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e - 시즌 8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8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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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소설만 읽다보니 조금 지루하기 시작했다. 재밌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을 여러권 보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지식e> 시리즈는 나의 욕구를 채우줄 적합한 책이다. 트렌드를 반영하여 연결된 지식과 그의 파생되는 역사들. 언제나 배움이란 그렇듯 무엇이든 알면 신기하고 놀랍지만 모르면 죽을 때까지 모르다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아버지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했다. 꼭 아는 것을 어딘가에 써야 할 필요는 없지만 아는 것을 보고 지나치는 것과 모르는 것을 그냥 지나치는 것, 아마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배움의 즐거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신기하게도 하나를 알면 또 다른 하나가 궁금하고 또 다른 하나를 알면 또 다른 몇 개를 알고 싶어진다. '호기심', 인간이 죽을 때까지 무언가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호기심 녀석의 장난질일 게다.

 

<지식e>에도 나오는 '빅 브라더'를 보자. 조지 오웰 <1984>에 나오는 독재자를 뜻하는 말로 모든 정보를 독점하여 그 정보로 국가, 사회, 개인 사생활 등을 통제하는 지배권력을 말한다. '빅 브라더'의 개념을 알면 지금 현재 우리의 생활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또 궁금해질 것이다. 전세계에 뻗어 있는 구글은 특정 단어 검색으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예측할 수 있을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독감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늘면 독감 관련 단어의 검색량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무심코 던진 자신의 SNS에 올린 단어들 역시 이러한 데이터 자료에 일조하고 있다. 전자통신이 연결된 곳에서 우리가 쓰고 하는 행동들은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데이트화 되어 저장되고 있다. 한마디로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고 컴퓨터 전원을 키는 순간부터 사생활의 의미는 사라진다. 만약 특정한 누군가에 의해 내 정보가 유출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얼마 전 전셰게를 떠들석 하게 만든 에드워드 스노든은 우리에게 무서운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전해줬다.

"미래 인류에게는 프라이버시 개념이 없을 것이다."

 

빅 브라더를 시작으로 소설가 조지 오웰, 도서 <1984>, 독재자, 정보권력, 구글, sns, 프라이버시, 스노든.....

지식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정보는 끊임없이 파생되고 퍼져나간다. 멈출줄 모르는 시간과도 같다. 여기서 더 나가볼까? 조지 오웰의 <1984>의 연감을 얻어 쓴 하루키의 <1Q84>, 어떤 사이트를 가도 따라다니는 구글 에드 등 연결성은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 호기심이 생기면 다방면으로 퍼져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재미 때문에 배우고, 익히고, 얻는 게 아닐까?

 

가끔 블로그 이웃분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책을 좀 추천해달라는. <지식e> 빅 브라더처럼 책 고르는 방식도 거의 유사하다. 신문을 보다 잡지을 보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지하철에서 보고 듣다가, 하물며 영화를 보다 궁금한 게 생겼다고 하자. 그 관련 책을 먼저 보면 된다. 그게 책을 고르는 '시작'인 것이다. 그 책을 다 보면 또 다른 책들이 보고 싶을 것이다. 책은 그렇게 생겨먹었다. 하루키 책만 보더라도 자신의 소설 안에는 또 다른 소설 책들이 등장한다. <상실의 시대>에서 나오는 <위대한 개츠비>처럼......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연계된 책을 쭈욱 보다보면 자연스레 자신이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 다음부터는 스스로가 찾아 선택할 것이다.

<지식e>를 보며 다양한 지식을 습득했다. 책 한 권이 뭐 얼마나 대단하나 싶을테지만 이런 식으로 꾸준히 읽으면 상당한 양의 지식이 쌓인다. 연쇄작용으로 거꾸로 이해되는 부분들도 있을 것이다. <지식e> 시리즈는 쉬운 편이라 부담없이 보기에 좋은 책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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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독설 - 합본개정판, 흔들리는 30대를 위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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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다는 자기계발서 몇 권을 읽으보면 엇비슷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겉만 뻔지르르하지 결국 자기처럼 0000하라!는 건방진 명령들뿐이다. 그뿐이랴? 내가 성공을 못하는 건 다 자기가 이제까지 뭘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란다. 그게 무슨 또라이같은 소린가? -_-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생각도 없이 내뱉는다. 스스로의 선택만으로 지금의 '내'가 됐다고. 그러니까, 남이든 누구든 탓하지 말고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책임지라는 얘기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선택한 길을 걸은 건 분명 자신이 맞다. 하지만, 그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은 간과한다. 누군가의 선택지는 10개이고 누군가는 2개, 최악의 상황은 1개일 수도 있다. 자라온 환경, 자신의 상황, 시대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과정은 다 생략하는 오류를 범한 채 결과만을 가지고 얘기만 하니 다 자신이 잘못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인생이 그런식으로 간단히 설명이 가능할까? 인생은 그렇게 쉽게 평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러하고.

