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세우스 패러독스 안전가옥 오리지널 46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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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많은 윤리적 쟁점들을 끌고 오게 된다. 「테세우스 패러독스」는 이러한 인간의 고민들을 매우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었다.

 이 소설이 기저에 깔고 가는 가장 큰 질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역설 ‘테세우스의 배’이다. 과연 배의 모든 부분이 교체되었더라도 그 배는 여전히 바로 그 배인가?

 얼핏 들으면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이 역설은 소설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결합된다. 만약 우리의 몸이 점점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면, 혹은 사고로 인해 ‘원본’과의 연속성이 흐려진다면 우리는 여전히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작중에서 제시된, 인간이 인간임을 결정짓는 요소는 육체의 물질적 동일성과 기억과 의식의 연속성이다. 그러나책을 덮은 후에도 나는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것은 이 요소들 중 어디에 가장 큰 느낌표가 찍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내용이 흥미롭고 신선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필력과 스토리가 전개되어 가는 방식이 글을 읽어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계속해서 잡아당긴다. 실제로도 하루 만에 책을 독파해 버렸고, 안정될 만 하면 다시 전개가 휘몰아쳐 잠시도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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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쑤기미 - 멸종을 사고 팝니다
네드 보먼 지음, 최세진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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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파괴를 멈추지 않잖아요. 우리에게는 가망이 없어요. 동물들이 한 번은 이겨야 해요.”


 돈만 내면 한 종의 생명체를 멸종시킬 수 있는 세상. 멸종 크레딧이라는 소재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탄소배출거래제도였다. 크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던 정책이다.

 그리고 작가 역시 이를 풍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매년 일정한 수의 멸종 크레딧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추가적인 바우처를 경매에 부치면서 천천히 공급을 줄여나가면 후에 가격이 치솟을 테니 사람들이 생명체를 멸종시키는 대신 생명체를 보존해 나갈 창의적인 방법을 스스로 간구할 것이라는 이상적인 추론에 기반한 제도. 하지만 멸종 크레딧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낮게 형성되었다. 가히 ‘민주적’일 정도로.


 결론적으로 멸종위원회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단지 이뿐 아니라 이 책은 현대 사회의 환경적인 문제들과 정책적 구멍들, 사람들의 인식 등을 유쾌하지만 날카롭고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멸종이라는 여러 미디어에서 무겁게 다루어졌던 소재를 딱딱하고 흔한 담론이 아니라 풍자와 영국식 블랙코미디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독자에게 웃음을 주면서도 책장을 넘기면서 고민을 한 층씩 쌓아가게 한다.


 특히 두 주인공이 ‘독쑤기미’라는 메인 소재에 집착하는 이유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 역시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게 느껴졌던 포인트다. 본인이 저지른 비리를 덮기 위해 본인이 실수로 멸종시킨 독쑤기미를 찾으려 필사적인 핼야드와 ‘동물이 한 번은 이겨야 하기 때문에’ 지능이 높고 복수심이 강한 독쑤기미를 찾아다니는 카린. 개인적으로는 카린이 독쑤기미를 찾아다녔던 이유가 매우 충격적이었다.


 해외 문학의 번역본을 읽을 때마다 글이 쉽게 읽히지 않아 고생했는데, 소재가 가볍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아주 편안하게 눈에 들어온다. 관련 이슈에 관심이 크지 않더라도 책을 덮은 뒤에는 한번쯤 생각에 잠기게 된다. 결코 무겁게 설교하지 않는데도, 독자가 스스로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었다.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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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 편
김이경 지음 / 샘터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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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다 기억할 것이다. 엄마의 응원을, 엄마의 사랑을. 엄마가 내 엄마였다는 걸.”


이 책을 보고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엄마 이야기로도 책을 쓸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럼 난 정말 할 얘기가 많은데.

나는 에세이를 읽지 않는다. 정확히는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양산형 에세이”의 감성이 싫다. 나의 불행이나 나의 성공을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글로 표현되는 외양에서는 이거 별 거 아니라는 식의 그 계산적인 무심함. 그런데 결국은 까보면 다 자기 자랑 아니면 자기연민이다.

이렇게 에세이를 싫어하는데도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엄마 이야기라서.

나는 엄마라는 단어를 애증으로 치환할 수 있다. 물론 사랑이 훨씬 크긴 한데 가끔 차오르는 증오가 그 사랑을 잡아먹을 만큼 커서 그럴까? 우리 집은, 콩가루는 절대로 아니지만, 나 역시 좋은 딸은 아니었고 우리 엄마도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고개를 비집고 올라오는 ‘충분히 좋은 딸이셨던 것 같은데요?’ 하는 마음의 소리를 누르느라 고생을 좀 했다.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아서 부러웠다. 그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걸까? 엄마 얘기 하는 사람들 보면 크고 굵직한 이야기부터 어떻게 기억하나 싶은 사소한 것까지 다 꺼내놓곤 해서 매번 신기했다. 나 역시 남에게 우리 엄마 얘기를 해야 한다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와 나의 관계는 다소 불공평하다고 느껴진다. 큰 이변이 있지 않다면 우리 엄마가 나를 먼저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항상 을일 수밖에 없다. 남아서 실수와 잘못을 곱씹는 건 다 내가 될 테니까. 남아서 기억하는 것도 나뿐일 것이다. 우리 엄마는 나를 “딸!”이라고 자주 불렀고 어쩐지 나는 내 이름보다 그 호칭이 더 좋았다는 것 같은 이런 시시콜콜한 것들도.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헌신적인 사랑은 흔히 조명되지만 그 반대는 같은 크기임에도 흔치 않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시종일관 딸의 입장이었다. 부모만큼이나 자식도 열렬하게 부모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디 가서 외치고 싶어졌을 정도로.



