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 We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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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4000km을 걸어 필사적으로 가 닿고자 한 것이 자유도, 경제적 안락함도 아닌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당황했다. 사랑, 사랑이라니...그리고 그 단어가 아주 오랫동안 어떤 울림도 갖지 못한 채 내 안에서 화석처럼 굳어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버린 무수한 말들 중 그것은 처음 아니면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배운 말들과 그 말들이 가 닿는 의미 사이에는 언제나 안개로 뒤덮인 절벽이 놓여 있었다. 공기마저 뒤틀린 그곳에서 나는 내가 가진 말들을 하나씩 절벽 밑으로 던졌다. 아마도 사랑은 그런 말들 중 내게 가장 빨리 버림받은 것일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무모하고, 맹목적이며, 자기 희생적인 어떤 것을 당황스레 마주하면서 어떻게 돌연 '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던 걸까? 사람들도 그것을 으레 사랑이라고 부르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그것은 불가능의 세계로 사라져 버린 걸까? 

 사랑은 4000km을 걸어온 청년을 다시 도버 해협에 뛰어들게 하지만 끝끝내 그를 구원해주지 않는다. 정작 구원받은 사람은 청년을 지켜보며 사랑이란 말을 되찾은 누군가다. 웰컴. 우리가 버리거나 스스로 떠났던 말들이 돌아왔을 때 하는 인사. 

(프랑스와 영국의 밀입국자, 불법체류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영화에 대한 간명한 설명은 성에 차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낯설고 갑작스런 사랑이 우리에게 올 때 밀입국자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는지. 온전히 그것을 끌어안기까지 우리 안에서 불법체류자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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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effi 2009-12-2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밀입국자라느니 불법체류자라느니 하는 것이 이민국에서 지칭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사랑에서 은유되는 그런 개념들인 모양이지요? 약간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설정이군요...

네미nemi 2009-12-30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이 너무 늦어버렸네요.
다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에서 밀입국자나 불법채류자들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런 삶들을 집요하게 파고들지는 않아요.
 
선샤인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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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본 유일한 다큐멘터리 영화.  

켈리네 가족은 부모와 두 형들, 그리고 켈리 다섯 식구이다. 켈리의 어머니는 자폐증에 걸린 켈리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전문의와 자폐아를 가진 가족들, 치료 시설 등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폐증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자폐아들과의 의사소통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말하자면 보통 사람들을 위한 자폐증 교육 다큐멘터리랄까? 흔히 나올 법한 가족간의 갈등이나 부모들의 인간적 고뇌는 거의 생략되어있다.  

실제로 자폐아 아들을 둔 친구가 있고, 그녀의 이야기를 간혹 듣고 있기 때문에 더욱 집중해서 보게 된 영화였다. 자폐증에 대해 무지했던 만큼 영화가 전달하는 정보가 상당히 유용했던 한편, 시간이 지날수록 현 한국의 자폐증 치료 시스템과는 너무도 다른 상황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자문하게 되기도 했다.  

한때 정신지체와 구분되지 않았던 자폐증은 지능이나 인식 면에서 거의 문제가 없고, 오히려 어떤 한 분야에 뛰어난 면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오랜 시간 집중력과 인내력을 요하는 일이라면 보통 사람보다 월등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어서 유럽에는 그들이 근무할 수 있는 회사가 여럿 있다. 자폐아를 가진 부모들이 모여 만든 재단이 자폐증 연구에 투자를 하고 있고, 보통 사람들처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데 필요한 시설도 늘려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제법 낙천적인 관망도 가능해질 듯 하다. 하지만 현 한국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이런 이야기들이 오히려 친구에게 현실을 비관하거나, 역시 아이를 위해서는 외국으로 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진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기회가 되면 영화를 한 번 보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자폐증의 증상도 다양하고 그 심함과 덜함 역시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시선을 오래 두고 있는 것은 자폐아들과 부모와의 커뮤니케이션이었고, 실제로 그게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친구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희망이라...과연 그것이 좋은 것일까,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자폐아들의 감각 수용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이들은 보통 사람보다 과도한 감각적 자극을 받게 되어서(가령 우리가 보통 볼륨 1,2 정도로 듣는다면 그들은 볼륨 10 정도로 듣게 된다고 한다), 그 과도한 자극에 대한 방어기제로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반복적 행동으로 자신을 지켜내고 있다고 한다. 그래. 모든 병적 증상은 살고자 하는 방어기제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 켈리 어머니와의 대화 시간에 들은 이야기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일단 제작 당시 150명 중에 1명 꼴로 태어나던 자폐아가 현재는 90명 중에 1명 꼴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영화에서는 아이들 넷 중 셋이 자폐아로 태어난 가정을 소개하기도 했다. 여자 아이보다 남자 아이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제목이 왜 선샤인 보이인가 하는 질문에 감독은  자폐증을 다룬 거의 유일한 영화인 '레인 맨'의 반대되는 의미라고 했다. 그 하나로 영화의 주된 시각은 이미 알게 된 셈이었다.  

손가락으로 알파벳을 하나씩 눌러 힘겹게 문장 하나를 만들던 선샤인 보이들 뒤에는 그 짧은 문장 하나에 감격해 어찌할 바 몰라하는 어머니가, 아버지가 있었다. 그들의 설명할 수 없는 얼굴 위로 친구의 얼굴이 오래 겹쳐 보였다. 그래, 그래도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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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와 함께 간다 - I Come with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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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제에서 관객동원율로는 최고였지 싶다. 인터넷 예매분도 삼십 몇초만에 매진. 현장판매 역시 매번 매진을 기록했다만...

만약 당신이 이병헌이나 조쉬 하트넷, 혹은 기무라 타쿠야의 팬이어서 어렵게 티켓을 구해 극장으로 들어갔다해도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팬심 하나로 견디기는 힘들 것임에 분명하다. 훈남 배우들 얼굴이나 보자, 하고 갔다가는 여느 관객들처럼 영화 도중 튀어나가고 싶어질 것이다. 일단 비위가 강해야한다. 폭력의 과잉, 육체훼손의 과잉, 메타포 과잉으로 가득찬 이 영화의 매력을 꼽자면 결국 그 과잉상태의 조화라고 해야할까.

그렇다고 세 명의 훈남의 매력을 아예 포기하게 만들진 않는다. 이병헌의 경우 놈놈놈의 캐릭터와 계속 오버랩되는 면이 좀 아쉬웠지만 기무라 타쿠야는 의외로 선전하는 듯 했고, 조쉬 하트넷의 내면 연기는 인상깊었다. 문제는 여주인공 릴리 캐릭터. 묵직한 세 명의 남자들 사이에서 어찌나 가볍게 떠다니던지... 감독 트란 안 홍의 부인으로 알고 있는데 캐스팅한 이유를 따져묻고 싶어질 정도였다.  

 
괴물을 좇는 이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말을 상기할 법한 영화다. 그리고 구원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하는가, 하는 자문이 남는다. 이제 우리가 예수를 구원할 차례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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