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받지 못하는 기자들 - JTBC 탐사보도 기자들이 마주한 순간들의 기록
이윤석 외 지음 / 파지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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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받지 못하는 기자들
— JTBC 탐사보도 기자들이 마주한 순간들의 기록
이윤석, 전다빈, 강희연, 이환희, 하혜빈 지음

요즘은 뉴스를 잘 보지않아서 분위기가 어떤지 잘 모르겠다. 탐사보도들을 제대로 하고있는지 어떤지 감도 잘 안잡히고. 아주 오래전 한창 마봉춘 기자들 파업해서 투쟁하고 그럴 때야 기자들 하는 일 박수도 치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영...

이 책 속에서도 첫 번째, 두 번째 이야기는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다. 나쁜 짓 하는 정치인들 뒤밟아서 잘못된 것 고발하고 옷벗기고 뭐 그런 이야기. 나쁜 놈 나쁜 짓 한 거 알려줘서 고맙긴 한데, 당한 백성들은 이래저래 속상한 이야기라서 기자들 잘했다고 마냥 박수치기는 좀 그렇다. 물론 절대 개인적인 의견이다.

세 번째, 네 번째 이야기는 좀 읽어볼 만 하다. 역사적 책임 부정하는 일본 재벌그룹 미쓰비시 추적 이야기, 독일에 방문해서 전범국이었던 독일이 과거 역사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이야기였다.

몇 년 전까지 꽤 오랫동안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징용으로 배상도 못받고 미쓰비시와 소송하고 있는 할머니들을 후원했었는데, 그 분들 이야기를 책에서 보니 너무 반갑고 씁쓸했다. 그분들의 소송이 한 번 승소하고나서 축제 분위기였다가 갑자기 상황이 반전되서 어리둥절 했던 기억이 난다. 책에서 보니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던지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기가 막힌다.

미쓰미시는 한국 국민들이 벌이는 불매운동에는 크게 타격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정부나 기업을 대상으로 거래하는 사업을 하기 때문. 그리고 미쓰비시 기업의 이름으로 사업을 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대주주로 있는 다른 이름의 사업체들을 이용하여 거래를 하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워낙에 대기업이라 관여하고 있는 분야도 엄청 다양하다.

미국 CIA에서 공개한 기밀문건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에서 1945년 사이 북유럽 곳곳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첩보 요원들의 심문 결과 미쓰미시에서 엄청난 자금을 조달하는 등 전쟁 당시 사람과 돈을 기반으로 첩보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러한 취재를 하면서 기자들은 우리나라의 역사 기록물 관리가 얼마나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는지도 밝혔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육성증언이 몇 건 씩 사라진 경우도 있었고, 지료의 저장 상태가 제각각이라 어떤 자료가 어떻게 저장되어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지경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사과하고 배상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히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증거자료들을 적절하게 준비해서 따져나가야 승산이 있을텐데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이런저런 현안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문제들의 개선방안을 궁리해 볼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이 기자들의 임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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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삽니다
장양숙 지음 / 파지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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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삽니다 | 장양숙

아, 연휴 마지막 날 편안한 마음으로 집어든 책에 크게 한 방 맞았다. 눈물 콧물 줄줄 흘러서 머리가 다 아프다.

6살 때 휴가나온 군인 외삼촌 마중나갔다가 사고로 다리 한 쪽을 잃고 평생 ‘절뚝발이’로 살아야 했던 한 여인. 장애와 더불어 찢어질듯한 가난과 싸우며 가장으로 식구들을 홀로 부양한 그녀의 실제 인생이야기다.

고생한 사람들 정말 많고, 그런 인생스토리를 담은 책들은 많이 봐 왔지만, 이 책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이런저런 표현들이 그냥 입으로 하는 말처럼 편하고 친숙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 쓴 책이 아닐까 싶은데 읽기 편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책의 마지막에 돌아가신 시어머니, 부모님, 남편, 딸, 자신의 사고 때문에 비관하여 자살한 외삼촌에게 남긴 짧은 글들이 있는데, 그 부분 읽다가 또 한 번 터졌다.

