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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스노볼을 읽고 제일 처음 생각난 것은 영화 <트루먼 쇼>(1998) 였다. 트루먼 쇼는 말 그대로 트루먼 버뱅크라는 남자의 삶을 방송하는 TV 쇼로, 태어날 때부터 걸음마, 초등학교 입학, 대학 진학, 결혼 등등 그 사람의 삶을 죄다 촬영하는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다. 라이브로 하루 24시간 내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잠자는 것까지 모두 찍어서 방송한다. 하지만 트루먼 본인은 자신의 생활이 방송된다는 것을 모른다. 트루먼 쇼에 등장하는 사람 가운데 소꿉친구와 직장동료, 옆집 이웃, 심지어 부모와 아내까지 트루먼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연기자이다. 결국엔 자신의 삶이 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상의 모든 것이었던 거대한 스튜디오 문을 열고 바깥의 세계로 나가던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또 복제인간이라는 제품의 중요한 소재는 영화 <아일랜드>(2005)가 생각났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인류는 인간과 완전히 닮은 개체를 배양해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지게 되고, 이러한 기술을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회사가 등장해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과 완전히 같은 개체를 만들어 그 개체의 몸에서 장기를 적출해서 진짜 사람의 불치병을 치유하는 데 사용한다는 게 기본 설정이다.
이 두 설정이 합쳐지고 촘촘해진 구성과 극한의 지구환경, ‘스노볼’이라는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면서 21세기 <고해리 쇼>를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읽으면서 또 주목할 점은 극의 주요 캐릭터들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스노볼 체제를 만든 이본 그룹의 초대회장 이본이나 주인공 전초밤, 디렉터 차설 등의 주연뿐만 아니라 작업반장, 기차기관사, 트럭기사, 택시운전사 등 조연들도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 그런 역할을 나도 모르게 남자일 것으로 생각했다가 내 고정관념에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한 권에 460페이지가 넘는 많은 분량이지만, 설정도 어디서 본 듯 친숙하지만 신선하고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밤새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제일 매력적으로 읽은 캐릭터는 ‘차향’과 ‘조미류’인데 두 사람의 우정과 용기가 참 좋았다. 결국 전초밤, 명소명, 신시내, 배새린은 자기 삶을 잘 살게 되었을까. 결국 우리 현실은 ‘스노볼’처럼 눈에 선명한 압박은 아닐지라도, 다른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그게 과연 나다운 삶인지 이 책은 묻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 이 글은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