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났다던 장마가 되돌아오기 직전, 무려 35도에 달하는 무더위 속에 에어컨도 없는 집구석에 앉아 있노라니, 지금이야말로 <파리, 텍사스> 이야기를 한 번 정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었다. 영화도 진즉에 봤고, 음반도 여름마다 챙겨 들었지만, 샘 셰퍼드의 대본을 영한대역으로 간행한 번역서는 오래 전에 사다만 놓고 한 번도 들춰보지 않은 참이었기 때문이다.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니 폭우가 쏟아지기에 뭔가 또 타이밍을 잘못 잡았나 싶더니만, 습기를 먹어 여기저기 무너진 책더미를 수습하며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무더위가 돌아와서 다시 한 번 그 영화와 음반과 대본 이야기를 하기에 제격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가능하다면 오래 전부터 벼르던 '나스타샤 킨스키 5종 세트' 이야기까지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마도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가장 의아한, 그렇기에 흥미를 자아내는 부분은 바로 그 제목일 것이다. 이건 미국의 지명 표기법에 따라 "텍사스 주 파리"를 나타내는데, 영화에서는 가정 파탄 이후 홀로 떠돌아다니던 주인공이 바로 그곳에 정착하고 싶어 땅을 사 두었던 것으로 언급된다. 정작 실제로 나오지는 않는 그 실존 지명이 맥거핀 노릇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목 표기에 대해 설명하려고 보니, 문득 이와 유사하게 제목을 번역한 미국 소설이 하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바로 셔우드 앤더슨의 연작 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인데, 이것 역시 "오하이오 주 와인즈버그"라는 가공의 마을을 가리킨 것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줄곧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나귀님도 각별히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번역서도 여러 권 갖고 있는데, 혹시 새로운 번역이 더 나왔나 궁금해서 알라딘에 들어와 검색해 보니, 뜻밖에도 셔우드 앤더슨의 단편 선집이 최근에 나온 모양이다. "숲속의 죽음"과 "계란"처럼 여러 차례 이런저런 단편 선집에 수록되었던 작품뿐 아니라, 나귀님도 처음 보는 작품들이 여럿 들어 있으니 흥미로워 보인다.
그런데 새로 나온 번역서에서 개인적으로는 참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표지다! 앞표지에는 글자 장난질만 쳐 놓았고, 제목과 저/역자명 같은 필수 정보는 뒤표지에만 들어 있으니, 혹시 제작 과정에서 실수로 앞뒤가 바뀌기라도 한 것은 아닌가 궁금할 지경이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나귀님 혼자서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 내친 김에 셔우드 앤더슨의 장편 번역서 두 권을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 보았다. 양쪽 모두 분량이 많지 않다 보니 다른 작품과 함께 수록되는 바람에 골수 팬을 제외하면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법하다. 여하간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이외의 작품이 오랜만에 나왔으니 반갑기는 반가운데, 도대체 저놈의 표지는 왜...
(1) 가난한 백인 농부(Poor White, 1920):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외)>(셔우드 앤더슨 지음, 한명남 & 김병철 옮김, 주우세계문학 39, 주우, 1982) 수록.
(2) 어두운 청춘(Dark Laughter, 1925): <인간희극 / 어두운 청춘>(윌리엄 서로이언 & 셔우드 앤더슨 지음, 이호성 옮김, 세계문학전집 8, 을유문화사, 1964 초판; 1976 14쇄) 수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