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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 - 미국을 제대로 보기 위한 가치 있는 가정들 라면 교양 1
김준형 지음 / 뜨인돌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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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네 가지 역사적 가정을 통해 미국이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하고 광범위한, 그리고 지속적인 패권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미국이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 원인과 결과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책 말미에 나와있는 것처럼 "미국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붕괴될 경우, 그 후폭풍을 어떻게 피할 수 있" 는지에 대한 우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역설적으로 미국이 전지구적 패권을 상실하고 몰락할 경우 경착륙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아쉽게도) 지금 우리가 현실적으로 상정할 수 있는 가장 선호할만한 패권국의 모습을 미국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단정해 본다. 때로는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정작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당면 과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딜레머가 존재하는 것이다.

종종 반미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아왔다는 저자는 세계 대전을 통해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로 등극한 미국의 헤게모니가 어떻게 구성되고 유지되었으며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지 친절하고 평이한 문체로 풀어나간다.

20세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국제 정치사를 미국 중심으로 소개하는 내용 자체로는 사실 새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네 가지 가정을 통해 흥미롭게 논의를 진행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국부(國父)인 워싱턴이 그토록 강조했던 고립주의 정책을 정립한 먼로 대통령 이래 미국의 외교정책은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해서 본격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타의에 의했다기보다는 오랜 모색과 준비 끝에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늙고 쇠약한 유럽을 대신하여 국제적 헤게모니를 획득하게 된 미국은 소련과 공산주의 국가를 적대적 파트너로 규정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헤게모니의 성격을 확고하게 하였으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립하게 된다. 이것은 자신들의 패권적 행태에 대한 정치적 알리바이를 제공할 기회도 된다. 마치 볼테르가 신을 "실제 존재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개념"으로 판단한 것과 유사하다. 미국의 패권을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방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문명 세계를 위협하는 일종의 바바리안 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인 시각은 미국이 세계에 미친 영향과 기여 때문이다. 저자가 "미국의 역할은 나폴레옹이 전쟁을 통해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전 유럽에 퍼뜨린 것과 비슷하다"고 본 것은 전적으로 옳다. 미국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강한 힘을 가진 "조직폭력배"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소프트 파워를 통한 세련된 지배로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낸 국가"였다.

기만적인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정교하고 세밀한 모범국가 이미지를 나름 유지했던 미국은 냉전 시기의 파트너였던 소련이 붕괴하면서 그동안 유지했던 장점을 점차 상실하게 된다. 그 정점은 아무래도 9·11 사태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지는 주니어 부시의 네오콘 시대가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이 아닌 다른 강대국이 패권을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관대한 지도력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윤리적인 패권 국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패권의 본질은 다른 나라를 정치적·경제적·군사적으로 압도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딜레머는 정치적 경제적 패권이 약화되는 것을 군사력으로 돌파하고자 하지만, 이전에 미국이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이미지 메이킹과 다이나믹한 외교전략이 뒤따라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처럼 변모한 국제 정치의 지형을 감안할 때,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 저자는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혈맹 수준의 과도한 군사적 유대보다는 낮은 수준의 동맹을 유지해서 동아시아 정세에 유연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미국 사회의 저력은 "이념적 쏠림이 있을 때마다, 이를 견제하려는 내부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항상 존재했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를 종종 감동시키는 미국의 강점이 바로 이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건강한 미래 관계는 이같은 균형 감각의 회복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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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거이야기 - 1948 제헌선거에서 2007 대선까지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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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사유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역사>에서 "다수 속에 전체가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같은 책에 실린 (민주주의)는 "모든 결정을 전체 앞에서 한다"는 구절을 통해 의미가 한결 명확해진다. 다수는 전체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수'란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수를 의미한다.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은 점차 전체 다수를 대변하는 고대의 정치적 이상과는 거리가 멀어져 갔다. 다시 말해 대의의 개념은 점차 축소되는 경향을 보인다. 다수결의 원리가 정치권력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은 여전히 분명한 사실이지만, 대의 민주주의가 과연 전체 다수를 대표하고 대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2007년 12월의 대통령 선거나 2008년 4월의 총선은 지역주의의 부활과 압도적인 경제지상주의로 인해 씁쓸함의 강도가 유난히 컸던 선거였다. 우리는 최근의 정치적 경험들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역사학자 서경석의『대한민국 선거이야기』는 한국 현대사를 선거라는 돋보기로 관찰한 책이다. 갈수록 그 경향이 약화되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는 정치과잉사회다. 따라서 권력 투쟁의 세련된 형태인 선거를 통해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유효하고 효율적인 방식이 될수 있다.

