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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마르탱 게르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저서와 그 내용을 둘러싼 논란까지 살펴보고 나니 새삼스레 이 저자에게 관심이 생겼다. 내친 김에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라는 책에서 당당히 한 장을 차지한 그의 이력과 저술에 대한 개요까지 읽고 나니, 이미 오래 전에 사놓기만 하고 아직 한 번도 완독하지는 못한 저서들이 생각났다.
예를 들어 <주변부의 여성들>에서는 구입 당시의 관심사였던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에 대한 장만 쏙 빼서 읽었고, <책략가의 여행>과 <선물의 역사>는 우연히 중고가 있기에 사다 놓았지만 이후로는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절판된 모양인데, 저자가 2023년 말에 타계했으니 조만간 재간행될 법도 하건만 아직 소식이 없어 살짝 의아하기도 하다.
그중 가장 얇고 만만해 보인 것이 <선물의 역사>라서 선뜻 책장에서 꺼내 뒤적여 보았는데, 알고 보니 단순히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뭔가를 주고받는 전통의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화폐를 이용한 시장 경제 이전 시대의 선물 경제에 대한 연구라고 해서 살짝 당황했다. 결국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을 16세기 프랑스에서 찾아내는 셈이랄까.
모스와 데이비스는 각각 인류학과 역사학의 관점에서 선물 경제를 논의하는데, 희한하게도 나귀님은 마루 책더미에서 알레스터 크롤리 전기와 해커의 역사 사이에 애매하게 놓인 <증여론>을 오며가며 쳐다볼 때마다 어째서인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생각나서 한동안 외면하던 차였다. 막상 작년에 두툼한 마르셀 모스 전기까지 정가 인하로 사놓고서도 말이다!
모스와 데이비스의 선물 연구는 하나같이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에 대한 비판을 깔고 있다. 즉 화폐는 근대의 발명품에 불과하며, 인류는 훨씬 더 이전부터 거래를 해 왔다는 것이니, 마치 현재의 제도가 절대적인 것처럼 간주하지는 말자는 내용이다. 데이비스가 결론 부분에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언급하는 것도 아마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가뜩이나 짧은 역사와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이 모든 문제 제기에 대한 현실적 반박이 될 수도 있기는 하다. 게다가 이미 갈 데까지 간 정보화 사회에 와서 마치 <펠레의 새 옷>에 나타난 것처럼 이웃간의 정이 넘쳐나는 물물교환의 시대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도 솔직히 말이 안 되고.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북펀드에서 <증여론>의 새로운 번역이 나온다고 하기에 뭔가 새삼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확인해 보니 무려 '마르셀 모스 선집'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이미 두 권이 간행되었다니 <증여론>이 세 번째 권인 셈일까. 한길사 번역본과 달리 모스의 다른 글 몇 가지도 부록으로 추가되었다고 하니, 한 번 살펴보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이후로도 여러 권이 예정된 듯한데 과연 완간될지 궁금하다. 물론 '발렌타인데이의 수제 초콜릿이 화이트데이의 명품 백과 동등한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모스의 이론으로 입증되든가, 아니면 카리나가 팬들의 수많은 선물 공세에 지친 나머지 <증여론>을 뒤적였다고 고백하지 않는 한, 지금 와서 새삼스레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리는 없겠지만...
[*] 글을 다 쓰고 나서 검색해 보니, 나탈리 데이비스의 저서 제목처럼 아예 <선물론>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또 다른 번역서도 있었다. 서울대출판부에서 간행하는 '서울대 클래식' 가운데 하나로 나온 책인데, 어째서인지 알라딘에서는 마르셀 모스가 아니라 역자 오명석의 이름만 저자로 등록되어 있다. 물론 완역본이 아닌 편역서이기는 하지만, 판권에 저자명이 '마르셀 모스'로 나와 있으니 그대로 따라야 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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