(샘터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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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아
김필산 지음 / 허블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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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믿고 내리는 결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래는 하나의 강물로 흘러가더군, 인간은 선택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지.”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는 매우 거대한 스케일의 SF 소설. 일단 역사, 특히 세계사에는 문외한인 내게 거란과 몽골의 역사를 소재로 한 1장은 SF를 넘어 거의 판타지 수준이었다. 내화를 이끌어나가는 액자 밖 주인공인 선지자의 삶이 인과관계가 뒤집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렇게 작가가 설정한 책 속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난 후부터는 역사는 양념일 뿐이고 시간을 소재로 한 대서사시적 미래가 펼쳐진다. 책의 맨 앞에 있는 연표를 참조하며 책을 읽으면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독자를 포함해서 모든 인물들이 앞을 향해 걷는데 혼자서 뒤로 걷는 선지자를 보게 되는 것이 포인트였다. 시간과 기억이 거꾸로 작용하는 사람. 그는 미래가 정해져 있으니 바꾸려고 노력해 봐야 다 소용없다는, 운명론적 사고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라면 화가 날 법도 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의 흐름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SF를 읽으면서 가끔 느꼈듯이 다소 숨이 막히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덮고 생각해 봤다. 미래에서 과거를 살아가는 선지자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과거에서 미래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시간의 궤적 한가운데에서 그 둘이 만난다면, 당연히 선지자는 인간에게 미래는 정해져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본인이 겪은 것이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선지자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다. 선지자가 말하는 정해진 미래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이 책에서 시간의 흐름이란 상대적인 것이듯이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 또한 상대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1, 2, 3장은 액자식 구성의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이다. 특히 2장은 세 이야기 중에서도 유독 유기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이야기의 흐름을 깰 만큼은 아니었다. 내가 난생처음 읽어보는 형식의 SF라 처음에는 글이 읽기 조금 어렵다고 느끼기도 했으나 나중에 생각날 때 다시 꺼내어 읽어 보면 더 많은 것이 이해될 것 같아 기대가 되는 책이었다.




(허블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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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무지개 -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김용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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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도대체 뭐길래, 한없이 놓고 싶다가도 어느 순간 힘껏 붙잡고 싶게 만드는 걸까.”


깔끔하게 죽여주겠다는, 죽음을 도와주겠다는 제안. 뭔가 오징어게임의 포맷이 떠오르는 소재였다. 다만 여기서는 사람을 살인게임에 집어넣는 대신 100일이라는 유예기간을 준다는 사실이 다르지만.

하지만 살고 싶어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지 누구든 기회만 주어지면 살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읽기 전부터 너무 걱정했다. 빚도 다 갚아 주고 매월 꼬박꼬박 돈도 준다면, 숨 쉴 틈이 생긴다면 100일이 지난 후 분명히 살고 싶어질 텐데 어떡하지 하면서. 결말이 어떻게 날지 전혀 예상이 안 돼서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과잉 무지개>는 냅다 '살아라 삶은 너무 아름답고 너는 소중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의지를 갖게 한다는 점이 좋았다.

이야기 속에서 죽음을 도와준다고 했던 말과는 달리 저들은 최선을 다해서 준재를 살려 두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장기를 기증해야 하니 건강을 챙기라는 그런 평면적인 이유와는 좀 달랐다. 봉사활동을 보내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게 한다. 준재는 삶을 마무리한다는 의미에서 그 활동들에 최선을 다했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저들이 계속 준재에게 '이래도 살기가 싫냐'고 묻는 듯했다.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는 '삶은 중독'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본능적으로 갈망하게 되는, 중독과도 같은 삶을 포기한다는 건 정말로 살기 싫어서라기보다는 그것을 욕심내고 바랄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말 그대로 재준은 '인생역전'을 한 셈이다. 이들은 빚도 다 갚아 줬고 다달이 돈도 줬다. 만약 이 모든 경험을 하고 재준의 삶이 변함없이 그대로였다면 어땠을까. 과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래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보다, 죽고 싶었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우리는 아무리 삶을 놓고 싶더라도, 누군가 와서 우리가 가진 빚을 모두 갚아 주고 월 500씩 통장에 넣어주며 네 죽음을 도와주겠다는 제안까지 받을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고 싶지 않던 경험을 가진, 그 질척한 밑바닥에서 기어나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읽어보면 분명 느끼는 바가 클 것이다.






(자음과모음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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