 

엄밀히 말하면 <언니의 독설>은 자기계발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르다. 무서운 선배가 박명수처럼 호통을 치며 혼내는 것 같지만 우리 나이대에 필요한 따끔한 충고들을 해준다. 솔직히 20~30대 여성들을 위한 책이다.+_+ 나도 조언을 얻긴 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장인 여성들에게 더 필요한 책같다. 피도 눈물도 없는 세상을, 그래도 먼저 경험한 김미경 언니가 후배들을 위해 쓴 충고서쯤 되겠다. <언니의 독설>을 읽고 친한 후배들에게는 읽어보라고 추천해줬다.

 

<언니의 독설>은 여성들을 위한 인생설계서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욕망과 원하는 욕심, 미래의 꿈을 구별해주고 인생이 똥인지 된장인지 알려주며 세상의 쓴맛을 과감하게 보여준다. 여성들이 바라는 결혼상, 꿈꾸는 직장생활, 원하는 돈까지. 현실과 이상에 확실한 경계를 쳐준다. 언니는 말한다. 고작 그런 쪼잔한 일로 울지말라고. 앞으로 더 힘든 일이 줄을 서 있다고. 그럼 눈이 뻔쩍 가슴이 벌렁!+_+

 

이제까지 누구도 나에게 이런 독설을 퍼부은 적이 없는데, 엇...이 언니는 뭐지? 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 맞는 말이다.

여성들이 원하는 돈많은 남자, 잘생긴 남자, 꿈같은 직장생활, 어영부영 모이는 통장 잔고는 절대 '없다'. 요즘 이런 말도 있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이 병에 걸렸다고. '대충'이라는 병. 단 한 번이라도 목숨걸고 해봤는지 자신에게 물어봐라. 만약 할말이 없으면 당신도 '대충'이란 병에 감연된 것이다. 직장생활 하다보면 어느 순간 병에 걸린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신차리고 김미경 언니에게 욕을 좀 드시라. 대학생인데 인생이 막막할 때, 직장 생활하다 힘들 때, 이성친구를 고를 때, 자신만 인생이 불행하다 느낄 때, 가까운 서점에 가서 <언니의 독설>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도움이 됐으면 됐지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내용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순 없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는 시간이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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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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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을 두 번 읽었다. 출간하자마자 기쁜 나머지 지하철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리곤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처럼 꿀꺽 까먹어버렸다. 내가 주인공처럼 병에 걸린 것일까, 고민했지만 이내 해결됐다. 사라지지 않는 이상 또 읽으면 되니까. '읽었다'는 기억은 있지 않은가? 인생에선 괜시리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심각해지면, 그때부터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과 결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이 굳이 길 필요는 없다. 짧지만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소설이 있기 때문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고작 149페이지이지만, 주인공의 특성상 느릿느릿 읽힌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70대 할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노인은 보통 노인이 아니다. 쾌락을 위해 사람들을 거리낌없이 죽이는 연쇄살인범이었다. 연쇄살인범이, 다 늙어서 알츠하이머에 걸리다니...신의 저주인가? 아니면 세월의 흔적인가? 그 덕에 언제 어디서 사건이 터질지 모르니 긴장감 속에서 지뢰를 찾는 양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눈 녹듯이 살인의 쾌락이 사라져 살인을 멈추게 된다. 그 뒤엔 기억을 잃기 시작한다. 70대 노인에겐 자신을 돌봐주는 딸이 하나 있다. 마지막으로 죽인 한 여인의 딸. 그녀가 죽기 전 딸을 살려달라던 약속을 지킨다. 그렇게 자신이 죽인 여인의 딸을 데려와 키우게 된다. 딸은 자신이 입양됐다고 알고 있다.