장애인 직업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저자의 소원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내 처지에 감사하는 마음 가지며 살자는 다짐을 다시금 하게 된다.
__________

학교에서 사람들은 나를 마주칠 때마다 혀를 찼다. 인물 버렸다며 대놓고 불쌍하단 소리까지 했다. 어린아이지만 동정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불쾌하고 서러웠는지 모른다. 제발 모른 척해 주기를, 그냥 지나쳐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를 아프게 한 모든 사람들은 나의 이웃이었고 친구였다. 하지만 나를 진정 아프게 한 것은 그들의 동정 섞인 배려였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장애인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죽어도 모를 것이다. _27쪽

교통사고로 얻은 것이 많았다. 누가 뭐라 해도 위축되어 포기하는 일이 없다. 넘어져도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마음 또한 없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친구가 당연히 너도 할 수 있다며 손을 내밀어 주었던 것처럼, 자전거 페달을 밟고 서서히 앞으로 나아간 것처럼, 나는 받은 손길을 다시 내밀어 주며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달렬갈 것이다. _40쪽

넘어지면 안 되는 삶이다. 남편이나 딸아이가 보기에 용감하기만 한 나는 절대로 넘어지면 안 된다. 가족에게 든든한 나무가 되어 쉴 수 있는 그늘의 역할을 할 때까지 넘어지지 않고, 그들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나도 떄로는 쉬고싶다. 그리고 넘어졌을 때 잡아 줄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하늘은 나보고 주인이 되어라 한다. 다른 이들의 쉼터가 되어라 한다. 내 처지를, 내 운명을 순응해야 했다. _68쪽

우연히 접하게 된 사연에 나는 통곡하며 울었다. 얼마나 울었던지 다음 날 아침에는 눈이 부어 뜨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픔을 가진 사람들만이 아는 눈물이었다. 나보다 기막힌 사연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곳에 눈물과 한이 있다. 헤어릴 수 없는 아픔이 있다. 내가 일어서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보다 더 아픈 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 아픔을 가지고 살면서도 웃어야 하는 사람들. _63쪽

힘들게 살아왔지만 어루만져 주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를 자식으로 둔 부모님이다. 나를 가족으로 둔 형제들이다. 나를 보며, 장애인만 보면 마음이 아팠을 가족들. 내가 다 아플 테니, 제발 더 이상은 아파하지 않기를. _196쪽

이제 엄마 삶을 다시 만들어 나아가려 해. 엄마는 글을 쓸 것이고 세상을 천천히 다시 읽어볼 거야. 하루하루 소중하게, 세상과 손잡고 살아가려고 해. 세상이 엄마를 아무렇게나 팽개쳐 놓고 달아났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를 이만큼 데리고 왔더구나.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세상이 아름답다. _216쪽

#마음을삽니다 #장양숙 #파지트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에세이책추천 #자아실현 #자기계발책 #장애인 #장애여성공감 @pazit.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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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제르미날 1~2 - 전2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에밀 졸라 지음, 강충권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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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2 | 에밀 졸라, 강충권 저

가난한 프랑스 탄광마을에서 노동자들에 벌이는 자본과의 투쟁과정을 담은 에밀 졸라의 장편소설. 가난한 노동자들의 생활, 탄광에서의 힘겨운 작업과정 등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있다. 혁명의 단계단계마다 주요한 인물들의 행동방식들이 극적으로 대비되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노동자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탄광의 사장과 주주같은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두 계층이 얼마나 다른 환경,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혁명과정 중에 탄광주인의 딸 세실이 ‘빵을 달라’는 성난 여성주민들에게 고초를 당하고, 결국 탄광에서 폐병을 얻어 퇴직한 본모르 노인에게 목졸려 죽임을 당한다. 가난 앞에 눈이 돌아버린 성난군중와 혁명의 비정함, 제 손을 벗어나 통제되지 않은 군중 앞에서 망연자실하는 선동가의 모습 등이 그려진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도시에서 실직하고 프랑스 북부 탄광마을까지 흘러온 에티엔은 아슬아슬한 작업환경에서 일을 시작한다. 탄광마을 사람들은 남여노소를 불문하고 대를 이어 탄광에서 일하며 가난한 삶을 산다. 가부장적인 질서가 지배적이며, 남자가 아내와 자식들에게 손찌검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 배고픔과 사고의 위험에 늘 노출되는 마을 사람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섹스 뿐이다. 부부들도 불륜을 쉿쉬하며 용인하는 분위기며, 어린 아이들조차 일찌감치 개방적인 관계를 통해 부모가 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마을에 있는 가게 주인 메그라는 주민여자들이 빚을 갚지못하면 몸으로 대신 갚게하는 방식으로 사욕을 채운다.

