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 픽션
박형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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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한때 나는 고양이였다. 불우한 거리의 고양이였다. 그리고 그는 나를 거둬들여 성범수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이고, 오랫동안 보살펴주었다. 내게서 이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인가? 맞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 - 나는 당신의 외로움이었다고, 그리고 이제 많이 진화했다고. 내 말 알겠는가? 시간은 저 혼자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늘 우리의 선택과 함께 흐른다. 침대 위에 눕기로 결정했다면, 침대 위에 누운 시간이 흐른다. 술을 마시기로 결정했다면, 술을 마시는 시간이 흐르는 것이다. 시간은 늘 그런 방식으로 흐른다. 그리고 한번 흘러간 시간은 돌이킬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그에게는 돌아갈 기회가 너무나 많이 있었다. 하지만 매번 온도조절판이 망가진 철제 다리미나 화분 옆의 벽돌이나 회색 캐리어 따위를 줄기차게 선택함으로써, 그러지 않았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파국을 차곡차곡 불러왔다.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게 바로 오늘이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고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 시간은 멋대로 되돌리라고 발명된 게 아니다. 시간 사용법은 그보다 훨씬 비정하다. 



-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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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colepsy 2016-01-20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4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