노인은 병 때문인지 자신이 사는 집조차 낯설어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내가 왜 지금 여기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딸애는 누군지, 뭘하려고 했는지 순간적으로 기억을 잃어버린다. 예고도 없고 조짐도 없었다. 방편으로 항상 메모를 하고 녹음기를 목에 걸어 하고자 했던 것을 기록 혹은 녹음을 해놓고 까먹을 때면 리플레이를 누른다.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하다. 혹시나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방에 독극물이 든 주사기를 준비한다. 여차하면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서다. 그런데 동네에선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혹시나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고 다닌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기억력을 되돌려 봐도 누굴 죽인 기억은 없었다.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안심하지는 못한다. 자신의 기억이 100%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점점 연쇄살인 사건이 늘어나고 노인은 극도로 불안해진다.

불안감에 잠식 당했는지 잠든 딸의 목을 조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도 오히려 남아 있는 기억까지 소모되는 것 같다...노인은 살인을 멈춘 것도 잊고 살인의 쾌락을 위해 밤마다 나가는 것일까?

 

역시 김영하 작가님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정말 강렬한 소설이다. 마지막까지 단서 찾기에 집중해야 한다. 다 읽어도 노인처럼 불안하다. 혹 내가 눈치 못 챈 부분이 있었나? 이게 팩트일까? 아니면 저것이 팩트일까?

읽으면서도 불안하고 다 읽으니 뭔가 께름칙하다. 불안해질 필요는 없다. 마지막 사실이 있는 그대로의 내용이니까.

(반전 때문에 많은 내용은 언급할 수 없다.)

 

 

인간의 기억력은 불안전하다. 그래서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추후에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왜곡시킨다고 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내는데 추후에 대박이 났다 하자. 그럼 여러 명이 서로 자기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단 한 명. 나중에 회의 자료를 보니 다 나와 있었다. 인간은 원래 망각의 동물이다. 그리고 기억력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고의 메모리일 뿐. 그런데 그 메모리 회로가 무언가에 의해 망가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혀 기억이 안 난다거나 반복되는 일이 너무 생소하다 느낄 때 혼란에 빠진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고 고민을 해봐도 기억이 안 난다. 우리가 겪는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현상, 즉 블랙아웃을 당할 때다. 이때 괴로운 이유는 기억이 없는 그 시간에 내가 도대체 무슨 행동과 말을 했는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뭔가를 하긴 했는데 기억이 사라졌다? 이 경험 자체가 공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혹 내가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기억력은 자신의 존재 그 자체이다.

 

전 연쇄살인범이자 알츠하이머에 걸린 70대 노인은 자신과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 지워지는 기억과의 사투, 눈 앞에 보이는 모습의 인과관계와의 사투, 그 사투의 결과에 대한 사투. 눈을 뜨고 감는 모든 것에 의심을 품어야 하는 지옥같은 시간을 과연 70대 노인은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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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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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내가 하루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기 시작하면 두 장을 채 못 넘겼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은 하루키팬으로서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하루키가 마음먹고 정말 쓰려했던 소설이 아니라 단편소설을 쓰다 보니 분량을 좀 더 늘린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하루 아침에 기적 같은 영감으로 소설을 써 온 작가가 아니다.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하루하루 자료를 정성껏 모으고 자기만의 색깔로 시간을 들여 정성쓰럽게 만든다. 머릿속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글쓰기로 돌입한다. 그에게 단편소설이란 장편소설과는 스타일과 쓰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단편소설은 그야말로 짧은 이야기이니 장편소설과 달리 많은 에너지를 쏟을 필요도 없고 다양한 시도를 해도 크게 상관이 없다. 하지만 장편소설이라면 달라진다. 비평과 비판, 칭찬과 명예가 딸려오는 작가에겐 더없이 중요한 실질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2013년 하루키 신간 소식을 듣자 까무러치게 놀랐다. 분명 <1Q84>를 마치고 완전 지쳐버렸다고 했고 그 사이 에세이며 번역도 했을 텐데 너무 빠른 시일에 나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 만약 하루키의 신간 소식이 들리면 당연히 <1Q84>인 줄만 알았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나와서 하루키팬으로서는 걱정과 함께 기대로 가득했다. 그리고 곧 일본 현지에서의 출간과 동시에 도서 정보를 보았다. 그때 가슴이 무너져버렸다. 내가 예상했던 하루키 스타일의 발전된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에 출간했던 <상실의 시대>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과 비슷한 류의 작품이었다. 하필 왜 방황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여야 했는가? 난 궁금하기 앞서 실망했다. 하루키 팬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항상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던 그가 왜 이번엔 자신이 쌓아올린 작품들 위로 올라서지 못한 채 밑으로 내려가야만 했냐는 말이다. 이제껏 하루키 작품에만 볼 수 있는 성향들이 여지없이 반복되는 이 현상. 새로운 구상이 떠오르지 않으면 좀 더 쉬면서 써도 될 텐데 왜 하필 80년대 느낌이 짙은 '고독'과 '방황' 카드를 꺼내들었는지......<색차가 없는 다자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한참 동안 한숨을 쉬어야 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색채로 등장하는 설정, 이유도 모른 채 쓰쿠루가 그룹에서 쫓겨나는 설정, 시간이 흐른 후 이유에 대해 알아가는 설정, 그리고 <상실의 시대>와 같은 마무리까지. 90년대였으면 모르겠지만 <1Q84>까지 다 읽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루키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응원해 온 팬으로서 그의 마음을 읽어보자면 이렇다. #1_단편소설을 쓰다 보니 장편소설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꽤나 마음에 든 작품을 만났다. 그래서 장편소설을 한번 써볼까, 마음을 먹고 글을 써본다. 원하는 대로 작품이 술술 잘 써져 그대로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2_<1Q84> 집필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 집중한 나머지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1Q84>는 내가 생각하는 대표작이자 정말 쓰고 싶었던 총합소설이다. 앞으로 적어도 한~두 권은 더 쓰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1Q84>를 이어 쓸 동력을 잃어버렸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소설을 쓰며 잠시 부담없이 쉬어야겠다. 그렇게 가볍게 쓴 소설이 바로 <색차가~>이었다. 나에겐 <색채가~>란 그저 잠시 쉬었다가 갈 기차역인 것이다.