지은이는 장기집권을 꿈꾸던 세력이 선거제도를 유린하다가 역풍을 맞고 정권의 붕괴를 맞이하는 역설적 현상에 주목한다. 국회의 비토세력을 회피하기 위해 직선제를 선택했으나 결국 민심의 이반으로 정치적 파멸을 맞게 된 이승만 정권이나, 직선제를 회피하기 위해 '체육관 선거'라는 놀림감이 된 간선제를 고집하다가 파탄에 빠진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그 예다.

이것과 연관시켜 생각해볼 만한 것이 한국 선거 결과의 특징 중 하나로 '중대선거(crucial election)'란 것이 있다. 중대선거란 "야당이 갑자기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는 선거를 의미하며, 이를 통해 양당체제가 형성되나 그것이 정치적 긴장상태를 유발함으로써 급기야는 정치체제 자체가 와해되는 현상이 수반되는 선거"를 뜻한다.

중대선거의 예로 제1·3·4공화국의 마지막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1988년 여소야대 체제를 탄생시킨 13대 국회의원 선거를 들 수 있다. 장기집권과 부패로 누적된 집권세력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야당세력에 대한 강력한 지지로 나타나 기존의 정권이 붕괴하거나 정치체제가 와해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같은 선거의 역동성은 대의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은 최초의 보통선거인 1948년 5·10 선거부터 1960년 3·15 부정선거까지 이승만 집권 시기의 선거를 다룬 두 개의 장과 박정희·전두환의 두 군사정권 시기를 다룬 두 개의 장, 그리고 민주화 이후 2004년 총선까지를 다룬 한 개의 장 등 모두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에필로그에서 2007년 대선에 관한 지은이의 소감을 담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의 소스가 된 강의 분량 때문에 1960년의 총선과 지방자치 선거가 언급되지 않았던 점이다. 자유당 정권이 붕괴한 직후 실시된 1960년의 총선은 장면 정권을 탄생시켰다. 이 시기의 역사적 사실은 1961년의 군사쿠데타 이후의 정치적 격변에 비해 덜 조명된 편이라 아쉬움이 유난히 크다.

어쨌든 지은이가 긍정적인 의미를 많이 부여한 1948년 5·10 선거나 제1공화국 시절의 정치적 에피소드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혔다. 다만 선거를 중심으로 당시 정국을 설명하다보니 전반적인 정치적 상황에 대한 파악이 곤란했던 점을 지적하고 싶다.

아무래도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보니 건조한 문체로 서술된 책보다 훨씬 정보량이 많고 생생한 에피소드가 역사적 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상투적인 정치사 소개가 아니라 정치테크놀로지가 발휘되는 선거 현장에서 민심은 어떻게 움직였는지, 정치인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판단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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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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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인가 상생(相生)인가?

