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평점 :
가진 것 없이도 배낭을 쌀 수 있는 자유, 젊음의 특권이다. 그러나 머리마저 빈 채로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만한 책 한 권쯤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 그랬던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태양이 타는 열대의 그곳, 언젠가 한 번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아프리카를 그리며 이 책을 손에 쥐었다. 사실 몇몇 여행서를 빼고는 아프리카의 문화를 담아낸 책은 정말이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참 맞는 말이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벌써 호기심이 인다. 알록달록 색이 칠해진 아프리카 지도에는 자로 반듯하게 그어놓은 듯한 국경선이 보인다. 당연히 누군가의 작품임에 틀림없다. 실제 이러한 국경선은 황금, 상아, 노예를 찾아 몰려든 유럽인들이 빠져나가며 자기들끼리 아프리카를 나눠먹은 결과로 생긴 것이다(도대체 야만과 문명의 기준이 무엇인지 유럽인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진다).
두 번째 의문. 검은 대륙 아프리카? 흑사병, 암흑기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로도 읽힐 수 있는 ‘검다’라는 말이 유난히 거슬린다. 고고학자,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기원을 아프리카에서 찾는다. 어찌나 달달 외웠던지 까먹지도 않는 말, 호모 사피엔스가 그것이다. 또한 아프리카는 땅덩이 자체가 오래된 까닭에 천혜의 지하자원이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인류학적으로나 지리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대륙인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프리카인들은 미개인으로만 여기는 우리의 그릇된 의식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아프리카인들이 미개인이라는 생각은 자연스레 지워져버렸다. 오히려 오래된 대륙의 심오한 철학을 접할 수 있었다. “하나의 삶이 모든 시간이다. 남자로 살기, 여자로 살기, 젊은이로 살기, 소녀로 살기, 아버지나 할아버지, 어머니나 할머니, 오빠나 누이로 살기, 그렇게 많은 시간이 있다.” 시공간과 그 속의 인간을 이토록 명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있다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지만)을 가장 철학적으로 풀어놓은 말인 것 같기도 하다. “한 인간은 다른 인간들을 통해 인간이 된다.”는 남아프리카의 우분투 이념은 어떤가? 자신들을 동물로 취급하던 하얀 괴물들마저 인간으로 받아들인 아프리카인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이 중반을 넘어서면, 마음이 아파온다. 특히 ‘사르트예’라는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에 갇힌 그녀는 코끼리, 하마와 다를 바 없는 동물로 여겨져 영국과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죽어서도 그녀는 치욕을 벗지 못했다. 동물인지, 사람인지 판별하기 위해 해부되었다가 다시 박제 처리되어 1974년까지 ‘인간 박물관’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다시 한 번 흥분해야겠다. 1974년까지도 그녀는 사람일 수 없었던 것인가).
그리고 투투 주교, 넬슨 만델라, 코피 아난과 같이 익숙한 이름들과 아프리카의 나폴레옹으로 군림하려 했던 장 베델 보카사, 아프리카인들을 꿈꾸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혹독한 죽음을 맞이한 파트리스 루뭄바와 같은 낯선 이름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에게 ‘독립’이라는 말이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듯, 그들의 과거는 우리의 과거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