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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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고편 보고 완전 기대!! 원작을 봤지만 영화도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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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훔치다
조완선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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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추천으로 본 도굴꾼 미스터리....내용이 환장적임.....바로 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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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엄지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0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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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작가에게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질문들을 한다. "왜 이 소설을 쓰셨나요?" 나도 가끔은 궁금하지만 그건 오로지 작가의 몫이고 그정도는 묻지 않고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 알면 재미가 없지 않을까?

일본 소설을 자주 접하다보면 소설속 때나 배경에 주목한다. 60년대, 70년대나 80년대가 배경이라면 필시 그때 강렬한 추억이 남아 있거나 아님 그 시대에 맞는 주인공들이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때 얘기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거나. 일단 소설속 시간이 주어지면 일단 당시 뭔일이 있었는지 곰곰 기억해 본다. 그냥 대충 한번 훑는다. 그렇다고 내용을 예견하는 건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습관이 돼버렸다. 그냥 나에게는 그런 습관이 있었다....(사실 이번에 처음 깨달았다..^^;;)

한창 잘나가던 일본. 거품이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경제가 무너져 정식으로 파견업체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자연스레 비정규직이 자리를 잡고 일시에 모든 회사들이 도산했다. 나라의 기초가 되는 가정이 무너져 내리며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 가장들이 노숙자를 자청해 나가는 그때다. 이럴 때면 대부업채들이 판을 친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현재 국내에도 러쉬앤캐시를 비롯 아주 많아졌다.) <까마귀의 엄지>의 주인공들 대부분은 돈을 빌렸다가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려 가족을 잃거나, 파탄이 나거나 한 피해자들이다. 그것도 아마 설정이었겠지...?^^ 


사기꾼, 소매치기, 엉뚱한 마술사, 백수가 한데 모여 크게 한판 벌인다. 그냥 보기엔 이들에겐 연결된 끈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토리가 그렇듯, 개개인의 사연들이 얽켜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만든다. 뜨겁고 진득진득한 무언가가...^^
사채업자들에게 도망치다 결국 죽기 살기도 그들에게 크게 판을 벌인다. 물론 그들의 주종목인 '사기'로.^^ 스타트는 좋게 나가지만 어째서인지 실패하고 만다. 그래도 목숨은 건지고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릴 필요가 없어졌지만 마무리가 너무 깔끔하다. 독자인 내가 보더라도 이렇게 이야기가 끝났다면 차라리 동화책 한 편이 더 유익할 뻔 했다. 그러나. 역시 타이틀은 달랐다.(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그동안 이들이 사기 쳤던 일들이 모두 한 편의 드라마였던 것이다. 마지막 반전이 숨어있었다. 그 반전은 읽어보시길....^^

마지막 주인공 사기꾼 한 명은 의미 심장한 말을 했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인 듯 보여 써본다.^^
"인간은 인간을 믿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업습니다. 절대로 혼자서 살 수 없어요. 사람이 사람을 믿는 마음을 이용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기꾼은 인간쓰레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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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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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했던 성폭행 사건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던 '경기도 발바리' 사건은 가정이 있는 평범한 가장이 악마의 탈을 쓰고 자행했던 연쇄 성폭행의 충격은 이루말 할 수 없었다. 그 주인공은 자살로 사건은 히미하게 잊혀져 갔다. 그렇게 놀란가슴에 잠시 숨을 고를 때쯤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조두순 사건'으로 뒤통수를 강타했다. 처음엔 단순한 성폭행으로 생각했지만 친구가 그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알려주는 바람에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피어올랐다. 순간 오바이트가 일었고 잠시 맑은 공기를 마시고 겨우 진정시켜야만 했다. 인간이 점점 이성이 없는 동물과 다를 바 없어지고 있는걸까? 

 <1Q84>를 읽고 한동안 다른 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한 끝에 최근 인문학 서적을 거의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책장에서 마케팅처럼 서 있는 인문학 서적을 고르게 됐다. 찬찬히 눈으로 한권 한권 좇고있는데 공지영의 <도가니> 앞에서 멈춰버렸다. 내 두 눈은 미동도 하지 않고 지긋이 그 책을 가리켰다. 왜지?라고 생각한 순간 '조두순 사건'이 떠올랐다. 나영이 사건과 도가니가 어떤 개연성이 있는지는 확실하게 답할 수 없었지만 막연히 읽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물론 도가니의 내용은 단어 몇 개로 표현할 만큼 밖엔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 눈은 나를 가르키고 있었다. 내 신체 중 하나인 눈에 무언의 압력이었다.
그래서 보라색 펜과 포스트잇을 꺼내어 읽을 준비를 마쳤다.

"너무 코미디 아니니? 우리 여기서 딸 키우고 살아야 하는 거지? 이 발정난 나라에서. 응?"
(<도가니>주인공 서유진의 말중)

딸을 가진 아이의 어머니로서,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책을 읽는 독자로서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도가니>는 실화를 바탕을 쓴 소설이다. 실제 2005년 6월 '광주 인화학교'의 직원이 성폭력 사건으로 고발했다. 인권위 한 직원은 "소설에 나온 부분은 내가 아는 내용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며 "작가 역시 사회적 파장을 생각해 입에 담지 못할 내용 모두를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었을 것"라고 말했다.  

