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새판짜기 - 박정희 우상과 신자유주의 미신을 넘어서
곽정수 엮음 / 미들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강승규 인수위 부대변인이 법무부, 검찰청 업무보고 브리핑에서 "대기업 수사에서 품격
있는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대목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전에 SK 분식회계 사태에 대해
경제 사정을 감안해 검찰이 좀 '살살' 했으면 한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 정부의 한계는 '일정하게' 진보 진영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진보 진영은
어떻게든 노무현 시대의 실패를 딛고 일어서지 않으면 안된다. 문제는 노무현 정권이나 진보 진영
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이솝 우화의 박쥐와도 같
이 임기내내 종잡을 수 없었던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의 혼란은 어디에서 왔던가.

한국 경제를 조망하는 다양한 시각들이 있다. 그 중 현실적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보수 우파의 입장은 성장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이다. 한편 영미 금융자본주의와 주주자본
주의를 비판하고 나선 장하준 등으로 대표되는 대안 연대의 입장이 있다. 그리고 이들을 동시에
비판하는 참여연대·경실련 등의 입장이 있다. <한국경제 새판짜기>는 보수우파와 대안 연대의
주장, 즉 신자유주의와 포스트박정희주의를 미신으로 규정하며 새로운 대안을 제창하는 3인의
경제학자, 그리고 이들의 대담을 진행하고 정리한 기자가 만든 책이다.

재벌과 노동자의 대립을 넘어 북유럽 사민주의 복지 모델을 지향하자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그들에게 '국가사회주의'라고까지 비판받는다. 재벌의 위기는 필요 이상 과장되었으며 노조 조직
율이 10%도 채 되지 않는 나라에서 생존을 위한 보호 장치 없이 재벌과 타협하라는 그의 주장은
위험한 것이라고 본다. 동아시아 금융 위기는 박정희 모델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었으며, 이제
다시 낡은 모델을 고집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래 예전처럼 국가주도형
계획경제나 요소투입 의존형 체제로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 경제의 희망은 재벌이 아니라 전체 일자리의 88%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에 있다.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이 개선되고, 이들의 생산성을 대기업의 그것에 상당하도록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
서는 대기업에 비해 열등한 경영 인프라를 대체할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대기업을 개별 기업이 아닌 기업군 자체로 취급하여 다루는 '기업 집단법' 등을 통해 재벌 기업
이 불공정한 경쟁에서 영구히 승리하던 관행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이 책의 백미는 역시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 비판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노무현 정부는 경제
개혁은 포기하고 정치·사회적 개혁에만 주력한 나머지, 좌파 정권으로 매도됨과 동시에 신자유
주의적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여왔다.

세계화가 곧 양극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떤 개방이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할 완충
장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양극화의 원인은 재벌 중심의 경제 정책 때문이고, 정부의 정책 실패는
이를 심화시켰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들이 모인 것은 아마도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후보(군)
의 등장을 기다린 결과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희망은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이를 배반
하는 몰역사적이고 반시대적인 입장의 정책 집행자들의 시대가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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