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잔 진구 시리즈 5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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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본격 추리소설 <붉은 집 살인사건>으로 데뷔한 도진기 작가의 열세 번째 장편이자 '진구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거액의 비트코인 계좌 번호가 들어있는 메모리의 향방을 둘러싼 진구와 범죄 조직 간에 한 판 승부를 그리고 있다. 진구는 조직의 치밀한 계략하에 살인 용의자 누명을 쓰고 인천 구치소 독방에 수감되고, 그곳에 숨겨져있던 메모리를 찾으면서 진구와 조직 간의 숨막히는 두뇌 싸움이 시작된다.

거액의 비트코인 계좌 번호가 들어있는 메모리를 진구를 통해 회수하려는 조직과 메모리를 방패 삼아 무죄를 선고받고 구치소에서 벗어나려는 진구.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전작 <모래 바람>에서 등장했던 진구의 중학 동창이자 라이벌인 유연부가 있다. 유연부는 메모리 회수의 적격자로 진구를 선택했지만 동업자 김 전무의 독선적 행동으로 일이 꼬이고 만다. 여기에 카메오 역할로, <정신 자살> 등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던 이탁오 박사와 고진 변호사가 등장한다.

글쎄...결론부터 말해서 조금은 심심하다. 일단 이 책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그렇다고 스릴러라고 부르기엔 젊은 진구 특유의 역동성이나 긴박감을 불러일으키는 스릴감도 강하진 않다. 물론 진구가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구치소를 탈출하는 다양한 전략은 매우 감탄스러웠지만...<합리적 의심>, <가족의 탄생>, <악마는 법정에~>같은 최근작들에 빗대어봤을 때 차라리 '범죄 드라마'라고 부르고 싶다. 작가의 소설은 일정 수준의 만족감을 느끼며 모두 읽었는데 확실히 초기작들에 비해 기조, 스타일이 변했다.

<붉은 집 살인사건>,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순서의 문제> 등 초기작에서는 트릭과 수수께끼 풀이를 내세운 본격 추리 성향이 강했지만, <유다의 별>을 정점으로 해서 후속작들은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의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는 범죄 드라마 형식으로 흐른다. 아마도 신선한 트릭의 개발이 여의치 않아서인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작가 전공을 십분 살린 법률적 용어와 해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어찌 보면 양날의 검이다. 해박한 법률 지식에 대한 전문성이 작품의 퀄리티를 높여주지만 세세한 설명은 오히려 스피디한 전개를 잡아먹는다. 책 제목 <세 개의 잔>의 대표성에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확률로 삶과 죽음을 오가는 관련 트릭은 제법 흥미로웠다. 이탁오 박사가 보여준 지옥도도 인상적이었고...

어쨌든...<붉은 집 살인사건>에서 보여준 신선한 트릭과 <순서의 문제>에서의 특유의 역동성, <정신 자살>에서의 확대된 스케일과 <유다의 별>에서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폭넓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그립다. 그나저나 후기를 보니 도작가님께서 눈이 안 좋으신가 보다. 부디 쾌차하셔서 백수 김진구, 고진 변호사, 이탁오 박사의 마지막 순간까지 무사히 집필하시길 빌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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