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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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p. 98-

당황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이 소설은 가상의 공간 태고에 살며
그곳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 유령, 무생물들의 이야기다.
방앗간을 운영하는
미하우의 아내 게노베파와 그녀의 딸 미시아,
미시아의 딸 아델카를 중심으로
태고를 관통하여 흐르는 시간들을
영화처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크게 감동하고 빠져들었던 부분은
개성 있고 흡입력 있는 스토리 아래로 묵묵히 흐르는
저자의 삶에 대한 철학이다.

방앗간 부근에서 하나로 섞인 강은
이제 백강도 흑강도 아니다.
또다른 강력한 강으로 재탄생하여
빵을 만들기 위해 곡물을 빻는 물레방아를 거뜬히 돌린다.
방앗간 기슭에서
흑강과 백강이 합쳐진 세번째 강은 ‘강’이라 불린다.
-p. 7-

소설이 시작되는 곳에서 만난 이 문장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태고에는 선악, 남녀, 혹은 옳고 그름의 메타포인
흑강과 백강이 있다.
그리고
그 강이 합쳐져 흐르는 3번째 강은
이름도 없이
본질에 충실하게 그저 흐르며 ‘방앗간‘을 돌린다.
나는 이 문장에서 세상의 그 어떤 고귀한 개념도,
신이 정한 질서도,
사람이 먹고 사는 일보다 중요할 수 없고,
결국은
사람이 먹고 사는 일에 소요된다는 귀한 통찰을 얻었다.

이 외에도 소설에는 신과 인간,
삶과 죽음등에 대한 수많은 메타포가 숨어 있다.
등장 인물 중 한 명인 ‘상속자 포피엘스키’는
어느 날 랍비로부터 게임판을 받게 된다.
함께 받은 게임설명서는 난해하고 심오했다.
하지만 포피엘스키는
재산과 건강을 다 잃을 정도로 게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 게임은 탈출을 위한 지도이다.
게임의 목적은
모든 영역을 통과하여
여덟개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p. 112-

인간세상의 축소판 같은 게임판을 받고
게임에 심취하게 되는 포피엘스키는 왜 ‘상속자‘일까.
무엇을 누구로부터 상속 받는다는 것일까.
그는, 신은 왜 게임을 통해 ‘탈출’하려고 하는 것일까.
내가 이해하기로는 저자의 대답이 책 끝부분에 있다.
직접 읽고 감동받는 즐거움을 방해할 수 없으니
이 부분은 여기까지만 언급하겠다.

내가 반한 또다른 등장인물은 ‘크워스카‘다.
크워스카는
동양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여신을 몸주로 삼은 영매다.

이제 세상은
서로 나란히 존재하는 물체와 사물,
현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크워스카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하나의 덩어리였다.
-p. 25-

남성이 정해 놓은 규칙 안에서의
순종적인 ‘여성상’을 저멀리 벗어던진 그녀,
속박하고 줄세우는 남성적 질서 앞에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
크워스카의 자유분방한 행동과 생각에서
반듯하거나 계획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분출하는 생명의 힘,
키워내고 번성시키는 여신의 힘,
비온 뒤 걷잡을 수 없이 자라는 덩굴식물의 생명력을 느꼈다.
그리고 이 덩굴식물같은 생명력과 상속자의 게임판은
저자의 삶에 대한 태도,
신을 바라보는 관점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태고의 시간들을 통해
절대적인 선악의 구분,
일직선으로 흐르는 시간의 질서,
단 하나의 신,
단 하나의 진리는 없다고 말한다.
(만약 그것이 있다면
시공간을 사는 사람의 입과 말이 만들어 낸 것이리라.)
내가 느낀 것은
삶과 신에 대해
심각하고 무거워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시간과 삶은 3번째 ‘강’처럼
‘합쳐져‘ 고요하고 충만하게 흐르고 흘러
‘방앗간’을 돌리니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뿐이니까.
-2019, 10월 글월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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