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북펀드 광고에 '첫차를 타는 사람' 운운하는 것이 있어서 혹시 그건가 싶어 눌러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노회찬의 연설에 등장해서 유명해진 6411번 버스 이야기의 재탕이었다. 워낙 생전에 말 잘 하기로 소문난 정치인의 발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니 재탕삼탕은 불가피하겠거니 싶은 한편으로, 이제는 그것도 유효 기간이 지나지 않았나 의문도 든다.


물론 저 버스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노동 현실이며 인권 문제를 깡그리 외면하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저 연설을 내놓은 장본인의 솔직히 불미스러울 수밖에 없는 죽음으로부터 제법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인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담론에 머물러 있다는 것 자체가 자칭 '진보' 정치의 '퇴보'나 '제자리걸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은 지난번 심상정이 마지막으로 대권 도전을 선언하면서도 6411번 버스 이야기를 꺼낸 것을 지켜보면서 처음 떠올리게 되었다. 십중팔구 노회찬의 연설 자체의 위력과 감동과 유효성 때문이겠지만, 뒤집어 보면 그의 죽음으로부터 여러 해가 지나는 사이에도 이에 버금가는 새로운 연설이나 담론을 자칭 진보 정치에서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심지어 지금도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노회찬이라면 무슨 말을 했을까'를 떠올리는 지지자들이 많고, 이번 그림책 출간을 포함해 이른바 6411번 버스 연설에 대해서도 재탕삼탕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결국 저 말 잘 하던 정치인도 박정희와 노무현의 뒤를 따라 불미스러운 죽음에 이은 개인 우상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든다.


돌이켜 보면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민노당의 국회 입성은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허구한 날 파업 주도하는 모습으로 국민 대다수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던 노조 위원장이 하루아침에 국회의원이 되어 여의도에 나타난 것 자체가 파격이고 화제였으니까. 노회찬은 그렇게 새로운 바람을 약속한 정치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후 민노당의 분열과 소멸이며, 이후 자칭 진보 정치의 각종 논란과 이합집산은 기대만큼이나 큰 실망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노회찬의 불미스러운 죽음은 그 개인의 한계뿐만 아니라 한때 그가 대표했던 자칭 진보 정치의 한계까지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6411번 버스 타령도 거기서 끝났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민노당의 여러 담론 중에서 시대를 초월해서 유효성을 획득한 것이 있다면 노회찬의 6411번 버스 연설이 아니라 오히려 권영길의 '살림 좀 나아지셨습니까' 연설일 것이다. 실제로 국민의 살림살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팍팍해지며 악화일로를 걷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권영길이 지금 다시 저 연설을 들고 나온다 해서 승승장구하리라는 보장까지는 없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자칭 진보 정치의 지지자들도 이제는 노회찬을 6411번 버스에 실어 보내고 뭔가 새로운 담론을, 한때 저 연설을 듣고 감동한 사람들의 마음을 한 번 더 움직일 새로운 연설을 모색할 때가 아닐까. 6411번 버스를 그 전신인 태진운수 62-1번 버스며 원래 노선인 62번 시절부터 수십 년째 꾸준히 이용해 온 단골로서 여러 생각이 들어 해 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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