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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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고 둔한 걸음으로 내 발걸음은 신경도 쓰지않고 걷고 있는 낯선 사람. 나는 일부러 조금 뒤처졌다.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저 그림자는 내게 속해있지 않다. 내가 실체자 없는 자기 생각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듯 멀리 떨어져 자기 안에 몰두해있는 그림자. 나는 실재예요 미카엘. 춥다구요.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크게 말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나 추워요. 그리고 그렇게 빨리 뛰어갈 수 없다구요."
나는 가능한 한 크게 소리쳤다.
갑자기 생각이 산란해진 사람처럼 그는 내뱉듯이 대꾸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요. 버스정류장에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참아요."
말을 하자마자 그는 다시 커다란 자기 외투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목이 메었고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굴욕적이고, 겁에 질리고. 그의 손을 잡고 싶었다.
나는 그를 몰랐다. 전혀.
-39쪽

...돌아가신 아버지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보통 사람이 철저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건 마치 너무 짧은 담요 같은 것이다. 발을 덮으려고 하면 머리가 드러나고, 머리를 덮으면 발이 삐져나오는.
사람은 그 구실 자체가 불유쾌한 진실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뭔가 숨기기 위해서 복잡한 구실을 만들어낸다. 반면에 완전한 진실은 철저하게 파괴적이고 아무런 결과도 가져다주지 못한다.-47쪽

... 사실 이 시기에 우리 사이에는 일종의 불편한 타협 같은 것이 존재했다. 우리들은 마치 장거리 기차여행에서 운명적으로 옆자리에 앉게 된 두 명의 여행자들 같았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어야 하고, 예절이라는 관습을 지켜야 하고, 서로에게 부담을 주거나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서로 아는 자신들의 사이를 이용하려고 해서도 안되는. 예절 바르고 이해심을 발휘해야 하고. 어쩌면 가끔씩은 유쾌하고 피상적인 잡담으로 서로를 즐겁게 해주려고 해야하고.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으며. 때로는 절제된 동정심을 보이기도 하면서.-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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