'조두순 사건'으로 얼얼한 뒤통수를 만지다가 실화소설<도가니>를 읽자  꽁꽁 얼은 물에 머리를 쳐박힌 것 같았다.  '조두순 사건'도 다 끝난 다음에서야 동아일보 기자에 의해 알려졌고 <도가니>에서 다룬 사건도 4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런 충격적인 사건도 이렇게 모르고 있었는데 하물며 큰 사건들은 어쩌겠는가?
언론들의 문제점일까? 아님 자기 하나 먹고살기 바쁜 국민들의 무관심일까?

돈없고 빽없으면 살기 힘들다는 말은 정의가 돼어 피부의 살갗을 파고들어 곰팡이가 돼었다. 그 곰팡이는 대를 이어 물려 받았다. 정의, 상식, 진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는 <도가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강인호)에 주목했다. 아니다,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의 분신이자 두려움에 대상이던 것이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살 떨게 만들었고 마지막엔 결국 그의 행동에 어떤 면에서는 안심하기까지 했다. 나는 강인호의 선택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나도 강인호처럼 이런 변명들을 늘어 놓았다.   

"그래, 어쩔 수 없자나. 상황이 그렇잖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딸을 먹여살여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무진으로 내려왔는데 생각치도 못한 상황이 펼쳐졌고 난 정말 최선을 다한거야. 정말 그러긴 싫지만, 학생들을 위해 내 가정까지 버리고 매달릴 순 없어. 내 손에는 두 명의 목숨도 달려있으니까. 그리고 많이 지쳐버렸어. 더러운 인간들의 세치 혀로 날 발가벗기고 몸 구석구석을 파헤쳐 제자들을 볼 낯이 없어진거야.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난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길이 없었다고. 답이 주관식이면 좋겠지만 객관식에 보기는 하나밖에 없었다고...."

왜 내가 강인호의 마지막 행동에 대해 조심스레 지켜봤을까? 소설을 보며 내가 강인호라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답을 가지고 읽어 나갔다. 어쩌면 나 대신 강인호가 끝까지 아이들을 위해, 정의를 위해, 진실을 위해, 빌어먹을 세상을 위해 싸워줬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이 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소설만은 내 그런 기대에 부응하여 대리만족이라도 해줬으면 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바람을 눈치 챘는지 공지영 작가는 강인호를 바람 없는 풍선처럼 만들어버렸다. 강인호가 실제 인물인지 가상의 인물은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선택에 그 누구도 뭐라 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공지영 작가는 강인호를 통해 독자에게 물음을 던진 건 지도 모른다.
 

 

▲ 북콘서트에 나온 공지영 작가의 모습.

 

(다음은 내가 상상해서 쓴 글이다.)   

"당신이 소설속 주인공인 강인호라고 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가? 정의를 위해 싸울 것인가? 아니면 눈 앞에 뻔히 보이는 정의를 외면하고 정의가 땅바닥에 나뒹구는 사회속에 숨죽이고 인간들이 먹고 살아야 할,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 길들여져 정의가 땅바닥에 패대기 쳐지든 말든 어떻게든 살아갈 것인가? "

난 공지영 작가는 <도가니>를 통해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일이 선택에 갈림길에 서 있을 수도 평생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도가니>를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맞딱뜨린다면 과연 나는 어느 쪽에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봄직하다. 죽을 때까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런 고민을 통해 내면에 있는 자신과 맞서 싸우며 어떤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소설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내던져져 간적적이나마나 생각하고 대비하게 만드는 구실을 한다. 공지영의 <도가니>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덕분에 난 씁쓸함에 이루말 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공지영 작가는 <도가니>를 쓰기 전에 다른 소설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상태에서 "이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된 것은 어떤 신문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준비해오던 다른 소설을 더 써나갈 수가 없었다. 그 한 줄의 글이 내 생의 1년 , 혹은 그 이상을 그때 이미 점령했던 것이다." 라고 <도가니> 작가의 말에서 밝혔다. 어떤 사명감이 그녀를 움직일 수도 있고 본인도 나와 같이 본연의 모습을 보고 적잖히 놀랐을 가능성도 있다. 어찌됐든 <도가니>는 실화소설이며 간만에 국어책에서나 볼 수 있던 뭔가 강렬한 여운을 남게 하는 소설임에 틀림없다.

