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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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 생활의 친밀감이 더해질수록 내면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그녀를 남편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샤를르가 하는 말은 거리의 보도(步道)처럼 밋밋해서 거기에는 누구나 가질법한 뻔한 생각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줄지어 지나갈 뿐 감동도, 웃음도, 몽상도 자아내지 못했다... 이 사내는 무엇 하나 가르쳐줄 것도 없고, 무엇 하나 아는 것도 없고, 무엇 하나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는 그녀가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너무나 흔들림 없는 이 평온과 이 태연한 둔감, 그녀 자신이 그에게 안겨주고 있는 행복 그 자체에 대하여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65쪽

노부인은 샤를르의 죽은 전부인 시절만 해도 아들의 마음이 아직 자기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에게는 엠마에 대한 샤를르의 사랑이 자신의 애정을 져버리는 행동이요 자신의 당연한 몫을 빼앗아가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몰락한 사람이 옛날에 살던 집의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창문 너머로 들여다 보듯이, 아들의 행복을 슬픈 침묵으로 지켜보았다. 옛날 이야기처럼 빗대어 자기의 고생이나 희생을 아들에게 상기시켰고, 그것을 엠마의 칠칠치 못한 태도와 비교해 가면서 그녀를 그렇게까지 보물처럼 떠받드는 것은 잘못이라고 결론 지었다. -68쪽

심정의 토로라는 것도 규칙적이 되어버렸다. 그는 일정한 시간이면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그것은 단조로운 만찬이 끝나면 나오게 되어있는 디저트처럼 여러가지 습관들 중 하나였다.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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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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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농가의 외딸, 홀아버지의 보호아래 곱게 성장한 엠마.
그다지 필요는 없으나 자존심을 살리기엔 충분한 정도의 어정쩡한 교육을 받고
어설픈 지식과 호기심으로 한껏 허영에 부풀어 맹랑한 꿈에 빠지는 엠마.
타고난 미모와 매력으로 남들이 부러워 할 만한 결혼을 하지만
아무 문제도 없어야 마땅할 결혼 생활이 그녀에겐 단조롭고 권태롭기 짝이 없다.
비록 크지 않은 시골마을이긴 하나 의사로서의 신용과 실력을 인정받는 남편은
제아무리 지고지순하게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에 절대적 신뢰를 가지고 자기 삶에 만족한다해도
피가 뜨거운 엠마에게는 무매력에 무능력한 남자의 상징일 뿐이다.
그녀의 피가 끓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문제는 시작 된다.

+

'바람'과 '불륜'이 죄인 것은 분명하다.
모든 죄가 그러하듯 주변에 끼치는 파장과 고통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하면 저지른 이에게 있어서는-
그들에겐 거역할 수 없는 기질이랄까 운명이랄까,
자긴들 좋아서 그 짓을 하겠냐는 아이러한 측은함도 없지는 않다.
그렇게 감정에 충실한 입장을 고려하듯,
드라마나 소설에서 그리는 불륜들은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가지게 마련이다.
최소한 그들의 마음은 진심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감정에 호소를 해대니 말이다.
운명처럼 들이닥친 사랑을 어떻게 거역하겠느냐며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를 이뤄내고
이제는 제법 그 불륜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그리는 용감한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엠마의 바람기는 어떤 설득력도, 드라마틱한 요소도 보여주지 않는다.
시골 마을 부인네의 차림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미모를 지닌데다
알량하나마 제법 심오한척하는 대화가 가능한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의 분위기가 '정부'를 가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것과
오히려 그 정부가 유부녀이면 더 흥미진진하다고 여기는 풍조였다는 점,
남편이라는 사람이 지나치게 심심하고 밋밋한 와중에
거기에 따라 제법 끼가 있다 싶은 남자들이 먼저 들이댄다는 점,
그녀의 바람기의 근원은 그 정도가 다다.

어쨌거나 사람이라면 지고지순한 배우자에게도 심드렁할 수 있고
굴레를 못이겨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지르기도 하는 법이니
어차피 소설인 바에야 그녀의 불륜의 근원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
다만 그토록 파격적이라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나 벌어지는 연애이야기도, 비극적인 결말도 영 허술한 건 왜일까.
주인공인 엠마의 심리와 감정을 그럴 듯 하게 그려내지 못하는 건 작가가 남자이기 때문일까.
불륜 드라마가 갖춰야 할 기본 요소인 스릴과 갈등이 요소로 부각되지 않는 건 왜일까.
모성애를 빙자하여 여성을 현모양처의 굴레에 유도하는 소설도 밥맛이지만
오히려 너무 심하다 싶을 만큼 모성이 결여된 것은 또 무슨 영문일까.

