자 시들이 모인 책의 전체 배경이 된 듯한 제목 <아라라트 산>에서 엿볼 수 있듯

노아의 방주처럼 모든 삶들을 삼켜, 죽음 자체를 말하는 것도 같지만

반대로 이로 인해 새로 시작되는 출발, 희망을 말하는 것도 같아 두 시집이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시인은 어쩌면 이모와 엄마 그리고 화자의 '운명'처럼

인간의 궁극적인 숙명, 죽음을 안고 또한 그 곁에서 죽음을 묵도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살아있는 죽음(존재), 그러나 희망마저도 포함하고 있는, 인간 삶의 깊은 성찰이 깃들어 있습니다.

노래하는 시로서가 아니라 현상을 드러내 한참을 응시하는 어떤 다른 세계의 시선처럼. 그녀의 시는 화면이 한층 더 선명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수십여 일 쏟아지는 대 홍수 속에서 익사하며 잠겨 죽는 인간의 끝을 생각하면, 컥컥 목이 막히는 것도 같지마는

사라지는 목숨으로 글을 쓰는 분필처럼 조금씩 닳아지는 인간 세계의 시간, 더 세밀하게, 나의 시간마저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라라트 산

Mount Ararat

내 언니의 무덤보다 더 슬픈 것은 없다

언니 무덤 옆, 사촌의 무덤 말고는,

지금까지도, 나는 이모와 엄마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엄마와 이모의 고통을

보지 않으려고 애쓸수록, 그게 더더욱

우리 가족의 운명인 것만 같다;

무덤마다 소녀 아이 하나를 지구에 기증한다.

... 중략...

<아라라트 산> 루이즈 글록

그리고 지난 10월 또 하나의 꿈으로 떠난 그녀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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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모습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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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글릭(1943-2023.10) 그녀의 수사는 꾸밈없는 꾸밈으로,

수수하면서도 덤덤하게 다가오는 시와 심상의 색채에 비해 화려한듯한 타이틀로 먼저 만났습니다.

미국 현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면서 24년 만의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그리고 퓰리처상

거기에 국내 시인들의 찬사와 번역으로 실린 일부의 시들은 명성보다도 먼저 만날 수 있어 왔는데

그 이름만을 알고 있던 여류 시인 루이스 글룩을 이 겨울에 드디어 봅니다.

아직, 야생 붓꽃<1993년 시집 The Wild Lris>도 접하지 못해서 최대한 많이 그녀의 시를 알고자 <내려오는 길>, <아라라트 산> 2 권의 시집을 한 번에 읽었네요.

먼저 읽은 <내려오는 길>은 첫 시의 강한 여운으로 몇 날 며칠을 펼치고 또 펼쳐 생각하고 또다시 읽게 되는 힘이 있습니다,

그녀의 시는 맑고 청량한 낮에도 깊은 밤에도 시간 상관없이 읽기 좋겠지만

제목으로만은 짐작할 수 없었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오래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시들을 읽고 나면 왜 그 '모습'에 주목하는지,

'현상'이나 '형상'의 묘사가 여러 장면을 오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을 슬로우 화면으로 찬찬히 그려

마치 명화를 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고

우리가 다 같이 바라보는 사건, 그러니까 일상과 삶에서 오는 인간 성찰의 결이 속속 깃들어 있습니다.

그녀의 문체는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묘사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라 느껴지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는가 합니다.

첫 장부터 오해 없이 편견 없이 시를 마주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는데

오명이 생기는 사회도, 그 조차 감안했을 시인의 마음도, 책을 덮을 때에 이르러서는 어쩐지 두 쪽의 마음이 다 이해가 되더군요.

필자는 평소 수없이 많은 아름답고 유명한 시 등이 있음에도

이조차 식상해져 고전을 다시 찾아 읽고 있었는데 동시대 시인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감상들이, 새삼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집 <내려오는 모습>에서 타이틀 시도 좋았지만

필자는 가장 앞 장의 '익사한 아이들'이 오래 마음에 남아 마음에 걸리었네요.

가 없는 물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

물의 품 속에서 꿈으로 떠났을 아이들.

문득 천안함 생각이 났고,

한국인들이라면 그들을, 그 아이들을, 그리고 아이들을 보낸 부모들의 찢어지는 가슴의 떨림을 다 함께 흐느껴왔기 때문에.

