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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삼성인가 상생(相生)인가?
공교롭게도 이 책을 받아보았던 날은 삼성 특검 수사가 일단락되는 최종 발표일이었고, 책을 다 읽은 날이 이건희 회장의 사퇴 발표일이었다. 시사 주간지 <시사 IN>*의 표현대로라면 삼성특검은 “특별 검사인지 특별 변호사인지 정체가 아리송”할 정도로 삼성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 이후 8조 원이나 되는 새로운 재산 내역이 밝혀져 10조 원대의 거부로 떠오른 이건희 회장과, 삼성 3세 후계전략을 총지휘했던 전략기획실의 핵심 인물인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미완의 후계자’ 이재용 전무의 승계 절차는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재계나 보수 언론에서는 한국 최고의 브랜드인 삼성 그룹이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더 이상의 채찍질은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정말 이쯤 해서 ‘삼성 때리기’를 멈춰야 하는 것일까? 삼성이 더 이상의 수사 부담을 갖지 않고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편이 한국 경제를 위해서 유리한 것은 아닐까. 일반인들의 삼성에 대한 이중적인 인식 구조는 삼성 경영진의 전횡과 불법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합리화하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데 힘을 실어주곤 했었다. 여기서 이중적인 인식구조란 간단히 말해, ‘삼성이 잘못한 것은 맞다. 하지만 반성했다면 용서하자(그게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 사회의 병폐는 효율성과 합리성, 혹은 효율성과 도덕성을 정반대의 것으로 보는 데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삼성 수사 역시 이같은 문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삼성이 한국 사회에서 행사하는 절대권력의 메커니즘이 무엇이며 어떻게 관철되는지를 다양한 측면에서 보여준다. 나아가 삼성을 위해서나 한국 사회를 위해서나 이 회장 일가의 전횡이 근절되어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삼성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항하여 이들의 불의를 몸으로 알리고 있는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의 면면은 삼성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 삼성 내 노조 설립을 주도하던 김성환, 진보정치인 노회찬과 심상정, 삼성 X파일 보도로 유명한 언론인 이상호, 한국 현대사의 주요 길목마다 실천을 통해 신앙을 증거해 왔던 정의구현사제단, 경제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해온 경제학자 김상조.
책에서는 그들을 스케치하듯 짤막하게 소개하고, 프레시안 특별취재팀의 해설과 인터뷰(증언이라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을까)가 이어진다. 사안에 따라 중복되는 내용도 있지만, 일종의 복습 효과를 주기 때문에 관련 지식이 다소 부족한 독자라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다. 반면 최근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 터라 언론 매체에 자주 노출된 부분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독자의 편의를 돕고 구성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설 기사와 인터뷰 내용이 중복되는 지점이 특히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이상호 MBC 기자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삼성 비자금 사건의 진실은 지엽적인 도청 문제를 핑계로 은폐한 채 “도청은 정경 유착보다 심각한 인권 침해고, 그것이 국가 권력에 의해 국민에 대해 가해지는 범죄행위여서 더 심각하다”고 강변한 노무현 前 대통령의 발언은 다시 읽어도 충격적으로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이 기자의 아내조차 “삼성을 건드리면 지지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진실도 밝혀지지 않을 것이고, 너무 힘들”것이라고 그를 말렸던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87년의 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을 알렸던 김정남 전 대통령 수석비서관이나 이부영 전 국회의원이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부정적이거나 신중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삼성은 “대한민국에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존재이며 그들이 내미는 돈봉투보다 더욱 무섭도록 매혹적인 “유무형의 편익”을 무기로 한국 사회를 매수하려고 한다. 이를 거부하려면 “인간 관계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기반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게다가 한번만 눈을 감으면 한국 사회의 경제적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이쯤 되면 삼성 이데올로기라고 명명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어찌 매력적인 유혹이 아니겠는가.
앞서 언급했던 삼성에 대한 이중적인 인식 구조를 반박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해서 ‘삼성이 잘못한 것은 맞다. 하지만 반성했다면 용서하자(그게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는 주장은 틀렸다.
우선 삼성의 비리에 대한 징벌은 삼성 그룹이 아니라 이 회장 일가와 그의 측근에게로 돌려져야 할 것이다. 그들은 삼성 그룹의 미래보다는 영속적인 지배권의 확보가 더 소중한 존재들이다. 이제 그들을 삼성 그룹과 분리시켜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삼성의 비리는 근본적인 차원에서부터 낱낱이 재검토하여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계나 보수 언론에서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삼성의 수준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이 단순히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경영 모델을 탈피해야 한다. 그것이 삼성이 살고 한국 경제가 사는 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효율성을 위해 합리성과 도덕성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효율성은 도덕성과 합리성을 갖출 때 지속적이고 온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 삼성 그룹의 외압과 이에 굴복한 사주의 탄압에 반발해 시사저널을 떠난 기자들이 창간한 것이 <시사 IN>이라는 주간지다. 창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언론인 손석희가 글을 기고했는데, 아직 광고가 적은 것 같다며 빠른 시일 내에 안정된 모습을 찾길 희망한다는 내용의 덕담이 실려 있었다. 손석희는 시사저널의 잡지 판매수익 비중이 높아 삼성을 비롯한 광고주의 ‘압박’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깜빡했던 것 같다. 본문의 “삼성의 광고비는 언론의 오아시스이자 족쇄”라는 표현이 와 닿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