#3_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키에겐 뭔가의 충격으로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그래서 소설도 하루키의 심경처럼 우울한 분위기가 됐다. (#4_이건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이지만, 예전에 썼던 습작노트에서 하나 꺼내 장편소설로 완성시켰다.)

난 그저 세가지로 생각하고 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하루키 스타일의 총합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부 다 들어있다. 하루키와 비슷한 스타일의 주인공 쓰쿠루. 돈이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좋아하는 일은 끝까지 자신의 노력으로 하는 편이고 무엇이든 꾸준히 한다. 어릴 적부터 꿈꿔 온 철도 회사에 들어가 철도역을 짓고 수리하고 관리하는 직업을 갖는다. 딱히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로 친한 친구를 만들지 않았고 만들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에겐 완벽한 그룹이 하나 있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만난 친구 네 명, 아카, 아오, 시로, 구로. 그리고 주인공 쓰쿠루 쓰쿠루를 빼고 나머지 친구들 이름엔 각기 색깔이 있었다. 쓰쿠루만 빼고. 그때 쓰쿠루는 자신만 색깔이 없어서 난해해했다. 그게 복선이었을까? 처음 만나서 대학생이 되서까지 이들 그룹은 5명이서 언제 어디서나 항상 친하게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쓰쿠루는 이들 그룹에서 퇴출 당했다. 이유도 모른 채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는 통보를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쓰쿠루는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알았다며 더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자살을 준비한 쓰쿠루는 결국 죽지 않고 마음의 상처만 봉한 채 살아왔다. 30대 중반이 된 쓰쿠루는 연상의 애인을 만나게 되고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 연상의 애인은 과거의 친구들에게 이유라도 들어보라고 권한다. 그렇게 쓰쿠루는 친구들을 한 명씩 만나 사연을 듣게 된다....

 

