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얼굴
이슬아 지음 / 위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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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아야 당하지 않는다. 나의 의견이 생길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에 다 사리가 닿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한다. 어느 구석 어떤 자리에서 우리를 엿먹이려는 의도가 꾸물꾸물 솟아나고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들에게 귀기울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독서이기 때문에.

글쓰기는 독서의 완성.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다루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 작가가 쓴 컬럼의 글들을 모아서 나온 책. 역시 독특한 생각을 알아보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남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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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을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2025년부터는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쓰이는 표현이 바뀐다. 우선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수정됐다. 자유민주주의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내걸었던 단어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가 즐겨 쓰는 ‘자유’란 주로 시장과 기업과 자본가와 노동시장 상층부를 장악한 사람들을 향해 있다. 노동시장의 하층부, 빈곤층,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어린이 등의 자유에 대한 무관심은 노골적일 지경이다. 노동하는 사람을 능동적 주체로 인정하는 ‘노동자’라는 말도 개정안에서 사라졌다. ‘성평등’과 ‘성소수자’도 사라졌다. 자유와 평등을 위한 그간의 치열한 투쟁을 지우는 변화다. 이를 두고 인권위는 인권 담론을 후퇴시킨다며 우려했으며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 천여 명이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결정권은 국가교육위원회로 넘어갔다. 근미래의 교과서는 세계의 커다란 일부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필독서가 될 터다.

이것은 명백히 퇴보다. 그러나 현 정부가 퇴보하는 와중에도 어린이와 청소년은 자라난다. 이 퇴보를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어떤 말이 지워졌는지 잊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지워진 말을 아이에게 가르치길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의 사유가 편협하고 빈약한 언어에 한정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라영 작가는 『말을 부수는 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권력의 망언이 난립하는 가운데서도 이에 맞서는 언어들도 지치지 않고 생성된다. 바로 그 지점에 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날씨와 얼굴 | 이슬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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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2 지식을만드는지식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 시리즈 2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정아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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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2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지식을만드는지식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 시리즈

드디어 완독! 백치 1권 776페이지, 백치 2권 804페이지. 세상에...

‘죄와 벌’ 읽을 때도 그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을 때도 그랬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정말 대단한 작가같다.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지 당위성을 절감하게 해주는 작품들이라는 생각. 이토록 많은 인간군상과 그들이 느끼고 행동하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요즘 우리의 삶에서도 거울처럼 그대로 비취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는... 이토록 많은 생각들을 종합해난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은 아닐텐데.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사는 길은 정녕 ’백치‘ 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남는다. 처음에는 그토록 비웃던 순수청년 미쉬킨을 등장인물들 모두가 추앙하고 존경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이러니. 그러나 정작 그런 순수한 미쉬킨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순수함 때문에 상처받고 죽임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는 결론도 신박하다. 너무 사실적이다.

도스토옙스키 작품 중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던 작품이라는 사실에 비하면 대중적인 인기는 그리 구가하지 못한 소설인듯. 많이 장황하긴 하다. 그래도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은 재미있는 작품. 언제라도 다시 재독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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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제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꼴 때문에 사상이나 위대한 이념을 훼손하지나 않을까 늘 두렵습니다. 전 적절한 제스처를 취할 줄 모릅니다. 전 언제나 말과 반대되는 제스처를 취하기 때문에 이것이 웃음거리가 되고, 사상을 비하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균형감도 없습니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이것이 심지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차라리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앉아 있는 게 낫다는 걸 잘 압니다. 전 입을 다물고 얌전히 앉아 있을 때, 심지어 상당히 분별 있어 보입니다. 게다가 생각할 시간도 있고요. 그러나 지금 전 말을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여러분이 너무도 아름답게 절 바라보고 계시기에 전 말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얼굴은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합본 | 백치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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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피쉬
대니얼 월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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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허풍선이 떠돌이 세일즈맨 아버지를 가졌다면 나는 절대 참지 못했을거 같은데— 사실은 읽는 내내 불편했다. 젊어서 어머니에게 가정을 내맡기고 천천히 차를 몰아 여기저기 다니며 동네 일 다 참견하며 세일즈하고 돌아와 집안에선 무기력하고 왜소해지는 아버지라니. 거기다가 느즈막히 병을 얻어서야 집안에 머물며 알 수 없는 농담에 아재개그만 날리는 중년의 남자라면. 아 짜증 폭발.

작품 속 화자가 아들이라서일까? 아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신화 속의 영웅처럼 상상한다. 무슨 일이든 척척 해결하고 온갖 모험 속에서 살아남는. 그러나 화자가 딸이었다면? 아마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아주 오래전에 극장에서 영화로 먼저 봤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때도 ‘이게 뭐지?’ 싶어서 찝찝했던거 같기도. 이런 류의 허풍스런 인물이나 환타지적인 전개는 내 스타일이 아닌걸로.