캐릭터가 지나치게 단순한 나머지 감정도 표정도 가지지 못한 느낌.
굵은 줄거리를 풀어내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소설로서의 묘미가 미흡한 것이 바로 이 지나친 대담함 때문은 아닌지.
재미있긴 하나 프로급 소설로 보기엔 그 요소가 다소 빠져있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쨌거나,
민망하리 만큼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엠마의 바람기를 들춰보면서,
마치 내가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아서 내심 불안해 하고
좀 더 그럴 듯한 구실과 드라마틱한 연애스토리를 기대하곤 했던 것은
그녀의 남편인 샤를르의 캐릭터가 아무개와 비슷한 면이 있는데다
내게도 엠마와 같은 기질이 있을지 모른다는 뜨끔한 비밀이 이입이 된 탓일게다.

+

공중 도덕과 종교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법정에까지 서가며
무려 '보바리즘'이라는 말까지 생길 만큼 파격적이었다는 소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렇게 태연한 불륜 이야기
-그것도 남자가 아니라 정숙해야 마땅할 부인의 바람-가
순순히 받아들여졌을 리 없다는 짐작은 가능하다.
하지만 요즘을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그저 그랬겠거니,하는 짐작일 뿐
파격과 대담을 충분히 납득하기엔 아무래도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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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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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절실함을 어림 짐작으로 밖에 느낄 수 없는 독자는 면목이 없다.
무심결에 "참 좋다"고 말 해버리고는 왠지 그 말이 흔하디 흔한 말 같아서
이내 '아차'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정정한다.
'좋다'고 표현하기엔 적절치 않고 '재밌다'는 말은 더더욱이 어울리지 않는 이 글은,
누구에겐가는 분명 뼈와 피에 맺힌 현실이고 엄연한 사실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책장을 펴고도 실은 근근히 납득하고 간신히 이해를 하는 정도다.
숱하게 소설을 읽었던 것처럼 그저 주인공의 심정은 어떻겠거니,
이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이런 것이겠거니..하고 넘겨짚을 뿐이다.
말 하는 이의 진지함과 절실함에 대한 예의로
적어도 소설과는 다르게 읽어보겠다는 마음을 먹고는,
여느 경우보다 한 호흡 길게 머금으며 단어 하나, 방점 하나의 의미를 찬찬히 밟아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숙한 독자는 순간순간 태연한 시선으로 활자만 좇고 있다.
오히려 그 익숙한 '문학적 공감'이 미안해지고 만다.

시대적 배경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무지 때문에 이해가 딸리는 지경은 없기를 바라면서,
읽을수록 가슴 속에 차곡차곡 고여가는 그의 문장에 저절로 몸을 낮춘다.
오랜 시간 쌓이고 풀고를 반복해 이미 담담해지고 분명하게 정돈된 글은
마음의 표면에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저변 깊숙한 곳을 울려 파문을 짓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을 얻고 생각지 못하던 세상의 이면을 본다-아니 듣는다.
하지만 남는 것은 무력감- 책장을 넘기는 것 외에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송구함이다.

- '내부'(대한민국의 독자들)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 잘 이해 해줄까?
과연 대화는 가능할까...
실은 나는 낙관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가 바라는 것은 이미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그저
아주 조금이라도 더 사실을 이해하고 감정적으로나마 헤아려주는 정도일지 모르겠다.
그 체념적인 기대에 부응하듯, 나는 성실하게 그의 문장을 좇으며
마침표마다 나의 짧은 이해를 확인하느라 잠시 호흡을 늦추는 소극적인 독자 역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심 안도하고 다음 문장을 향해 노력한다.
공감은 차치하고라도 내용과 메세지 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글이 어렵거나 난해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이토록 편안하고 수월한 문장으로 침착한 글을 쓸 수 있는지 경탄스러울 정도다.
다만 마음이, '심정'이 그에 조금 더 가까이 미쳤으면 하는 바램으로 내 나름의 진지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행의 형식을 빌어 문학을 보고 미술을 읽는 현재의 의식은
영혼까지 사무친 과거의 흔적을 궤도로 삼는다.
미처 까닭이 설명되지 않은 기행 목적지 목록에서 필연이나 개연을 찾을 수는 없지만
실상 세상 어느 곳을 가든, 무엇을 보든 과거의 궤도 안에서 바라보고 느낄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그가 벗어날 수 없는, 뼛속까지 사무치고 영혼을 적셔버린 '디아스포라'의 증거다.


