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주 중요한 시험이 있는데 내 꼬랑지에 계속 달라붙는 생각이 있어 책읽기를 방해해. 읽을 자료를 가지고 버스를 탔는데도 계속 방해하는. 하늘이 이렇게 파랗고 꽃들이 이리 만발했는데, 뭘 그갓 사람들을 그리워하나, 이런 생각을 하나 고개를 저었다가 그만 토하듯이 글 한덩이를 뱉고 말았네.

우편함에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을 위한 편지가 오는데 넘의 연애편지를 읽는 것도 이젠 고역이어서 우편함을 그냥 막아버리기로 했다. 우편함 안쪽에 두꺼운 종이를 대고 테이프로 붙여버리면 우체국 아저씨도 더 이상 여기에 편지를 넣지는 않을테지. 그 중 내게 꼭 배달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내 손에 쥐어질거야.

어쨌든 시험은 이제 고작 1시간 남짓 남았는데 남의 연애편지 위에 내가 그리운 얼굴들을 그려보다가 푹 찢어버리고 말았네. 그 편지의 주인도 그걸 받을 이의 손에 직접 쥐어주는 용기를 발휘해야 할거야, 라고 편지의 갈취를 변명하면서.

어쨌든 나는 점점 작아져, 우편함도 막고 창문도 막고 집 현관문도 막고 입도 막고 눈도 감아버릴 듯. 그러다 작고작고작고작은 것이 되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되면, 그땐 이 따뜻한 민들레에게 맘껏 손을 흔들어야지, 작고작고또작작아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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