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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지나치게 영리하고 생각많은 일곱 살 꼬마 여자아이가 나쁜 연인과의 사랑에 고민을 전전하다 결국엔 사랑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가지게 된 이야기. 정작 제목은 ‘사랑’에 대한 것인데, 오히려 어린이들의 집단적 사고와 행동방식에 더 흥미가 갔다.
와교관인 아버지 덕분에 백인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났고, 중국으로 건너와 사는 주인공은 같은 학교 친구에게 애정을 느낀다. 너무나 아름다운 엘레나는 그녀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있지만, 워낙 만인의 사랑을 받는 뮤즈이기에 대수롭지않게 대하며 무시한다.
중국인들이 사는 지역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외교관 거주지이다보니 교육시스템도 시원치 않았고, 아이들은 근처 독일인 아이들과 대항하는 연합군 전선을 짜고 서로 전쟁을 진행한다. 아이들의 장난이라 보기에는 지나치다 싶은 고문과 폭행이 번갈아 치고받고 진행되고, 주인공은 특유의 영민함으로 부대 내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늘 패배자요 목마른 입장일 뿐임에 절망한다.
마침내 엄마의 조언에 따라 엘레나가 그녀에게 하는 방식과 똑같이 대하기로 맘먹고 냉정함을 가장하며 무심하게 지낸다. 그녀의 갑작스런 변화에 의야해하던 엘레나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를 지나쳐가는 그녀를 잡고 눈물의 호소를 하는데—
눈물을 흘리는 여신의 아름다움에 또 다시 반한 주인공은 그간의 전략에 대해 다 털어놓게 되고, 여전히 자신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엘레나는 다시 예전의 무표정하고 싸늘한 태도를 보이며 뒤돌아선다.
주인공은 엘레나가 결국 원하는 것은 ‘내가 나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파괴되어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감당하라며 엘리나 앞에서 포효한다.
자, 여기까지 읽고나면 이게 도대체 7살짜리 꼬마가 할 법한 일인가 싶은데, 책의 제일 마지막 작가가 붙인 들에 따르면 완전히 다 사실이고, 엘레나의 이름도 실명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후에 책을 본 엘레나가 내용에 수정을 요구한다며 만나자고 청했는데, 절대 거짓이 아니기에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의 경험이 작가에게 크게 맺혀있었나 보다 ㅋㅋ
사랑이야기도 쇼킹했지만, 독일군과 전투한 이야기, 중국과 일본 생활을 비교하는 부분, 학교생활을 설명하는 부분들이 어린이의 시선으로 신선하고 코믹하게 그려져서 재미있었다. 뭐, 이런 것으로 책을 쓸까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생각이 남다르고 재미있게 글을 쓰는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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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아이들이 좋겠어.」 나는 기쁨에 차서 외쳤다.
「어째서 네팔 아이들을 미워해야 하는데?」
「네팔이라는 나라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직사각형이 아닌 국기를 쓰고 있거든.」
놀라운 침묵이 좌중을 휩쓸었다.
「정말이니?」 벌써 흥분으로 탁해진 목소리로 누군가가 물었다.
나는 두 개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공중 팽이를 길이로 이등분해 놓은 모양의 네팔 국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네팔 아이들이 적으로 선포되었다.
「저런, 죽일 놈들 같으니라고!」
「가르쳐 주자, 그 네팔 놈들에게 국기란 모름지기 직사각형이어야 한다는 걸 알려 주자고. 다른 나라들처럼 말이야!」
「네팔 놈들은 자기들이 대단한 줄 아나 보지?」
증오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동독 아이들도 우리만큼이나 격분했다. 그들은, 국기가 직사각형이 아닌 나라에 맞서 싸우는 이 성전에 연합군의 일원으로 싸우게 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우리로서는 그들의 참전이 기쁠 뿐이었다. 우리를 쳐부수던 아이들, 우리가 고문했던 아이들과 한편이 되어 싸운다는 것은 감동적인 일이 아닌가?
사랑의 파괴 | 아멜리 노통브, 김남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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