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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정말 독특한 소설. 뱃속의 아기가 1인칭 주인공이면서 화자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햄릿의 이야기를 옮겨놓은 줄거리.
실패만 거듭하는 출판업자 아버지와 아리때운 미모의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와 별거하고 현재 아버지와는 달리 부동산업으로 성공한 시동생과 함께 살고있다. 아버지가 비슷한 취향의 어린 시인여성과 함께 살기위해 이들이 함께 신혼을 보냈던 집, 지금은 그녀가 시동생과 함께 살고있는 집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하자 충동적으로 시동생과 함께 남편을 독살하여 사고사로 위장하는데 성공한다.
어머니의 복중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관망하며 자신의 안위와 앞날을 고민하는 태아인 나는,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려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어머니를 동정하기도 하고, 삼촌와 작당하여 어머니마저도 자신을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태어나지 않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한다.
결국 아버지의 본심이 알려지고 죄책감을 느끼는 어머니. 태아인 나는 어머니를 사주해서 아버지를 살해하고 집을 팔아 한몫 잡으려 했던 삼촌을 응징하기 위해 예정일보다 일찍 세상에 나오기를 감행한다. 경찰을 피해 달아나려던 삼촌과 어머니는 결국 발이 묶이고, 어머니와 조우한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함께 보낼 감옥 안에서의 생활을 그린다.
영국작가 소설인데, 문체도 소재도 상당히 독특하다. 이번 참에 햄릿을 정독해 봐야겠다는 호기심도 생기고. 이야기가 정확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로 끝나버려서 이 모자의 뒷 이야기가 어떻게 됐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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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나를 움직여 우리는 긴 시선을 교환한다. 내가 기다려온 순간이다. 아버지 말이 맞았다. 어머니의 얼굴은 사랑스럽다. 머리색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진하고, 눈동자는 더 옅은 초록, 두 뺨은 아까 애를 써서 아직까지 빨갛고, 코는 정말 작다. 나는 그 얼굴에서 세상 전체를 보는 듯하다. 아름답다. 다정하다. 살인적이다. 클로드가 체념한 발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준비된 말 같은 건 없다. 나는 이 휴식의 순간에도,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오래도록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면서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택시를 생각한다. 낭비다. 택시를 보낼 때다. 그리고 우리의 감방에 대해—너무 좁지는 않기를—육중한 감방문 너머로 뻗은 낡은 계단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처음에는 슬픔, 그다음은 정의, 그다음은 의미. 나머지는 혼돈이다.
넛셸 | 이언 매큐언, 민승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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