에티엔은 탄광일을 시작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카트린과 썸을 타지만, 탄광노동자 샤발이 이를 질투하며 억지로 카트린을 집에 보내주지 않고 데려와 함께 살게된다. 카트린은 매맞고 살면서도 자신의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마음때문에 어쩌지 못한다. 어느날 임금이 줄어들어 온 마을이 비탄에 잠기고 그즈음 탄광붕괴사고가 발생하여 한 명이 죽고 카트린의 동생 장랭이 두 다리를 다친다. 결국 파업이 단행되어 노동자들에 직접 사장과 주주를 찾아가 면담하지만, 그들은 노동자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에티엔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 주요한 인물이 되어간다. 그러나 기존 노동자대표자 겪에었던 이와 충돌이 생긴다. 급진적인 혁명에 대한 우려와 염려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노동자들을 선동한다. 파업이 장기화되고 주민들은 전면파업을 다짐하지만, 사장의 회유에 넘어간 샤발이 파업 결정을 배신하고 작업을 재개한다. 이에 흥분한 광부들은 광기에 휩싸여 탄광 안에 사람들이 있음에도 케이블을 끊고 시설을 파괴하는 하며, 뜻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노동자들이 사장의 저택으로 몰려왔다가 에티엔의 중재로 대신 메그라의 상점을 파괴한다. 메그라가 지붕에서 떨어져 죽고, 그에게 성적 수탈을 당했던 마을의 여자들이 메그라의 시체를 훼손하고 능욕한다.

결국 헌병이 개입하여 사태를 진합하고, 파업을 주도한 사람들이 해고당한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구걸하며 생활이 더 어려워진다. 사업을 유지하려는 탄광사장은 외국인 노동자를 들여오려 시도하다가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헌병이 또 다시 대치하며 발포하는 사태가 벌여진다.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자 마을 사람들은 에티엔을 비난한다. 파업주도자를 찾는 헌병의 눈을 피해 숨어다니던 에티엔은 방수벽이 터져 붕괴가 시작된 탄광 안에 카트린과 함께 갇혀있다가 그녀는 죽고 혼자 구조된다.

결국 파업은 끝나고 사고에서 회복된 에티엔은 마을사람들을 만난다. 절대 탄광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주민들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갱도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에티엔은 마음아파하지만, 카트린의 어머니 라 마외드를 만나 자신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화해의 말을 듣고 힘을 얻는다. 대를 이어 온 그녀의 체념과 다시금 복종하게 만드는 규율 준수하는 물려받은 태도 속에서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현실을 확인하고 희망을 품고 지도자가 되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정말 슬픈 결말이다. 다시금 탄광에 내려갈 수밖에 없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어떠했을지, 자식들이 나이가 차서 하루빨리 탄광에 내려가 돈벌이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야 하는 어미의 심정이 어떨지. 너무나 현실적인 결말이라서 더욱 슬픈것 같다.

#제르미날 #에밀졸라 #민음사 #탄광노동자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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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하여 - 작가가 된다는 것에 관한 여섯 번의 강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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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가진 직업을 이토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도록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작년에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시녀이야기’이라는 소설을 쓴 마거릿 애트우드가 여기저기서 강연하면서 했던 작가에 대한 강연내용을 모은 책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짜임새가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흥미를 끈 다음 차근차근 순서대로 하고싶은 이야기를 빠짐없이, 마치 독자들을 밧줄로 올가매듯 빠져나갈 틈 없이 둘러맨다. 그녀의 흐름대로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결론에 이르러서 느슨하던 밧줄을 확 조인다. 멍하니 듣고있던 사람들이 헉 숨을 몰아쉴 정도로.

1장에서는 작가가 뭐하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설명한다.
2장에서는 작가가 가진 이중성에 대해서 설명한다.
3장에서는 작가의 펜이 가진 위대한 힘을,
4장에서는 작가의 작품들이 가진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 언급한다.
5장에서는 작가의 작품을 읽는 독자에 대해서, 그들이야 말로 작품을 재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설명을 한다.
마지막 6장에서는 작가들의 영원한 글쓰기 주제인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 돤다.

저자의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뭐 이정도 아닐지.

