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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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원.
나는 창경원에 가보았다.
4살 정도 됐었던 것 같다.
김밥을 먹고 코끼리도 보았던 것 같다.
좀 더 자라서는 엄마가
‘일본이 쳐들어 왔을 때 우리나라를 조롱하려고 왕비님 침소에
일부러 코끼리를 사육하고 그랬잖아.
너 창경원 가봤지?
이제 세상이 좋아져서 거기 없어진대.
그래서 창경원이라고 하면 안 돼. .
이제 창경궁이라고 해야 돼.’
라며 가르쳐 주던 장면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어린 나이였지만
일제의 만행에 가슴 아프고 속상했던 것까지도.
김금희 작가의 새 책,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그 가슴 아픈 ‘창경원’ 이야기이다.
창경궁 대온실 보수 공사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된 30대 여성을 화자로 하는 이 소설은
창경궁의 숨겨진 이야기와
화자의 풀지 못한 이야기를 엮고 풀며
전개된다.
나는 이 과정을 치유의 ‘살풀이’처럼 느꼈다.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고 있을
자신만의 위태롭고도 연약한 대온실을
수리받는 기분이랄까?
숨어야 했고,
숨겨야 했던 이야기들이 우연처럼
어떤 교차점에서 만나 서로를 맺고,
맺음으로써 격정에 이르렀다가
마침내는 풀어 내며 ‘천 개의 여름’이 되어
그 나름의 찬란한 시간을 기억한다는
메타포를 읽었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에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곳에는 백 개의 우주가 존재한다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나는 비극적인 역사의 창경궁을 배경으로 한
두 여인의 진득한 살풀이를 따라가며
거기에 덧붙여 이런 생각을 했다.
그 우주들은
외따로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아주 작은 마주침의 순간,
또는 편린 같은 대화의 교차점에서
또 다른 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교차되는 지점에서
서로를 통해 극복과 치유를 경험하고
전과는 다른 우주로
살아 내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라고..

소설 속 화자, ‘영두’의 살풀이를 따라가며
내 우주도
애처로운 살풀이 한 판을 벌인듯하다.
내게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새벽처럼 고독하지만,
새벽이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나만의 교차점으로 기억될 것 같다.
.
*창비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읽고
서평을 작성하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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