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업다이크의 "토끼" 4부작이 완간되었다. 1편인 <달려라 토끼>는 2011년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재간행된 바 있었는데, 이번에 같은 시리즈로 2-4편이 한꺼번에 간행된 것이다. 원래부터 4부작 모두를 간행할 계획이었지만 사정이 있어 늦어진 것인지, 아니면 1편만 내려다가 뒤늦게 2-4편까지 내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완간이라니 반갑다.


2편 <돌아온 토끼>는 과거 축약본만 있었으니 완역본은 이번이 처음이고, 3편 <토끼는 부자다>도 안정효 번역본이 절판된 이래 첫 재간행이며, 4편 <토끼 잠들다>는 이번에 처음 소개되는 셈이다. 물론 "토끼" 시리즈는 본편인 장편 4부작 외에도 외전으로 주인공 사후의 이야기인 중편 "토끼 기억되다"가 더 있다고 하니, 보기에 따라서는 '완간'이 아닐 수도 있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맨 처음 읽은 업다이크의 소설은 비교적 덜 유명한 <이브의 도시(Roger's Version)>였고, <달려라 토끼>는 그 다음에야 읽었지만 그닥 재미있지는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미국 중산층의 부부 생활에 초점을 맞춘 풍속 묘사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듯하니, 어린 시절의 나귀님으로선 선뜻 공감하기 어려웠으리라.


물론 비슷한 내용이지만 의외로 묘한 여운을 남긴 작품도 있기는 했으니, 바로 연작 단편집 <벌거숭이들(Too Far to Go)>이다. 매번 이런저런 갈등으로 위기를 겪다가 어찌어찌 봉합되는 중산층 부부 이야기인데, 맥락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밤중에 둘이 차에 앉아 있다 남의 눈을 피해 납작 엎드려 서로를 끌어안은 상태로 마무리되던 편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업다이크의 소설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인데, 그의 전성기인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성 개방 풍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스와핑(부부 교환)에 대한 묘사가 반복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그런 시대상을 보여주는 논픽션이 게이 탈리즈의 <네 이웃의 아내>라면, 픽션으로는 아마 업다이크의 소설들을 꼽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오죽하면 1978년 <커플스>의 역자 후기에서 장왕록 교수도 (에세이스트로도 유명했던 장영희 교수의 부친이다) 표현이 과하다 싶은 부분은 생략했다고 밝혔을까.(시대적 한계를 보여주는 언급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 번역서는 완역본이 아니었다는 뜻이니 살짝 아쉽다). 문득 어린 시절 업다이크를 읽다가 '오, 이게 된다고?'라 생각했던 장면이 몇 가지 떠오른다!


업다이크는 장왕록 교수와 친분도 있었고, 펜(PEN) 대회 참석 차 서울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이때 존 치버도 동행했다. 그의 일기에는 후배 업다이크와 친하면서도 츤츤댔던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도 일찍부터 많이 번역되었고, 나중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리잡으면서 노벨문학상에 대한 기대 때문에 신작도 거듭 간행된 것 아닌가 싶다.


다만 풍속 소설로서의 장점이 무려 반세기 뒤인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한계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또 한편으로는 미국식 사고와 생활 방식이 전세계에 익히 알려진 지금이야말로 "토끼" 시리즈를 읽기에는 오히려 적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최근 사회 분위기상 필립 로스처럼 페미니즘 비평의 철퇴를 맞을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만...




[*] 업다이크의 장편 소설 26편 가운데 우리나라에 간행된 것은 절반인 13편쯤 되는 듯한데, 책장을 뒤져 보니 1970년대에 나온 번역서가 몇 권 있어서 소개해 볼까 싶다.


<돌아온 토끼(Rabbit Redux, 1971)>(이덕형 옮김, 덕문출판사, 1974). 역자서문에 과도한 표현이며 불경한 언어를 일부 삭제한 초역본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반인반마: 센토(The Centaur, 1963)>(이덕형 옮김, 덕문출판사, 1974 초판; 1977 중판). 서지학 측면에서 하나 흥미로운 실수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출판사가 이사하면서 판권면을 새로 인쇄해 덧붙였는데, 실수로 1977년 중판이 아니라 1974년 초판이라고 인쇄했다. 즉 판권지에 '초판'이라 나오더라도, 그 밑의 원래 판권지를 확인해야 사실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커플스(Couples, 1968)>(장왕록 옮김, 경영문화원, 1978). 나중에 다른 출판사에서 재간행되기도 했다.


<결혼(Marry Me, 1976)>(이경수 옮김, 까치, 1978).


<벌거숭이들(Too Far to Go, 1979)>(김성열 옮김, 여원출판사, 1980). 업다이크는 첫 단편집 <같은 문>에 수록된 "그리니치 빌리지의 문"(1956)을 시작으로 '메이플 부부'가 등장하는 연작 단편을 17편이나 썼고, 1979년에 이를 한 권으로 엮어 간행했다. 다만 이 번역서에는 그중 14편만 골라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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