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사키 류조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제74회 나오키상 수상작 (1976년)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두 가지이다.『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친밀하면서도 강렬한 제목 그리고 일본 대중문학에게 수여하는 가장 권위있는 상인 제74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타이틀. 우리에게 이 책의 제목이 친숙한 이유는 1990년 제작한 박찬욱 감독의 동명 영화 때문이고, 그 영화는 1979년에 제작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그 일본 영화의 원작이 바로 1975년에 출간된 사키 류조의『복수는 나의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은 논픽션 전문작가인 사키 류조의 대표작이자 일본 범죄 소설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1963년 실제 일본에서 발생해서 전국에서 경찰 12만명이 동원되는 등 일본 범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사를 벌인 연쇄살인범 <니시구치 아키라 연쇄살인사건>에 모티브를 얻어 한 범죄자의 범죄 행각을 논픽션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작가의 감정을 일절 배제한 하드보일드풍의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에 르포르타주같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써내려간 점에서 '논픽션 범죄소설의 걸작' 트루먼 카포티의『인 콜드 블러드』와 비견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에노키즈 이와오는 담배전매공사의 현금수송차량에서 돈을 탈취하고자 강도살인을 저지른 것을 시작으로 10세 소녀의 신고로 검거될 때까지 78일간 경찰의 추적을 피해 전국을 도망다니며 다섯 명을 살해하고 갖은 사기를 치는등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 작가는 작품을 쓰기 위해 사건 당시의 공판 기록을 포함 경찰, 가족, 부모, 공범자, 피해자, 내연녀, 동거녀, 친구, 지인등 관련 인물을 취재, 대학노트 30권 분량의 철저한 조사를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범죄자 에노키즈의 살인 및 사기와 도주 행각을 다양한 주변인물들의 진술과 증언을 토대로 구성해 나간다.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잔인한 연쇄살인보다 오히려 지능적인 사기 행각이다. 주로 대학교수나 변호사로 신분 위장을 하며 풍부한 지식과 화려한 언변으로 피해자를 안심시킨후 대범하고도 신속한 행동으로 사기 행각을 완성시키는데, 특히 한 건의 사기 행위 도중 10여분간의 막간을 이용해 또 다른 사기를 순식간에 성공시키는 장면에서는 그 천재적인 테크닉에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잔혹한 흉악범도 모자라 사람의 등을 쳐먹는 교활한 지능범이라니...거기에 전국을 도망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엽서를 보내는 뻔뻔함까지 겸비한 정말 타고난 범죄자이다.

연쇄살인 및 각종 사기와 도주 행각을 벌이는 초,중반부도 흥미진진했지만 검거된 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후반부의 옥중 재판 과정이 좀 더 감정 이입이 되며 가슴에 와닿는다. 검사의 공소사실부터 형량 선고, 변호인의 반론등 수차례의 공판 과정과 좁디좁은 교도소의 차디찬 방에서 하루하루 사형수의 몸으로 형을 기다리며 조금씩 교화되고 참회하는 에노키즈의 체념과 회한의 모습을 보니 비록 극악한 범죄자이지만 나름 연민의 정을 느낀다. 

 

이 책은 일반 미스터리, 스릴러같은 장르소설에서 볼 수 있는 영웅적인 캐릭터도 없고 드라마틱하고 속도감있는 전개나 놀라운 반전이 있는 작품이 아니다. 한 범죄자의 범죄 행각을 담담히 기록한 작품이니만큼 당시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정황을 토대로 작가가 서술하는 범죄자 에노키즈의 발자취를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논픽션 범죄소설만의 독특한 재미를 충분히 만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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