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선거이야기 - 1948 제헌선거에서 2007 대선까지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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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사유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역사>에서 "다수 속에 전체가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같은 책에 실린 (민주주의)는 "모든 결정을 전체 앞에서 한다"는 구절을 통해 의미가 한결 명확해진다. 다수는 전체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수'란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수를 의미한다.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은 점차 전체 다수를 대변하는 고대의 정치적 이상과는 거리가 멀어져 갔다. 다시 말해 대의의 개념은 점차 축소되는 경향을 보인다. 다수결의 원리가 정치권력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은 여전히 분명한 사실이지만, 대의 민주주의가 과연 전체 다수를 대표하고 대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2007년 12월의 대통령 선거나 2008년 4월의 총선은 지역주의의 부활과 압도적인 경제지상주의로 인해 씁쓸함의 강도가 유난히 컸던 선거였다. 우리는 최근의 정치적 경험들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역사학자 서경석의『대한민국 선거이야기』는 한국 현대사를 선거라는 돋보기로 관찰한 책이다. 갈수록 그 경향이 약화되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는 정치과잉사회다. 따라서 권력 투쟁의 세련된 형태인 선거를 통해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유효하고 효율적인 방식이 될수 있다.

지은이는 장기집권을 꿈꾸던 세력이 선거제도를 유린하다가 역풍을 맞고 정권의 붕괴를 맞이하는 역설적 현상에 주목한다. 국회의 비토세력을 회피하기 위해 직선제를 선택했으나 결국 민심의 이반으로 정치적 파멸을 맞게 된 이승만 정권이나, 직선제를 회피하기 위해 '체육관 선거'라는 놀림감이 된 간선제를 고집하다가 파탄에 빠진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그 예다.

이것과 연관시켜 생각해볼 만한 것이 한국 선거 결과의 특징 중 하나로 '중대선거(crucial election)'란 것이 있다. 중대선거란 "야당이 갑자기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는 선거를 의미하며, 이를 통해 양당체제가 형성되나 그것이 정치적 긴장상태를 유발함으로써 급기야는 정치체제 자체가 와해되는 현상이 수반되는 선거"를 뜻한다.

중대선거의 예로 제1·3·4공화국의 마지막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1988년 여소야대 체제를 탄생시킨 13대 국회의원 선거를 들 수 있다. 장기집권과 부패로 누적된 집권세력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야당세력에 대한 강력한 지지로 나타나 기존의 정권이 붕괴하거나 정치체제가 와해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같은 선거의 역동성은 대의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은 최초의 보통선거인 1948년 5·10 선거부터 1960년 3·15 부정선거까지 이승만 집권 시기의 선거를 다룬 두 개의 장과 박정희·전두환의 두 군사정권 시기를 다룬 두 개의 장, 그리고 민주화 이후 2004년 총선까지를 다룬 한 개의 장 등 모두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에필로그에서 2007년 대선에 관한 지은이의 소감을 담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의 소스가 된 강의 분량 때문에 1960년의 총선과 지방자치 선거가 언급되지 않았던 점이다. 자유당 정권이 붕괴한 직후 실시된 1960년의 총선은 장면 정권을 탄생시켰다. 이 시기의 역사적 사실은 1961년의 군사쿠데타 이후의 정치적 격변에 비해 덜 조명된 편이라 아쉬움이 유난히 크다.

어쨌든 지은이가 긍정적인 의미를 많이 부여한 1948년 5·10 선거나 제1공화국 시절의 정치적 에피소드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혔다. 다만 선거를 중심으로 당시 정국을 설명하다보니 전반적인 정치적 상황에 대한 파악이 곤란했던 점을 지적하고 싶다.

아무래도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보니 건조한 문체로 서술된 책보다 훨씬 정보량이 많고 생생한 에피소드가 역사적 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상투적인 정치사 소개가 아니라 정치테크놀로지가 발휘되는 선거 현장에서 민심은 어떻게 움직였는지, 정치인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판단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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