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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아
김필산 지음 / 허블 / 2025년 7월
평점 :

“보통의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믿고 내리는 결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래는 하나의 강물로 흘러가더군, 인간은 선택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지.”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는 매우 거대한 스케일의 SF 소설. 일단 역사, 특히 세계사에는 문외한인 내게 거란과 몽골의 역사를 소재로 한 1장은 SF를 넘어 거의 판타지 수준이었다. 내화를 이끌어나가는 액자 밖 주인공인 선지자의 삶이 인과관계가 뒤집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렇게 작가가 설정한 책 속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난 후부터는 역사는 양념일 뿐이고 시간을 소재로 한 대서사시적 미래가 펼쳐진다. 책의 맨 앞에 있는 연표를 참조하며 책을 읽으면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독자를 포함해서 모든 인물들이 앞을 향해 걷는데 혼자서 뒤로 걷는 선지자를 보게 되는 것이 포인트였다. 시간과 기억이 거꾸로 작용하는 사람. 그는 미래가 정해져 있으니 바꾸려고 노력해 봐야 다 소용없다는, 운명론적 사고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라면 화가 날 법도 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의 흐름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SF를 읽으면서 가끔 느꼈듯이 다소 숨이 막히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덮고 생각해 봤다. 미래에서 과거를 살아가는 선지자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과거에서 미래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시간의 궤적 한가운데에서 그 둘이 만난다면, 당연히 선지자는 인간에게 미래는 정해져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본인이 겪은 것이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선지자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다. 선지자가 말하는 정해진 미래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이 책에서 시간의 흐름이란 상대적인 것이듯이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 또한 상대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1, 2, 3장은 액자식 구성의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이다. 특히 2장은 세 이야기 중에서도 유독 유기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이야기의 흐름을 깰 만큼은 아니었다. 내가 난생처음 읽어보는 형식의 SF라 처음에는 글이 읽기 조금 어렵다고 느끼기도 했으나 나중에 생각날 때 다시 꺼내어 읽어 보면 더 많은 것이 이해될 것 같아 기대가 되는 책이었다.
(허블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