활자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
'기행'은 분명 시각에 의존하는 것이다.
형식은 글이지만 머리는 영상을 그리고 떠올리며 가슴은 그렇게 '본'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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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그림자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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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마음에 쏙 드는 멋진 소설이다.
이렇게 흡족할 줄 몰랐는데 제대로 왕건이를 건졌다.

읽는 내내 등줄기에 한기가 스물거리는 것만 같아서 자꾸만 이불을 끌어다 덮어야 했지만
메마르고 음산한 와중에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해서
불쾌하기는 커녕 마치 주인공과 함께 탐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여느 도시나 풍경에 비해 20세기 초반의 스페인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하다.
그 곳의 모습이 어떤지 과거도 현재도 알지 못할 뿐더러
더더욱이 시대적 상황을 등에 지고있는 당시의 정경을 알 리가 없다.
그저 문장의 느낌을 곱씹어가며 떠올린다는 것이
안개가 짙게 깔린 어스름의 풍경,
혹은 웅장하면서도 동시에 아기자기한 저택과 건물들-
그런 정도라 이미 눈에 익숙해진 영국이나 다른 유럽의 이미지에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풍경'이나 '정경' 외에도 전쟁이라든가 정치적인 상황이라든가 하는 배경을 모르다보니
아무래도 상상력에 제한이 생겨서 많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표현이 넘쳐나서
단순한 이미지 뿐만 아니라 여러 인물들의 심정이랄까 정황이랄까 하는 것들이
끝없이 내 안에 떠오르고 그려지고를 반복하는 덕에
글자를 읽은 것이 아니라 아주 멋진 영화 한 편을 보고난 것처럼 배가 부르다.

미사여구로 치장하지 않고도 모든 느낌을 충분히 연상케 만드는 문장력,
글자를 읽으면서 곧장 눈 앞에 살아있는 필름이 지나가는 것만 같은 시각적인 표현력,
다른 생각 할 틈 없이 그저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치밀한 짜임새,
잘 엮인 이야기에 충분히 녹아들어있는 드라마틱한 내용.
'소설'로서 갖춰야 하는 여러가지 조건들을 잘 갖추고 있는 '이야기 다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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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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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고 둔한 걸음으로 내 발걸음은 신경도 쓰지않고 걷고 있는 낯선 사람. 나는 일부러 조금 뒤처졌다.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저 그림자는 내게 속해있지 않다. 내가 실체자 없는 자기 생각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듯 멀리 떨어져 자기 안에 몰두해있는 그림자. 나는 실재예요 미카엘. 춥다구요.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크게 말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나 추워요. 그리고 그렇게 빨리 뛰어갈 수 없다구요."
나는 가능한 한 크게 소리쳤다.
갑자기 생각이 산란해진 사람처럼 그는 내뱉듯이 대꾸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요. 버스정류장에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참아요."
말을 하자마자 그는 다시 커다란 자기 외투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목이 메었고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굴욕적이고, 겁에 질리고. 그의 손을 잡고 싶었다.
나는 그를 몰랐다. 전혀.
-39쪽

...돌아가신 아버지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보통 사람이 철저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건 마치 너무 짧은 담요 같은 것이다. 발을 덮으려고 하면 머리가 드러나고, 머리를 덮으면 발이 삐져나오는.
사람은 그 구실 자체가 불유쾌한 진실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뭔가 숨기기 위해서 복잡한 구실을 만들어낸다. 반면에 완전한 진실은 철저하게 파괴적이고 아무런 결과도 가져다주지 못한다.-47쪽

... 사실 이 시기에 우리 사이에는 일종의 불편한 타협 같은 것이 존재했다. 우리들은 마치 장거리 기차여행에서 운명적으로 옆자리에 앉게 된 두 명의 여행자들 같았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어야 하고, 예절이라는 관습을 지켜야 하고, 서로에게 부담을 주거나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서로 아는 자신들의 사이를 이용하려고 해서도 안되는. 예절 바르고 이해심을 발휘해야 하고. 어쩌면 가끔씩은 유쾌하고 피상적인 잡담으로 서로를 즐겁게 해주려고 해야하고.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으며. 때로는 절제된 동정심을 보이기도 하면서.-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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