‘아버지’를 주제로 한 작품 중에서는 역시 ‘아버지의 해방일지’만한 것이 없는것 같다.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이런 정서는 좀 불편하다. 막판에 제인이라는 여자와의 관계를 환상적으로 미화한 부분에선 화가 날 정도. 신비롭게 그려서 그렇지 사실은 현지처랑 뭐가 다른가. 명성에 비해 공감하기 쉽지 않았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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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계속 걷는다. 어두컴컴한 데서 앞을 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눈앞에 집이 나타난다. 집이다. 그런 것이 어떻게 이렇게 부드러운 진흙 밑으로 가라앉지 않고 똑바로 서 있는지 믿을 수 없지만 그것은 오두막도 아니고 분명히 집이었다. 작긴 했지만 사방에 벽이 있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집에 가까이 갈수록 물이 빠지면서 땅이 굳어지고 그가 따라갈 수 있는 길이 나왔다. 그는 내심 미소 지으며 생각한다. 이제 길이 없으리라고 단정 지을 때, 그리고 더 이상 길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순간에 길이 나오다니, 참으로 재미있고 또 참으로 인생살이 같다고.

빅 피쉬 | 다니엘 월러스, 장영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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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9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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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여인들의 일대기가 옛날 이야기처럼 입담좋은 동네 아저씨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듯 이어지는 소설같지 않은 소설. 환타지도 들어있고 파친코 같이 이야기 속에 우리나라 근대사의 면면이 드러나며 무엇인가가 속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

한마디로 정의하긴 워낙 스케일이 크고 복잡하지만, 아뭏든 재미있다. 두꺼운 책인데 한 번도 쉬지못하고 줄줄줄 계속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었다는.

일제시대 전부터 시작해서 노파, 금복, 춘희 세 여자의 삶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무대는 숲속 시골마을, 바닷가 덕장, 벌을 키우는 양봉얘기에서 극장, 야쿠자 두목, 거렁뱅이 이야기로 흐르다가 서커스 코끼리, 다방, 궁극에는 벽돌공장과 교도소까지 이르른다. 띄엄 띄엄 들어서는 전혀 맥락이 닿지 않을 테지만, 이 모든 것이 세 여자의 일생과 기묘하게 맞물린다.

이 작품으로 천명관이라는 작가를 다시 보게됐다. 2004년 작품인데, 이런 글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뭘 하고있었나 되짚어보게도 됐고.

올해 읽은 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같은 작품.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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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세상이 둥근지 미처 몰랐어.
바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모두가 둥글어.
벽돌은 네모잖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걸로 둥근 집을 지으면 결국은 둥근 거지.
네모난 집을 지을 수도 있잖아.
그래, 하지만 네모난 집이 모이면 둥근 마을이 되잖아.
그렇군.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 아주 먼 데.

고래 | 천명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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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치, 파란만장
장다혜 지음 / 북레시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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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천한 광대 신분으로 예술혼을 불태우며 진정한 소리꾼이 되기위해 분투하는 이날치의 이야기.
노비 신분을 숨기고 어린 나이에 광대무리에 끼어들었으나, 돈에 팔려 양반에게 피를 빨리며 착취당했다. 소리를 배울 수 있게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를 내주었으나 죽음 직전까지 내몰렸다가 가까스로 구출되었다.

신분 때문에 인생이 꼬인 또 한 명의 인물. 공주의 낙점을 받아 부마가 되어 출세길이 막혔을 뿐만 아니라 은애하던 여자와도 아어질 수 없었던 기구한 젊은이의 이야기도 얹어져있다.
심지어 부인이 된 공주마저 일찍 죽어버려 그는 남자임에도 ‘미망인’이 되어 재가도 할 수 없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답답한 팔자가 되어버렸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아리따운 장님 곡비 백연이 등장해서 운명적인 삼각관계가 만들어지고, 질투와 오해가 빗어내는 가슴아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줄줄 아어진다.

‘이날치’라는 인물이 19세기에 실재로 존재했었던 인물이었던 듯. 흥미로웠다. 중간중간 각 지역 방언들이 상당히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사용된 것도 재미있었고, 심청전, 춘향전 등 판소리 구절들이 꽤나 상세하게 인용되어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자료조사를 정말 많이 하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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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저는 천인입니다. 나이도 많습니다.”
“내 나이도 겁나 많으.”
“월사금을 낼 형편이…… 못 됩니다.”
“남 돈 받을 맴, 나두 읎어부러.”
“염치없사오나…… 거두어만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어르신!”
눈앞의 명창마저 저를 밀어낸다면 끝을 내겠다, 날치는 다짐했다. 삶을 더 이상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정 갈 데가 읎으면 여서 동절이나 나불등가.”
“참말……이십니까!”
“시방도 콱 디져뿔까 말아뿔까 그 생각 안 혔냐? 쌩목숨 내버리는 꼴은 못 봉께 여 있으란 거여. 근디 거 하난 확실히 혀. 뭐슬 갈켜달라 구찮게 헐 것 겉으면 당장 가뿌러. 내는 누굴 갈키고 으짜고 그럴 깜냥이 안 되븡께.”
“감사합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땡그라랑…… 돌연 날치 앞에 빈 호리병 하나가 떨어졌다.
“여는 느 몸 하나 간신히 뉘일 방만 있응께 군식구까진 몬 들여야.”
“예?”
“워떤 잉간인지 느 명치에 떡허니 앉어 있응께 당최 슬퍼서 더는 몬 듣겄어야. 엿장수도 느보단 신나겄다 이 말여. 긍께 여 넣고 가끔만 애달파혀, 잉?”

이날치, 파란만장 | 장다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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