많은 장면들이 겹쳐지면서 불쑥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익사한 아이들

The Drowned Children

보세요. 그 애들은 판단력이 없어요.

그러니 물에 빠져 죽는 거, 당연한 일인지도,

우선 얼음이 아이들을 끌어들이고,

그다음, 겨울 내내, 아이들 털목도리가

가라앉는 아이들 뒤에 떠다니고,

그러다 아이들이 조용해지네요.

그리고 연못은 겹겹의 어두운 팔로 아이들을 들어 올리네요.

죽음은 아이들에게 다르게 와야 하는데,

시작만큼이나 말이지요.

아이들은 늘 눈이 멀어 있었고

둥둥 떠다녔던 것 같아요. 그러니

나머지는 다 꿈으로 온 것 같아요, 그 램프도,

테이블과 아이들 몸을 덮었던

그 근사한 하얀 천도.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 이름을 듣네요,

연못 위로 미끄러지는 유혹처럼;

뭘 기다리고 있는 거니,

집으로 와, 집으로 와, 시퍼런

가없는 물속에서 길을 잃었네.

<내려오는 모습> 루이즈 글록

시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이 딱, 정해진 것은 아니겠지만 쉬이 다루지는 못하는 '죽음'이라는 주제는

인간 모두의 삶에 있음에도 동시에 직접 겪은 후에는 쓸 수 없는 영역, 글쓴이는 이 갈래에 담담하게 서서 안과 밖을 넘나들며

아이도, 어른도, 그 공기도 풍경도 되었다가 궁극적인 성찰의 순간을 보여주며 제가 가진 편견마저 깨워 주네요.

하나 덤덤한 마음.

솟구쳐 글로 울음 짓지 않아도

상실에 깊이 동감하고

죽음이라는 것을

그저 불행으로만 여기지 않으려는 성찰의 마음과 꽤 단호한 듯한 글쓴이의 호흡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덤덤함을 떠올리니 오래전 마음에 묻은 아버님의 일이 떠올랐는데요,

빈소에서 나를 에워싼 주위의 사람들은 ' 정도 없다', '독하다'라며 욕 아닌 욕을 했지마는

너무 시린 가슴은 저밈에서 빠져나올 틈이 없어

오히려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인 시에서 느껴지는 이 덤덤함은 먹먹함에서 태어난 그녀만의 시적 아이는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분명,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아름다운 생의 소멸의 순간에

그 볼을 타고 내려가는 눈물에 담긴 의미가

꼭 슬픔만은 아니도록,

다시금 상기하고 기리고 그려보며,

비통하게 남겨진 사람들의 등을 쓰다듬어 줄 마음 꼭 다시 움켜쥐기를.

그녀는 바라고 바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말해오던

'가슴속에 묻는다'라는 다소 진부한 이 표현이

저마다의 이유로 떠나는 모습, 지켜보는 마음으로

그보다 나은 표현이 또 없음은 아니었을지.

책<내려오는 모습>에는 '아이'도 자주 등장하고, '어린' 아이라는 수식도 꽤 있는데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어떤 마음마저 느껴지는 대목이 아닌가 합니다.

아이들을 통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의 아이 시절을 투영하는 어떤 것이라고 말이죠.

그중 '귀환'의 일부를 보면,

... 중략

그 아이 눈이 내 눈과 비슷했어,

비통하고 맑았지; 내가

그 아일 불렀지; 내가 그 애한테 말했어

우리의 언어로,

....

<내려오는 모습>

비통하고 맑은 눈은 나의 눈이지만, 아이의 눈이기도 한 것이죠.

그녀의 시 속 활자들처럼 땅속에서 솟아오른 숲과도 같은 그녀의 시들.

오랜 성찰이 녹아 있는 시들 사이에서

우리 모두 내가 품고 있는 나만의 아이의 눈으로

깊은 밤에는 침통할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이른 아침, 빛나는 낮에 오히려 좋을 시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가운 밤도 어두운 그늘도 빛과 낮이 있어 있기에

삶의 반대편, 누구나 뽐내려고만 하는 식상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우리들.

낯선 죽음, 그러나 그러기엔 또 너무 익숙한 그리움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또 하나의 꿈으로 떠난 그녀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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