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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처럼 비지처럼 ㅣ 달달북다 5
이선진 지음 / 북다 / 2024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 31
그래도 할 줄 알았다가 못 하게 된 것보다는
아예 할 줄 모르는 게 나았다.
쓸 데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쓸모없는 사람으로 밝혀지는 것보다는
애초에 쓸모없는 사람인 게 나았다.
사람이 돌에 맞으면 무슨 소리가 날까.
퐁당 소리가 날까.
나는 손에 쥐기 맞춤한 크기의 돌멩이를
강물이 아닌 오빠 쪽으로 힘껏 던졌다.
아. 빗나가서 아쉽게 됐다.
사람이 돌에 맞으면 퐁당 소리가 날까 .. 라는 물음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소리가 날 것이라 생각했다.
p. 36
그러니까 어쨌든 속인 건 속인 거잖아.
굳이 따지자면 그렇긴 합니다.
완전 가짜인 거잖아.
완전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긴 합니다.
이름은 진짜 맞아?
그건 완전히 진짜인데요. 가운데 중에 세상 세,
세상의 중심으로 가라고 아빠가 죽기 전에 지어주셨거든요.
아빠가 죽었어?
네. 내일 돌아가셨어요.
내일? 그게 뭔 소리야. 내일 죽긴 어떻게 죽어.
아, 크리스마스에 돌아가셨다는 말입니다. 엘리베이터 추락 사고로.
내일 돌아가셨다 와 같은 작가의 말장난이 재밌게 느껴졌다.
66페이지로 소설이 끝이 났다.
아니 이게 소설인가 싶어
책 표지를 다시 한번 봤더니 소설이 맞다 ..
뭔가 소설이 아니라 굉장히 재밌는 말투의
철학적인 수필을 본 느낌이랄까?
라고 느꼈다 .. 작가의 일기를 보기 전까지는!
이희주 작가님의 횡수만사빠이와 같은
전개를 생각한 내가 바보였던 것이다 …
아래부터 작가의 일기 내용이다.
p. 69
자전거 타기 좋은 날씨다.
이때의 날씨란 바깥이 아니라 안쪽의 풍경을 뜻한다. 고로 날씨가 내 편인지 아닌지는
오로지 내게 달려 있다.
(마음) 날씨가 맑으면 자전거를 타러 나가고
(마음) 날씨가 흐리면 안 나간다.
엄밀히 말하자면 날씨가 좋아도 안 나간다.
첫 장부터 느껴지는 언어의 마술사 ..
안쪽의 풍경이라니, 마음 날씨라니 ,, 너무 귀엽다 😍
p. 74-75
나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고 싶으면서도
결국 내 주변만을 하염없이 맴도는 사람이다.
첫 번째 퐁당과 마지막 퐁당은 그 소리도 빛깔도
파문의 지름도 완전히 일치하지 않겠지만-
또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때로는 그 지나간 마음의 물결을
건너편에서 건너다보고 싶기 때문이다.
첫 번째 문장은 나라는 사람과 비슷한 것 같아서 ..
두 번째 문장을 읽고는
31페이지의 퐁당은 그래서는 안 되는 마음을 ..
그저 속으로 생각하는 것, 글로 써보는 것으로 해소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p. 75-76
목표는 단 하나였다.
가짜처럼 느껴지지 않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것.
‘박진감’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진실에 가까운 느낌”이고,
두 번째는 “생동감 있고 활기차고 적극적이어서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느낌”이다.
처음 국어사전에서 이러한 뜻 풀이를 보고
깜짝 놀란 나는 내 소설 속에
첫 번째 뜻의 박진감을 녹여내리라 다짐했다.
이선진 작가님 .. 당신의 목표는, 다짐은,
저를 완전히 속임으로써 완벽한 소설을 만드셨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소설이 진실에 가까운 느낌이라면 뭐겠어요?
수필밖에 없죠 …
p. 77
버릴 게 없다는 건 버림받지 않는 걸까……?
이 소설을 쓸 때 나는 버림받는 일에 골몰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버림받는다는 생각.. 다들 한 번쯤은 했을까나..
어쩌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존감을
다시 찾고 싶다가도 찾을 수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p. 79
강의 북쪽에 조성된 산책로에는 정리되지 않은 잡풀이 무성해 조금만 인도 안쪽으로 들어가면 팔에 풀이 스쳤다.
문득 풀의 팔이라는 말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풀의 팔 풀의 팔 풀의 팔.
귀여워서 여러 번 발음해보았다.
구에서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아무렇게나 자라난
풀의 팔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버림받은 존재일지도 몰랐다.
이 책의 제목이 “빛처럼 비지처럼”인 이유를
너무 귀엽고 진지하게 적어놓았다..
다른 문단 속에서 앞선 문단과의 연결고리를
어쩜 이렇게 능숙하게 하는 것인지 ,,
이게 작가구나 .. 생각했다.
p. 82
가방을 잃어버리는 일은 상실이지만,
그 잃어버림 덕분에
나는 가방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의 가장 큰 상실이자
최근의 상실인 하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니를 잃어버렸다기보다 보내주었다는 말이 더 맞지만)
어쨌든 더 오래 기억할 수는 있게 되었다.
p. 85
그 찰나를 포착해 화면에 띄워놓으면 우리 세 사람은 함께 땀 흘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동행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그 나란해짐을 곱씹다 보니 이런 질문도 떠올랐다.
어쩌면 요즘 내가 매일 밤 자전거도로를
걸으러 나오는 건 이곳에 버려진 무수히 많은 영혼과 나란해지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그 투명한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내 옆에 붙잡아두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현실이든 상상이든 그 찰나를 포착하는 것을
나는 많이 해왔다. 찰나의 순간, 찰나의 아름다움.
이 책도 나의 찰나가 되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 아름다움만큼은,,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이 책은 소설-작가의 일기-소설 이렇게 읽어야
완전히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이다.
비록 나는 마지막 소설 읽기는 실천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다시 이 순간을 찾으러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