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죽음 - 생의 끝에서도 삶의 품격을 잃지 않는 지혜
능인 지음 / 불광출판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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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죽음 연습생'이 아닐까?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간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밤이 되면 

그 하루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며 오늘의 나도 내일이면 지나간 사람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얻고 잃으며 만나고 헤어진다. 

그 안에서 삶은 끊임없이 시작되고 끝난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조금씩 죽음을 연습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상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드물다. 

아직 멀었다며 외면하거나 두렵고 불길한 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오늘의 삶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아닐까? 

능인 스님이 말하는 '단정한 죽음'도 이런 맥락으로 다가왔다. 

단정한 죽음은 고통 없이 평온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도,

마지막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두려우면 두려운 마음을 인정하고 아프면 아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태도도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내게 주어진 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며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는 것.

두렵고 슬픈 날에도 다시 삶을 살아내는 것.

 

단정한 죽음은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조금씩 준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삶의 매무새를 가다듬는 일이 곧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며

죽음 연습생의 투두(to do)일 것이다.

 『단정한 죽음』은 내게 죽음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 책이었다.

겨울을 준비하는 모든 죽음 연습생에게 능인스님의 『단정한 죽음』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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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이해되는 법화경 - 단숨에 읽히고 즐겁게 깨치는 원영 스님의 법화경 ㅣ 이제서야 이해되는
원영 지음 / 불광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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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의 본래 이름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다.

‘묘법’은 오묘한 진리와 가르침을, ‘연화’는 연꽃을 뜻한다.
풀어보면 ‘연꽃처럼 오묘한 진리를 담은 경전’이다.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경전 가운데 하나로,
수많은 이야기와 비유를 통해 모든 중생에게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누구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일불승의 가르침을 전한다.

나에게도 우리말로 풀이된 『법화경』이 한 권 있다.
몇 번이나 펼쳐보았지만 솔직히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불경 특유의 어휘와 반복되는 문장, 낯선 인물과 상징, 방대한 비유를 따라가다 보면
분명 읽고 있는데도 뜻은 저만치 앞서가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그런 차에 원영 스님의 『이제서야 이해되는 법화경』을 만났다.
제목부터 내 사정을 알고 지은 것처럼 반가웠다.

원영 스님의 ‘이제서야’ 시리즈는
오래되고 어려운 불교의 가르침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다.
『이제서야 이해되는 법화경』에서도 스님은
『법화경』 28품의 이야기와 비유를 차근차근 짚으며
경전의 언어와 지금 우리의 삶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경전의 문장을 단순히 쉽게 옮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어려운 개념을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고민과 연결하고
“그래서 이 가르침을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계속 묻는다.

덕분에 『법화경』은 ‘이해해야 할 오래된 경전’에서
조금씩 ‘내 삶에 대입해 볼 수 있는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뭐랄까....불교를 공부하는 책을 읽었는데 어느 순간 내 삶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 과정에서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말은 ‘방하착(放下着)’이었다.

방하착은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법화경』이 전하는 가장 크고도 따뜻한 가르침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표현처럼 “너도 부처가 될 수 있어. 아니, 너는 이미 부처야.”라는 초대장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마냥 낭만적으로 읽을 수만은 없었다.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는 것과 누구나 깨닫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원영스님의 책을 읽으며 깨달음의 첫걸음은 무언가를 더 갖추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과 집착, 아집, 옳고 그름에 대한 완고한 분별까지.
그렇게 꽉 쥔 손으로는 아무리 귀한 가르침이 와도 받아들일 자리가 없다.
그래서 「방편품」의 한 장면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사리불이 부처님의 깊은 가르침을 세 번이나 청하지만, 부님은 믿지 못할 거라며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 때 오천 명의 제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떠난다.
부처님은 그들을 붙잡지 않으신다. 오히려 잘 갔다고 하신다.
처음에는 조금 매정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그 뜻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가르침은 똑똑하다고 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마음에는 닿지 않는다.
책에서 말하듯 “분별심을 내려놓고 진리에 대한 순수한 간절함”이 있어야 비로소 체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비인부전(非人不傳),
준비된 자가 아니면 가침을 전하지 않는다는 옛말처럼 말이다.

결국 배움에도 마음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내가 알고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내가 옳다는 확신을 조금 내려놓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이 흘러가야 한다는 고집도 내려놓아야 한다.
즉, 방하착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움켜쥔 손을 펴는 것에 시작된다.

