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by Patrick Modiano

우리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우리를 우리이게끔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한 사람이란 그 사람의 추억과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을 잃으면 결국 그라는 존재는 더이상 그 일 수 없다. 그렇게 간단하게 끝인것을. 새삼스레 허망함과 공허함을 체감한다. 사탕 틴 케이스 속 고이 모셔두는 사진들과 편지들도, 그를 뒷받침해줄 기억이 없다면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주인공 기 롤랑은 나치가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 그리고 전후의 프랑스에서 그가 잃어버린 기억들을 빵 부스러기 줍듯이 쫓아다니지만, 그 기억들은 관련된 사람들과 함께 바람에 휘날리듯 날라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끝끝내 그는, 기억을 찾지 못하는 한 그 스스로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우리는 그래서 그렇게 하루하루 쉬이 연기처럼 휘발되는 그 나날들을 어떻게든 잡으려, 남기려 발버둥을 치나 보다.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사람들...그들은 어느날 무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린다. 미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그는 상자를 집어서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스티오파 드 자고리에프와 그 역시 나에게 주었던 빨간 상자를 생각했다. 결국 모든 것이 초콜릿이나 비스킷을 담던 낡은 상자들 속에서 끝이 나는 것이었다. 혹은 담배 상자 속에서.”

“그 건물들의 입구에서는 아직도 옛날에 습관적으로 그곳을 드나들다가 그후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남긴 발소리의 메아리가 들릴 것 같다. 그들이 지나간 뒤에도 무엇인가가 계속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점점 더 약해져가는 어떤 파동, 주의하여 귀를 기울이면 포착할 수 있는 어떤 파동이. 따지고 보면 나는 한 번도 그 페드로 맥케부아였던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에서 떠돌고 있던 그 모든 흩어진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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