이 작품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우울하다.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준비한 쓰쿠루도 무기력하지만 그의 친구들 역시 하나하나 설명할 수 없는 우울이 지배적이었다. 마치 등에 우울을 한덩이씩 매달고 있는 것처럼. 초반부터 죽음, 우울, 무기력... 마지막까지 분위기가 우중충했다. 굳이 처음부터 죽음에 대해 다뤄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덕분에 분위기가 우울해졌으니 말이다. 자살할 마음으로 살았던 주인공이 그 이유를 찾고자 나선다면 그 이유들이 기쁜일은 아니지 않을까? 하루키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요소들은 거의 없었다. 이것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다만, 글솜씨는 여전했고 여전히 문장들은 잘 읽혔다. 쓰쿠루가 친구들에게 배척 당했을 때 이유를 묻지 않았던 것, 시로는 왜 거짓말을 했으며 쓰쿠루에게 그런 재앙적인 말을 했던걸까, 시로에 대해서는 모든 게 의문이다. 그리고 쓰쿠루는 애인이 시킨다고 숨겨왔던 상처를 후벼파는건가? 그동안 물어볼 시도조차 왜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들. 소설이 당연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는 이야기라는 걸 아주 잘 알지만 이번 작품은 정말이지 하루키의 여러 작품들을 짜집기 한 것 같다. 이제까지의 작품들은 적어도 이어지는 연속성이라는 게 있었다. 쥐 3부작이라든가 '상실 시리즈'라든가 '<언더그라운드>+<약속된 장소에서>+<1984> = <1Q84>'라든가, 뭔가 연결고리가 있어야 이해라도 할 텐데 이번 작품은 좀 아리까리하다.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난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단편소설인데 내용이 생각보다 길구나'라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재미가 없다거나 작품성이 전혀 없어서 비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오랜만에 하루키 소설을 읽어서 반가웠다. 하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뚜렷한 색채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1Q84> 다음에 하필 이런 작품을 썼는지, 이 다음 작품은 어떤 내용의 소설인지, 하루키가 지향하는 소설의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 작품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난 <1Q84>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 작품을 넘을 수 없으면 소설가로서도 끝이란 말이다. 독자들의 수준을 한껏 위로 올려놓은 것은 다름 아닌 하루키 자신이 아닌가? 일단, <1Q84>의 끝을 보고 싶다. 그게 우선적으로 하루키가 마무리해야 할 도리가 아닌가 싶다. 독자들을 위해, '하루키 스타일'의 완성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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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밤의 코코아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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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나베 세이코의 <서른 넘어 함박눈>을 읽고 달콤한 연애소설의 맛을 알았다. <고독한 밤의 코코아>는 <서른 넘어 함박눈>에 후속편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같은 연애소설이지만 <고독한 밤의 코코아>는 좀 더 가슴이 짠하다. 혼자 침대 위, 노오란 스탠드 불빛 밑에서 따뜻한 코코아 한잔 마시며 읽으면 딱이다. 단편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가슴에 구멍이 하나씩 숭숭 뚫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책을 덮을 수가 없다. 취하는 대도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이 멈출 수가 없다. 아프니까 인생이다.

 

-사귀는 사이인가? 아리까리한 남녀간의 사이에서 정작 중요한 결혼 얘기는 하지 않는 남자. 이 사람,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다. 나이는 그녀보다 훨씬 많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면 그만아닌가? 둘이 같이 살 집을 구해 본격적으로 같이 살아가려 한다. 과연 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내가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났다. 남들은 그의 매력을 알아채지 못해 다행이다. 슬슬 그를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한다. 그런데, 내 친구는 내가 뭔가 가지려 해면 감쪽같이 뺏어간다. 이번엔 그에 대해 내 감정을 말하지 말아야겠다. 그녀 몰래 그와 사랑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중요한 건 뭘까? 일이냐? 사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지만 난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해서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야근걸이 됐다. 일이 밀리는 꼴을 볼 수 없다. 성격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열심히 일만 하고 있었는데 후배에게서 연애바람이 살짝 불어온다. 이 느낌, 뭘까? 난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구! 다른 여자처럼 남자에게 기댈 순 없다! 그녀는 과연 다른 여자들과 사랑앞에서 다를 수 있을까?

 

<고독한 밤의 코코아>는 20대 후반~30대까지의 여성들이 읽으면 친구들에게 곧바로 카톡을 날릴지도 모른다.

'야~! 보람아~ 이거 니 얘기 나왔다.' '어머어머어머...박대리님, 이거 대리님 뻥 차인 얘기 맞죠?' '왠일이야! 후배 양씨! 이거이거, 니 남친 얘기 아니니?' '너 이런 남자 만나지 마라. 진짜 싫어!!'
연애를 하다보면, 남들 연애 얘기를 듣다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가슴 찢어지는 스토리부터 완전 찌질한 스토리까지.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기까지, 실로 엄청난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참, 우습게도 다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_+;

주위 친구들 연애 상담 얘기만 들어봐도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아는 건 다 경험해보거나 주위에서 들은 얘기가 있기 때문이다. 남자든 여자든 다 거기서 거기, 특별해봤자 저~~~~~~기 정도?^^ 다 알면서도 빠지는 게 함정만 있는게 아니다. 사랑도 함정이나 마찬가지로 알면서도 뛰어든다.

 

<고독한 밤의 코코아>에서는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하나같이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스토리가 없다. 뭔가 씁쓸하고 눈물이 찔끔날 것 같은 헛헛함만 전해온다. 그래도, 어떡하랴?! 함정인 줄 알면서도 우린 언제나 뛰어드는 선택을 하는 것을....^^

정녕 서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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