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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절실함을 어림 짐작으로 밖에 느낄 수 없는 독자는 면목이 없다.
무심결에 "참 좋다"고 말 해버리고는 왠지 그 말이 흔하디 흔한 말 같아서
이내 '아차'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정정한다.
'좋다'고 표현하기엔 적절치 않고 '재밌다'는 말은 더더욱이 어울리지 않는 이 글은,
누구에겐가는 분명 뼈와 피에 맺힌 현실이고 엄연한 사실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책장을 펴고도 실은 근근히 납득하고 간신히 이해를 하는 정도다.
숱하게 소설을 읽었던 것처럼 그저 주인공의 심정은 어떻겠거니,
이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이런 것이겠거니..하고 넘겨짚을 뿐이다.
말 하는 이의 진지함과 절실함에 대한 예의로
적어도 소설과는 다르게 읽어보겠다는 마음을 먹고는,
여느 경우보다 한 호흡 길게 머금으며 단어 하나, 방점 하나의 의미를 찬찬히 밟아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숙한 독자는 순간순간 태연한 시선으로 활자만 좇고 있다.
오히려 그 익숙한 '문학적 공감'이 미안해지고 만다.
시대적 배경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무지 때문에 이해가 딸리는 지경은 없기를 바라면서,
읽을수록 가슴 속에 차곡차곡 고여가는 그의 문장에 저절로 몸을 낮춘다.
오랜 시간 쌓이고 풀고를 반복해 이미 담담해지고 분명하게 정돈된 글은
마음의 표면에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저변 깊숙한 곳을 울려 파문을 짓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을 얻고 생각지 못하던 세상의 이면을 본다-아니 듣는다.
하지만 남는 것은 무력감- 책장을 넘기는 것 외에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송구함이다.
- '내부'(대한민국의 독자들)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 잘 이해 해줄까?
과연 대화는 가능할까...
실은 나는 낙관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가 바라는 것은 이미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그저
아주 조금이라도 더 사실을 이해하고 감정적으로나마 헤아려주는 정도일지 모르겠다.
그 체념적인 기대에 부응하듯, 나는 성실하게 그의 문장을 좇으며
마침표마다 나의 짧은 이해를 확인하느라 잠시 호흡을 늦추는 소극적인 독자 역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심 안도하고 다음 문장을 향해 노력한다.
공감은 차치하고라도 내용과 메세지 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글이 어렵거나 난해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이토록 편안하고 수월한 문장으로 침착한 글을 쓸 수 있는지 경탄스러울 정도다.
다만 마음이, '심정'이 그에 조금 더 가까이 미쳤으면 하는 바램으로 내 나름의 진지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행의 형식을 빌어 문학을 보고 미술을 읽는 현재의 의식은
영혼까지 사무친 과거의 흔적을 궤도로 삼는다.
미처 까닭이 설명되지 않은 기행 목적지 목록에서 필연이나 개연을 찾을 수는 없지만
실상 세상 어느 곳을 가든, 무엇을 보든 과거의 궤도 안에서 바라보고 느낄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그가 벗어날 수 없는, 뼛속까지 사무치고 영혼을 적셔버린 '디아스포라'의 증거다.
활자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
'기행'은 분명 시각에 의존하는 것이다.
형식은 글이지만 머리는 영상을 그리고 떠올리며 가슴은 그렇게 '본'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