가수나 의사가 되는 것처럼 오랜 훈련이나 학문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 글쓰는 작가다. 그렇다면 과연 작가란 무엇인가?

작가는 이야기꾼과는 다른 이중성이 있는 존재다. 창작활동 내내 혼자서 해야하고 독자가 눈 앞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작가가 의도한 내용이 그대로 오롯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읽어내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재창조되는 것이 글이기 때문에.

글을 쓰는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난의 길, 가난뱅이의 글을 가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마음에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작가들은 마치 이것을 예술가의 운명, 소수만이 선택받고 이중 일부는 순교하고 마는 운명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이렇게 만들어낸 작품들에는 도덕적인 혹은 사회적인 책임이 있는 것일까? 글을 쓰면서 작가들에게는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이 있을까? 그런 책임을 통감하고 그것을 책에 담는다면 과연 작가는 마음껏 창작활동을 할 수 있을까?

어차피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다. 작가는 그저 쓸 뿐, 작품에 대한 가치평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좋은 예술가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 작품이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 아닌지를 정하는 것은 독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독자는 누구인가. 작가는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쓰는가. 인기나 출세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그들’아 아닌,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단 한사람을 위해서다. 결국 독서라는 행위도 글을 쓰는 행위처럼 언제나 단수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이 다루어지는 주제는 바로 ‘죽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다. 저자는 ‘글쓰기는 죽음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말한다. 인간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고 초월하게 하는 글, 이를 창조하는 존재가 바로 작가이다.

여기까지 읽고나면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작가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작가가 돠려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하는 것인가 놀랍기만 하다. 저자가 예로 든 작품들의 양과 그 시의적절함에 감탄할 뿐이다.
__________

가장 믿을 만한 출처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곳에 가는 건 쉽지만 돌아오는 건 어렵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면 모든 이야기를 돌에 새겨야만 합니다. 운이 좋아 올바른 독자를 만나면 돌이 말을 할 겁니다. 돌이 혼자 세상에 남아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마지막 말은 시인 오비디우스에게 넘기겠습니다. 그는 쿠마에의 무녀 시빌에게 발언을 허락해주었죠. 그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추측컨대 오비디우스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모든 작가들의 희망과 운명을 위해서.

“하지만 운명이 내게 목소리를 남겨놓아,
사람들이 그 목소리로 나를 알아보게 될 겁니다.”

글쓰기에 대하여 | 마거릿 애트우드, 박설영 저

#글쓰기에대하여 #마거릿애트우드 #프시케의숲 #작가가된다는것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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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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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죽음이 이렇게 2년이 넘도록 아픔으로 남을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고 오랜 시간을 어머니와 둘이 살았다는 작가의 이력을 보니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하고. 여러모로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었구나 싶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픔에서 연민으로 끌어올렸다니, 아마도 그녀의 죽음에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사연이 있었던 듯 싶기도. 혹자는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지금은 모르겠다, 어떤 기분일지. 작가의 어느 메모처럼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무심코 흘린 한 마디에 철철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있을 때 잘 하자. 그게 내 마음이다.
__________

슬픔이 에고를 넘어서 도덕과 만날 때, 슬픔은 고유한 슬픔, 완전히 새로운 슬픔이 된다. 이 완전히 새로운 슬픔을 바르트는 니체와 함께 ‘연민’이라고 부른다. 『밝은 방』 마지막에서 바르트는 이렇게 쓴다: “사진이 불러내는 감정 안에서는 또 다른 선율이 들려왔다. 그것은 연민이었다. … 죽은 것, 죽어야 하는 것들을 껴안으며 나는 사진 속으로 뛰어든다, 1889년 1월 3일, 지쳐 쓰러진 말의 목덜미를 껴안으며 연민 때문에 미쳐버린 니체처럼.” 도덕의 주체는 더 이상 슬픔의 주체가 아니다. 그는 애도의 끝에서 슬픔으로부터 깨어나는 주체, 슬픔의 에고로부터 연민의 사랑으로 건너가는 주체다. 푼크툼의 순간, 순결한 슬픔의 순간, 바르트의 순간은, 이 연민의 도덕적 주체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역자의 말 중에서

애도일기 (리커버 에디션) | 롤랑 바르트, 김진영 저

#애도일기 #롤렁바르트 #걷는나무 #어머니의죽음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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