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사유>라는 제목을 보았을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술을 마시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기분이 좋아서 혹은 기분이 나빠서 아니면 친목 도모를 위한 자리에 마치 정해진 규칙처럼 술이 따라오는 경우 등등 술을 마시게 되는 이유는 말할 수 없이 많은 것 같다. 술을 좋아하시고 평상시에 집에서도 간단하게 자주 술을 즐기시는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터라, 나 또한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는 편이다. 결혼하여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집에서 혹은 가까운 음식점에서 부모님과 잦은 술자리를 갖곤 했다. 술을 마시고 나면, 평소에 가족에게 하지 못했던 닭살스러운 말들을 서슴없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술기운을 빌어 표현하기도 했었다. 또 기분이 무척 나쁠때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고민을 잊게 해주는 술이 고맙기까지 하다.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난 이러한 음주사유에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와는 다르게 뭔가 또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책에는 술과 함께 했던 즐거운 자리에서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가득 담겨져 있다. 제목처럼 '술을 마시는 이유'를 말한다기 보다는 사람사는 이야기속에서 어쩌다가 빠지지 않고 계속 등장하는 술, 그냥 우리 일상의 배경정도로 인식되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의 대부분이 '술'이야기라는 인상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속에서 어쩌다가 주변환경에서 빠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술, 그 정도의 느낌 즉,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이야기 속에 '술'이라는 장식이 더해져서 좀 더 특별해보이는 정도라고나 할까. 내가 가족에게 내 감정의 표현을 '술'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처럼,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술'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술'은 술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기도하고, 간간히 등장하는 일러스트의 주인공 처럼 술이라면 그저 만사 제쳐두고 환영하는, 978일이 소요될 프로젝트가 3일만에 완성될 수도 있는 그런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책에서는 술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주제별로 정리가 되어있는데, 간간히 등장하는 만화가 재미를 더해준다. 이 책을 쓴 작가는 정말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중간중간 삽입된 문구들이 어느 다른 책에서의 인용구문인것을 보았을 때, 나는 '이런 책에서 런 문구가 나왔다'라고 그 책을 이해하기에 앞서서 이 사람이 정말 많은 책을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작가의 책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간혹 집중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공감할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 많았다.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을 몇 가지 꼽아보자면, 비행기 조종사인줄 알았던 중년 남자에게 속아 양주값을 고스란히 지불해야했었던 이야기, J이사님의 딸이 먹었다는 오디 이야기에서는 정말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다. 또 작가가 유독 사무치는 문구 '후배 어리다고 욕하지 마라, 네가 걸어온 길이다. 선배 늙었다고 비웃지 마라, 네가 걸어갈 길이다'라는 글을 보았을때는 내가 후배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나 또한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인상적인 문구였다. 이렇게 <음주 사유>는 어느 덧 나의 일상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내가 알지 못했던 남편의 술자리, 아빠의 술자리, 다른 누군가의 술자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최근들어 술자리가 잦아진 남편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난 술을 정말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술자리가 늘고 자주 귀가가 늦어지는 남편을 원망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 마음이 달라졌다. "술을 마시지 말고 일찍 들어와"라는 말 대신 "이왕 마시고 즐길거면 싫어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술에 얽매이지 말고 그냥 그 자리를 즐겼으면하는 마음이 커졌다. '술때문에, 술을 마셔서'가 아니라 '술'은 그냥 누군가를 만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중한 일상의 소홀한 들러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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