  공교롭게도 이 책을 받아보았던 날은 삼성 특검 수사가 일단락되는 최종 발표일이었고, 책을 다 읽은 날이 이건희 회장의 사퇴 발표일이었다. 시사 주간지 <시사 IN>*의 표현대로라면 삼성특검은 “특별 검사인지 특별 변호사인지 정체가 아리송”할 정도로 삼성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 이후 8조 원이나 되는 새로운 재산 내역이 밝혀져 10조 원대의 거부로 떠오른 이건희 회장과, 삼성 3세 후계전략을 총지휘했던 전략기획실의 핵심 인물인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미완의 후계자’ 이재용 전무의 승계 절차는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재계나 보수 언론에서는 한국 최고의 브랜드인 삼성 그룹이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더 이상의 채찍질은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정말 이쯤 해서 ‘삼성 때리기’를 멈춰야 하는 것일까? 삼성이 더 이상의 수사 부담을 갖지 않고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편이 한국 경제를 위해서 유리한 것은 아닐까. 일반인들의 삼성에 대한 이중적인 인식 구조는 삼성 경영진의 전횡과 불법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합리화하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데 힘을 실어주곤 했었다. 여기서 이중적인 인식구조란 간단히 말해, ‘삼성이 잘못한 것은 맞다. 하지만 반성했다면 용서하자(그게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 사회의 병폐는 효율성과 합리성, 혹은 효율성과 도덕성을 정반대의 것으로 보는 데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삼성 수사 역시 이같은 문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삼성이 한국 사회에서 행사하는 절대권력의 메커니즘이 무엇이며 어떻게 관철되는지를 다양한 측면에서 보여준다. 나아가 삼성을 위해서나 한국 사회를 위해서나 이 회장 일가의 전횡이 근절되어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삼성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항하여 이들의 불의를 몸으로 알리고 있는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의 면면은 삼성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 삼성 내 노조 설립을 주도하던 김성환, 진보정치인 노회찬과 심상정, 삼성 X파일 보도로 유명한 언론인 이상호, 한국 현대사의 주요 길목마다 실천을 통해 신앙을 증거해 왔던 정의구현사제단, 경제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해온 경제학자 김상조.

  책에서는 그들을 스케치하듯 짤막하게 소개하고, 프레시안 특별취재팀의 해설과 인터뷰(증언이라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을까)가 이어진다. 사안에 따라 중복되는 내용도 있지만, 일종의 복습 효과를 주기 때문에 관련 지식이 다소 부족한 독자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다. 반면 최근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 터라 언론 매체에 자주 노출된 부분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독자의 편의를 돕고 구성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설 기사와 인터뷰 내용이 중복되는 지점이 특히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이상호 MBC 기자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삼성 비자금 사건의 진실은 지엽적인 도청 문제를 핑계로 은폐한 채 “도청은 정경 유착보다 심각한 인권 침해고, 그것이 국가 권력에 의해 국민에 대해 가해지는 범죄행위여서 더 심각하다”고 강변한 노무현 前 대통령의 발언은 다시 읽어도 충격적으로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이 기자의 아내조차 “삼성을 건드리면 지지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진실도 밝혀지지 않을 것이고, 너무 힘들”것이라고 그를 말렸던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87년의 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을 알렸던 김정남 전 대통령 수석비서관이나 이부영 전 국회의원이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부정적이거나 신중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삼성은 “대한민국에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존재이며 그들이 내미는 돈봉투보다 더욱 무섭도록 매혹적인 “유무형의 편익”을 무기로 한국 사회를 매수하려고 한다. 이를 거부하려면 “인간 관계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기반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게다가 한번만 눈을 감으면 한국 사회의 경제적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이쯤 되면 삼성 이데올로기라고 명명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어찌 매력적인 유혹이 아니겠는가.
 
  앞서 언급했던 삼성에 대한 이중적인 인식 구조를 반박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해서 ‘삼성이 잘못한 것은 맞다. 하지만 반성했다면 용서하자(그게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는 주장은 틀렸다.

