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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느질 수다 ㅣ 에디션L 1
천승희 지음 / 궁리 / 2020년 11월
평점 :
궁리 출판사의 에디션L 시리즈의 첫 책인 '나의 바느질 수다'를 읽으면서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1997년 영화, '아메리칸 퀼트'를 생각했다.
퀼트 주변으로 이야기가 모이고 퀼트를 통해 다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로, 각기 다른 개성과 상황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과 사랑을 마치 천조각처럼 이어지는 스토리였다. (*퀼트: 여러 개의 천 조각을 꿰어 하나로 만드는 바느질)
197페이지로 분량 자체도 적은 편이지만, 워낙 필체가 따뜻하고 글이 잘 정돈되어 있어 정말 쉽게 술술 읽힌다.
크게 시침질, 홈질, 박음질, 감침질 이렇게 4파트로 나뉘어져 있고 각 파트 끝에는 '같이 만들어봐요' 라는 코너를 마련해 작가의 바느질 휴양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었다.
아쉽지만 이 책에서 바느질 스킬이나 옷 만드는 패턴등을 기대했다면 그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미리 말해주고 싶다.
대신 작가가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에 필요한 한 땀, 한 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칭 바느질'꾼'이며 출판 편집자로 바느질을 삶의 '구심점'이라고 말하는 '쉴 줄 아는' 언니다.
쉼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멍때리는 것이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쉼을 통해 우리가 닿아야 할 곳은 비움의 경지다.
다른 것을 다시 담을 수 있도록 가득찬 마음과 머리를 비우는 것,
몰입하여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하는 것,
그것이 love my life 하기 위한 방법인 취미, 또는 삶의 든든한 지지대가 아닐까?
작가는 슬프고 답답하고 두려운 순간에 바느질을 한다. 작가에게 바느질은 힐링 스팟인 것이다.
나는 작가가 바느질이라는 지지대에 기대어 비우고 다시 채워가는 이야기를 통해 큰언니의 다독거림을 느꼈다.
엄마의 걱정처럼 사무치지는 않게, 하지만 친구의 위로보다 깊이 있는, 가만히 바라봐 주는 큰언니의 담담한 위로 말이다.
'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는 손으로 바느질하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큼직하고 시원스레 계획을 세우기 보다 하루하루 한 땀 한 땀 채워가는 것에 더 열중하지요.
모든 일들을 좀 느리더라도 정성스럽게 해내며 살고 싶습니다.' -본문 중에서
더불어 기후 위기에 따른 제로웨이스트와 재활용이 중요한 요즘, 바느질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대부분이 기워 입고, 다시 입고,고쳐 입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인스턴트처럼 새로 사 입기만 했다는 것과
환경과 동물 보호를 생각해서 가죽 제품을 안들고 다니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대신 쓰지도 않는 캔버스 가방을 수십개나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재사용, 재활용의 절대적이고 완벽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방법도 있구나.'라는 생각의 새 길을 열어 준 것이 매우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