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꽃 정원
문경복 지음 / 사과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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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꽃이 뭐지?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읽다보니 묘했다.
프롬토니오(정용준)+삼국지(나관중)+어린왕자(생텍쥐페리) = 무위꽃 정원??

풀어 말하자면 삼국지의 환경적 배경에
프롬토니오의 섬세함을 실어
어린왕자의 동심으로 완성했다고나 할까?
이런 묘한 작품을 써낸 작가는
아마도 딱 이런 사람일 것 같다.

성인들이 했던 말만 외워서 뭐 한답니까?
그들처럼 생각하지도 않을 거면서. - p62 -

답습하고 구전하는 지식보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지식에 목마른 사람.
그런 그가
소설 여기저기 슬쩍 묻어 둔 은유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강렬한 문장이 있다.

나는 이름이 없소. - p34 -

‘이름‘은 이것과 저것을 분별하는 첫단계다.
켄 윌버는 그의 저서 ‘무경계’에서 경계지음,
분별을 이렇게 설명했다.

*창세기에 따르면 아담에게 부여된 첫 번째 과제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식물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다양한 동물 집단 사이에 마음속에서
서로 경계긋는 일을 배워야만 했다.
*다시말해 아담이 최초로 착수한 위대한 과업은
정신적 또는 상징적인 구분선을 설정한 것이었다.
-켄 윌버. 무경계. p48~49-

아담이 동식물에 이름을 붙이며 정신적 구분선을 설정한 것,
이것이 분별함으로써 얻게 되는 에고,
생각하는 지성, 이성의 시작아닐까?
(비록 어머니의 품과 같은 무분별,
무경계의 천국에서 쫓겨나지만 말이다.)
신생아들은 태어나서 얼마간
세상과 자신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른바 무경계의 세상에서
아직 쫓겨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이윽고 이름을 알아듣고
그것이 자신임을 알게 되면서 나와 엄마,
나와 세상으로 인식의 그물을 짜기 시작한다.
그렇게 짜인
분별하고 계산하는 이성은
인간에게 많은 혜택과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아담이 선과 악이라는 대극의 차이점을 알아차리게 되자
즉 하나의 결정적인 경계를 설정하자
그의 세계는 산산조각 났다.
아담이 죄를 짓는 순간,
그가 창조하려고 애썼던
대국의 세계 전체가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켄 윌버. 무경계. p51-

켄 윌버에 따르면 인간은
선과 악이라는 경계에 이르러 고통을 알게 되었고
심리적 분열, 즉 죄를 알게 되었다.
앎의 시작, 앎으로의 욕망,
이른바 지옥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라시대 박제상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 한민족 상고사,
‘부도지‘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먼 옛날, 마고 여신의 천국 마고성에는
우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순수한 사람들이 살았다.
그들은 입으로 음식을 취하지 않고
땅에서 솟아나는 지유를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소씨가 입으로 포도의 맛을 보게 된다.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낀 그는
다른 사람에게 포도 먹기를 권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들은 맛, 즉 오미를 알게 되었다.
감각에 눈을 뜬 사람들은
그것을 욕망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모습이 짐승같이 변하고 성격도 포악해 졌다.
화가 난 마고 여신은 큰 홍수를 일으켜
마고성을 청소하고 사람들을 내쫓았다.
이것이 바로 오미의 난으로 인한 실락원이다.
쫓겨난 사람들은
다시 원래의 순수함을 되찾아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해혹복본)
마고성을 떠나 기나긴 여행을 시작한다.
(부도지에서는 그들 중 황궁씨가
한민족의 시조인 환인, 환웅, 단군의 조상이다.)
이 이야기에서 ‘오미‘는 분별의 시작이자 욕망의 대상이다.

작가 문경복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도모‘,
즉 ‘욕망‘이자 ‘존엄성’일 것이다.
그의 소설에서 인간은
더 귀해지고자 없는 것에 경계 그어 개념을 만들어 내고
스스로 높아지고자 상대를 자신의 아래에 두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바로 ‘이름’인 것이다.

‘나는 이름이 없소.’

그래서 일까.
소설 ‘무위꽃 정원‘의 중심 캐릭터인
검은 소는 이름없음, 즉 무명을 ‘선언‘한다.
그저 존재임을,
‘분별하지 않는 본래의 마음‘을 지녔음을
단 한 마디로 소개한 것이다.
나는 검은 소의 무명,
이름 없음이 노자 사상의 진수인
무위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 외에도 여기저기 보물 찾기 처럼 숨겨진
은유와 비유가 가득해서
아는 만큼 재미있는 소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만월선생이라는 캐릭터에 정이 갔다.
미래를 내다보는 대표 지성이지만
그녀 역시 달이 차듯 점점 ‘성장’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내다보는 초월적 캐릭터가 아니라
슬픔에 울고 분노에 사무치는 인간적인 캐릭터라서
만월선생을 만나는 페이지에서는 항상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이윽고 달이 기울듯 그렇게 기울어 갔다.
이 역시 무위가 아니던가!!

비록 뜨는 별이 부족해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지만
먼저 진 별이 그랬듯이 아무말 없이 떳떳하게 무너지는 거래. - p93 -

이름, 흑백, 도모, 꽃, 만월, 죽.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6개의 단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지 알게 된다.

도모로 인해 꽃과 만월에 이름과 흑백이 생기지만
죽처럼 살다보면 다시 꽃과 만월을 이루리라는….
나만의 공식을 만들어 본다.

모든 생명의
존엄과 존재의 귀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 감격에
간만에 시 한 수 적어 보았다.

별이 뜨고 지는데
무슨 이유가 있으랴.
아쉽고 아픈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든 일인 것을...
달이 차고 기우는데
무슨 까닭이 있으랴.
그립고 애달픈 것은
두고 온 마음 때문인 것을..
만월이 기운 너른 하늘에
무상함만
그득하구나.
-2019.07.10. 무위꽃 정원을 읽고 글월마야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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