  우선 삼성의 비리에 대한 징벌은 삼성 그룹이 아니라 이 회장 일가와 그의 측근에게로 돌려져야 할 것이다. 그들은 삼성 그룹의 미래보다는 영속적인 지배권의 확보가 더 소중한 존재들이다. 이제 그들을 삼성 그룹과 분리시켜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삼성의 비리는 근본적인 차원에서부터 낱낱이 재검토하여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계나 보수 언론에서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삼성의 수준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이 단순히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경영 모델을 탈피해야 한다. 그것이 삼성이 살고 한국 경제가 사는 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효율성을 위해 합리성과 도덕성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효율성은 도덕성과 합리성을 갖출 때 지속적이고 온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 삼성 그룹의 외압과 이에 굴복한 사주의 탄압에 반발해 시사저널을 떠난 기자들이 창간한 것이 <시사 IN>이라는 주간지다. 창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언론인 손석희가 글을 기고했는데, 아직 광고가 적은 것 같다며 빠른 시일 내에 안정된 모습을 찾길 희망한다는 내용의 덕담이 실려 있었다. 손석희는 시사저널의 잡지 판매수익 비중이 높아 삼성을 비롯한 광고주의 ‘압박’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깜빡했던 것 같다. 본문의 “삼성의 광고비는 언론의 오아시스이자 족쇄”라는 표현이 와 닿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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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새판짜기 - 박정희 우상과 신자유주의 미신을 넘어서
곽정수 엮음 / 미들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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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승규 인수위 부대변인이 법무부, 검찰청 업무보고 브리핑에서 "대기업 수사에서 품격
있는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대목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전에 SK 분식회계 사태에 대해
경제 사정을 감안해 검찰이 좀 '살살' 했으면 한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 정부의 한계는 '일정하게' 진보 진영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진보 진영은
어떻게든 노무현 시대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지 않으면 안된다. 문제는 노무현 정권이나 진보 진영
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이솝 우화의 박쥐와도 같
이 임기내내 종잡을 수 없었던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의 혼란은 어디에서 왔던가.

한국 경제를 조망하는 다양한 시각들이 있다. 그 중 현실적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보수 우파의 입장은 성장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이다. 한편 영미 금융자본주의와 주주자본
주의를 비판하고 나선 장하준 등으로 대표되는 대안 연대의 입장이 있다. 그리고 이들을 동시에
비판하는 참여연대·경실련 등의 입장이 있다. <한국경제 새판짜기>는 보수우파와 대안 연대의
주장, 즉 신자유주의와 포스트박정희주의를 미신으로 규정하며 새로운 대안을 제창하는 3인의
경제학자, 그리고 이들의 대담을 진행하고 정리한 기자가 만든 책이다.

재벌과 노동자의 대립을 넘어 북유럽 사민주의 복지 모델을 지향하자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그들에게 '국가사회주의'라고까지 비판받는다. 재벌의 위기는 필요 이상 과장되었으며 노조 조직
율이 10%도 채 되지 않는 나라에서 생존을 위한 보호 장치 없이 재벌과 타협하라는 그의 주장은
위험한 것이라고 본다. 동아시아 금융 위기는 박정희 모델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었으며, 이제
다시 낡은 모델을 고집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래 예전처럼 국가주도형
계획경제나 요소투입 의존형 체제로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 경제의 희망은 재벌이 아니라 전체 일자리의 88%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에 있다.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이 개선되고, 이들의 생산성을 대기업의 그것에 상당하도록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
서는 대기업에 비해 열등한 경영 인프라를 대체할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대기업을 개별 기업이 아닌 기업군 자체로 취급하여 다루는 '기업 집단법' 등을 통해 재벌 기업
이 불공정한 경쟁에서 영구히 승리하던 관행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이 책의 백미는 역시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 비판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노무현 정부는 경제
개혁은 포기하고 정치·사회적 개혁에만 주력한 나머지, 좌파 정권으로 매도됨과 동시에 신자유
주의적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여왔다.

세계화가 곧 양극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떤 개방이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할 완충
장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양극화의 원인은 재벌 중심의 경제 정책 때문이고, 정부의 정책 실패는
이를 심화시켰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들이 모인 것은 아마도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후보(군)
의 등장을 기다린 결과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희망은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이를 배반
하는 몰역사적이고 반시대적인 입장의 정책 집행자들의 시대가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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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내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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