<도가니>와 '조두순 사건'을 결부해 사회적으로 크게 파장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대한민국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법과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만 있다면 나또한 그에 따른 정의, 진실을 위해 내 자리에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사회가 지렁이 지어가듯 천천히 바뀔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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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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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낯선 작품을 만나 이해하며 교감을 통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린다. 첫 장을 넘겨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비로소 한 작품을 온전히 이해했다, 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이해를 못한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작품에 있어 차이는 있다.) 마음에 드는 문체나 기가막힌 스토리를 만났을 때 나는 빠져든 작품보다 작가에 집중한다. 그 작가를 이해하면 작품 또한 자연스레 이해할 거라는 내 지론 때문이다. 그의 삶과 철학을 이해한다면 작품따위를 이해했는지 안 했는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고 참 안타까웠다. 일본의 천재적인 작가라 불리는 인간들은 왜 죄다 자살하려 안달했단 말인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미시마 유키오 등등 자신 스스로 목숨줄을 끊어버렸다. 물론 다자이 오사무도 사랑하는 연인과 강물에 뛰어들어 물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무라이 정신이 유전으로 남은 건지 아니면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니 자신 또한 그분의 뜻을 받들며 존경의 수단으로 그랬을 수도 있다. 오죽했으면 현재 일본에서 100년만에 나올까 말까한 천재로 불리는 히라노 게이치로는 일찍 요절하지도 않을뿐더러 자살할 생각도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그래서 왠만하면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분명 자살하기까지 어떤 명분이나 자신만 아는 이유들이 있겠지만 독자된 입장으로써 상당히 아쉬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왜냐하면 더이상 그 작가의 작품들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재들은 일찍 요절을 하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얘기는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팩트라 하기보다는 그렇게 믿는 것이 더 아름답기 때문은 아닐까? 왠지 그 작가의 삶이 짧고 굵게 한 방 크게 치고 퇴장한 것 같이 가슴속에 공허한 빈터만이 남아있다. 그 빈터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펼쳐 그 작가의 생을 더욱 아름답게 꾸미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분명 자신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그가 정신병원에 갖혀 있을 때 상당한 충격으로 <인간실격>을 쓰고자 결심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짧은  단편소설인 <인간실격>에 다 담은 것일까?

<인간실격>은 인간 다자이는 자신의 삶을 소개하는 말투의 전개로 어렸을 적 집안의 배경과 느낌, 자신이 어떤 인격을 가졌으며 어떻게 삶을 버텨나갔는지 세세히 기록해나가고 있다. 물론 1인칭으로 써내려가지만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편지형식인 것이 색다르다. 일본의 가정의 정통적 문화를 이해하려고 받아들이려 하지않고 어떻게 대처할지를 몰라 꾸역꾸역 맡은 역활을 해나간다.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또한 심신이 약했기 때문에 곧이 곧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디서든 눈치를 보며 일정한 환경속에 끼어 무색무취가 되고자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껍데기를 최대한 가리기 위해 광대 짓도 곧잘하는데 혹시 누군가 눈치를 챌까봐 계속해서 전전긍긍한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어떤식으로 펼쳐지고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인간실격>을 읽는다면 다자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단편소설인 <로마네스크>와 <개 이야기>는 다자이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사실 <인간실격>은 다자이의 자전적인 성격이 짙기때문에 말할 필요가 없는데 순수한 창작인 이 두 작품은 그의 뛰어난 이야기꾼의 재치와 유머를 엿볼 수 있다. <로마네스크>는 제각기 개성이 다른 세 명의 달인이 결국 한자리에 모임으로써 완성되는 구라의 미학을 보여준다. 먼저 선술의 달인과 싸움의 달인, 그리고 거짓말의 달인. 이 세 명의 달인은 자신들의 특기인 선술, 싸움, 거짓말로 인해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지만 마지막에 극적인 이들의 만남으로 달인이란 칭호는 예술가로 남는다.

<개 이야기>는 일본인의 성격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는 소설은 없을 것이다. 개를 무서워 하는 주인공은 필시 개가 분명 자신을 물거라는 허무맹랑한 상상 때문에 개만 보면 웃음띤 표정으로 적대감이 없다는 신호를 보낸다. 핑계는 이렇다. '개가 자신을 물면 한 달 정도는 병원에 들락날락거려야 하고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얼마 전 내 친구도 개에게 물려 일도 못하고 돈을 축냈다. 그러니 개에게 물려서는 안 된다.' 이런 핑계로 개에게 사근사근한 미소를 흘리며 지나가는 어느 날, 어이러니하게도 개들은 주인공을 좋아하게 된다. 닥스훈트는 그를 집까지 쫓아 오며 끊질길 애정공세가 먹혀들어 주인공 집에 정착한다. 그때의 핑계도 이렇다. "이 개를 쫓거나 해를 끼치면 분명 이 개의 친구들까지 불러 복수를 하게 될거야.' 결국 계속된 핑계거리를 만들며 아주 극진하게 대접하는 주인공.

주인공은 개를 싫어하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다.'라는 말이 있다. 결국 그는 닥스훈트를 자신이 데려와 키우는 데까지 이르렀지 않나? 분명 자신은 개를 극히 혐오한다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행동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인간실격>에도 나오지만 다자이는 일본인들은 속을 알 수 없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일본인들의 알 수 없는 마음, 예상치 못한 행동을 <개 이야기>를 통해 비꼬려는 시도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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