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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을 가리키자면 ㅣ 달달북다 7
예소연 지음 / 북다 / 2024년 12월
평점 :
단편 소설이고 58페이지까지는 소설,
59페이지부터는 작업 일기로 이루어져 있어요.
저는 달달북다 시리즈의 작업 일기가 너무 재밌어요.
작가님들의 철학이나 사적인 부분 등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돼서 소설에 더 빠져들 수 있달까나요¿
내가 되는 기억과 기억이 되는 나 ..
주어랑 목적어 자리만 바꿨을 뿐인데 많은 생각이 드는 문장이에요.
p.14-15
나는 등굣길보다 하굣길을 더 좋아했는데,
천천히 보고 싶은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슈퍼 앞에 누워 있는 늙은 푸들을 쓰다듬고
복숭아나무에 열린 작은 복숭아 냄새를 오래도록 맡았다.
작은 개천을 바라보며 비가 오기를 기도하고
해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무더위를 *힐난했다.
*트집을 잡아 거북할 만큼 따지고 듦.
- 언젠가 학원이 아닌 집으로 곧장 가던 때,
여러 루트를 통해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집으로 갈 수 있을지 시험했다. 더 빨리 집으로 가야만 했던 날에 그 시험은 나를 무척이나 안도할 수 있게 하였다.
강아지와 복숭아 냄새가 나는 하굣길이라면,, 나도 기꺼이 하굣길을 좋아했을 것 같다.
p. 15-16
"너네 집 존나 부자잖아."
"엄마가 뚜렷한 경제관념이 생기기 전까지 현금은 주지 않겠대."
"그럼?"
"주식으로 주셔."
- ㅋㅋㅋㅋㅋㅋㅋ ㅜㅜ .. 뭔가 당연히 현대 시대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주식 얘기가 나와서 웃겼다..
p. 31
"동미야, 어른들은 이 상황을 절대로 바꿀 수 없어. 내가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이 공책을 우리 부모님이 보게 되는 거야."
- 청소년이 벌써 느껴버린 현실은 그러한가 보다.
p. 35
친한 노루와 대판 싸우고 돌아와 느낀 분노 한 움큼을 냄비에 탈탈 털어 넣은 뒤 보글보글, 온종일 재밌게 같이 놀다 갑작스럽게 죽어버린 하루살이 때문에 느낀 슬픔도 한 꼬집, …
- 슬픔을 한 꼬집만 넣는다니, 마녀는 하루살이가 하루만 살고 죽어버린 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겠지?
p. 39
"덥다고 생각하면 더운 거야."
"그게 뭐야."
"좋다고 생각하면 좋고."
"밉다고 생각하면 밉고?"
"그렇지."
- 누군가가 생각나는 대화 ..
덥다~ 생각하면 더운 거고,
춥다~ 생각하면 추운 거야 ~~..
p. 40
그러자 이석진이 내 뒤를 쫓아왔고 나는 그 발걸음 소리가 좋아 웃고야 말았다.
- 그렇지 .. 이게 하이틴이지 .. 발걸음 소리에도 웃음이 나오는 풋풋함 ..🥹
p. 41
명태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꼭 내가 알던 명태준이 아닌 것만 같았다.
"화분이라면 금방 보일 텐데. 누가 가져간 게 아닐까? 네 거야?"
"할머니 거. 할머니가 아끼던 건데 내가 떨어뜨렸어."
- 일진도 일진 나름의 사정이 있다 …
그치만 살짝 일진 미화 아니야 .?!라고 생각도 했다.
p. 44
자고 있던 송미는 안방에서 나와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언니… 미안해."
나는 우는 송미는 달랠 수 있었지만 우는 엄마를 달래진 못했다. 엄마는 금세 고개를 들고 눈물을 닦은 뒤 나에게 물었다.
-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인 것 같다. 둘째인 나는 송미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울며 사과했을 것이다. 내 눈에는 송미가 먼저 보였다. 첫째인 동미가 동생은 잘 달랠 수 있지만 엄마를 달래진 못한 게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그저 혼자 눈물을 떨쳐 내야 한다.
p. 61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파편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이나 인상들이 몹시 중요하다. 어느 때는 장면 하나가 통째로 내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고 그것은 오롯이 사는 데 힘을 주곤 한다.
- 정말로 갑자기 떠오르는 그 기억들은 중요하다 ..
하니가 숨을 거두는 그 장면은 아주 머물러 있다.
p. 62-63
그렇게 그 순간은 자연스럽게 과장되고 왜곡되면서
나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된다. 그렇게 자리 잡은 순간은 나에게 '다소 과장하면' 평생을 버틸 힘을 주기도 하며 이따금 살아 있다는 감각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순간은 점점 잊힌다. 잊히는 건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그 순간이 옅어져감을 느끼는 것도 나름대로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애석한 것은 그렇다고 새로운 순간들로 내 마음이 채워지는 것 또한 아니라는 점이다.
- 좋은 순간이 잊히면 슬픈 일이지만 나쁜 순간이 잊히면 감사한 일이다. 보통 나는 이미 좋은 순간마저 잊어버렸기 때문에 나쁜 순간이 잊히길 바란다. 아직 잊히지 않은 슬픈 순간이 어서 잊히길 바랄 뿐이다.
그 순간은 다른 순간들로 사라지지 않기에 ..
p. 66
그 세계에 속하기 위해,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썼던 그 시절의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자라서 담담한 사람이 되었지만, 조금 안 담담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볼 수도 있는 것이다.
- 나 또한 그 시절에 많이 애썼다. 나쁘게 애썼던 순간이 기억나 부끄럽다. 그래서 아직 담담한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담담한 사람이 되자. 될 수 있을까.?
p. 68-69
나는 정말 마음이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믿는다.
그런데 마음이 한번 이야기를 지어내면 그 이야기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우리는 늘 그런 이야기 속에 산다.
그렇게 나는 뭐든지 불편하고 불안한 생각만 하는 어른이 되어버렸고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이런 일과 저런 일을 겪고 또 그렇고 저런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다.
그러니까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어 버린 것. 이렇게 된 나.
나는 어떻게든 살아서 이렇게 되었다.
- 상상이란 무서워, 하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나.
상상이 없다면 어떻게 현실을 살아갈 수 있나,
어떻게 현재를 살아갈 수 있나.
그렇게 되어 버린 나. 이렇게 되어 버린 나.
p. 75
나는 운동을 간다고 결심하고서 몇 시간 뒤에는 운동 갈 생각을 전혀 안 하는 사람이다.
누워 있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누워 있는 사람이다.
천성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면서 그 게으름을 고치려고 들지 않는 사람이다.
자주 슬퍼하는 사람이고 슬퍼하면서도 핸드폰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슬퍼하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지만 그렇다고 슬퍼'만'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 작가님과 공통점이라는 게 위의 문장들이라니.. 하하
우울할 때는 우울'만'하는데,
생각해 보면 슬퍼할 때는 슬퍼만 하지 않는다.
항상 미안한 감정이 같이 들었던 것 같다.
미안하면 눈물이 나고 눈물이 나면 슬퍼진다.
자책이라는 고통, 슬픔과 고통의 순간, 그 순간은 주저함이 없게 슬퍼하다가도 흘러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