이 ‘방하착, 내려놓음’은 『법화경』 전체를 관통하는 가르침과도 묘하게 이어진다.
성문, 연각, 보살의 삼승이 실제로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하는 길이 아니라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임시로 설한 방편이며 결국 하나의 불승으로 향한다는 가르침도 그렇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의 길만이 옳다고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출발점도 다르고 걷는 길도 다르다.
누가 먼저 깨닫고 누가 나중에 깨닫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책에서 말하듯 “중생의 숫자와는 상관없고, 누가 먼저 깨닫든지 나중에 깨닫든지 관계없다.”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불연(佛緣)의 공덕이 있고 결국 누구나 부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얼마나 너른 사상인가!
그래서 『법화경』이 말하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더 깊게 다가왔다.
어떤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만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움켜쥐고 있는 것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
욕망도, 집착도, 아집도, 내가 옳다는 확신도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왜 불교를 좋아하는지도 다시 알게 되었다.
나에게 불교는 신에게 잘 보여 복을 받고 벌을 피하기 위한 종교가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역시 나에게 벌을 내리거나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 아니라 위대한 스승님이다.
그래서 나는 부처님을 우러러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분이 남긴 발자국 위에 감히 내 발을 한번 맞춰보고 싶다.
그 발자국을 완벽하게 따라 걷지는 못하더라도
오늘 하나의 집착을 알아차려, 분별 하나를 내려놓고,
어제보다 조금 덜 흔들리며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이 나의 수행이다.
그래서 내게 불교는 의례를 위한 종교라기보다 삶을 비추는 등불이자, 이정표이다.
때문에 불경은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지를 묻고,
깨달음은 먼 곳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삶과 마음속에서 시작된다고 알려주는
최애쌤의 어록이다.

삶은 여전히 욕망과 집착으로 시끄럽다.
나 역시 흔들리고, 잘 헤매지만
내 앞에는 큰 스승님, 최애쌤의 가지런한 발자국이 놓여 있다.

최애 계절 가을에 최애 쌤 부처님의 연꽃같은 가르침을 읽고 또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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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이해되는 법화경 - 단숨에 읽히고 즐겁게 깨치는 원영 스님의 법화경 ㅣ 이제서야 이해되는
원영 지음 / 불광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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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경전은 어렵다는 생각에 『법화경』 앞에서 몇 번이고 물러섰던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다시 시작해도 좋겠다. 경전을 이해하게 해주는 책이면서 어느새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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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들었다.

인생은 쓰다고... '쐬주'처럼....

그런데,

다들 인생이 쓰다고 하는데 그는 왜 인생의 단맛을 보여주겠다고 했을까.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급기야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라고 말하던 나의 최애 작가, '김영민' 님이 대체 어떤 인생의 단맛을 보여주겠다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생각했던 단맛은 없었다.

책에는 여전히 삶의 허무와 고독,

인간이라는 존재의 우스꽝스러움과

희망과 절망을 한 몸에 품은 채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가진 빛바랜 인류애와 정과,

삶의 허무를 알면서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상의 모습,

그 사이의 부조리가 내는 소리들,

바로 거기에서 김영민 작가표 유머가 나온다.

나는 오래전부터 김영민 작가의 이런 뉘앙스, 분위기, 글을 좋아했다.

그의 에세이를 읽을 때면 우리 동네에 사는 똑똑하고 친절한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다.

아는 것은 무척 많은데 가르치려 들지 않고

세상의 우스운 구석을 기막히게 찾아내 한마디씩 툭 던지는 사람,

그러다가 뜻밖의 순간에 적확하고 쓸쓸한 이야기를 해서

집에 돌아온 뒤에도 그 말을 곱씹게 만드는 철학자 아저씨말이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는 그 아저씨의 집에 방문한 기분이었다.

그의 삶이 묻은 거실과 책상, 책장을 들여다보고,

냉장고를 열어 보고, 급기야 화장실까지 들어가 본 것 같은 느낌.

그만큼 김영민 작가의 색깔, 농도가 훨씬 짙은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이 책은 소설집이면서도 아주 긴 시처럼 남았다.

그리고 마침내 책장을 여러 장 넘기고 나서야 알 것 같았다.

작가가 말하는 단맛은 허무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인생의 단맛은 허무와 외로움이 사라져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나란히 살아가는 동안 문득 알아차리는 맛인지도 모른다.

​

삶의 씁쓸함을 모르는 사람에게 단맛은 없다.

밝음만 있는 세상에는 밝음의 개념이 없듯이 말이다.

김영민 작가가 보여준 인생의 단맛은 아마도 그런 맛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럼에도' 살아가고 살아내는 삶,

씁쓸하여 달달한, 그런 맛.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을 솔직하게 담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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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단맛을 보여주마
김영민 지음 / 김영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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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여 달달한 삶을 위트 있게 이야기하는 책. 책을 얇지만 고농축이다. 술술 빨리 읽고 오래 곱씹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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