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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Zero 59 - The Man of The Creation
아이 에이시 글, 케이 사토미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미스터 제로. 사람들은 그를 신이라고 부른다.
제로를 1권부터 손에 잡기 시작한 지 서너 달이 되었다.
이제 올해 10월에 출간한 최신호 45권까지 읽었으니
이제는 대여점에서 하루에 한권씩 빌려다 읽는 것도 끝이다.
이렇게 아쉬울 수가.
제로...
이름 자체가 0이란다.
세상에 없는,
그런 사람이다.
표지를 보면 아시겠지만,
내가 본 케릭터 중에서 이 남자만큼 폼생폼사인 사람은 없었다.
너무나 미끈해서 느끼하기까지 한 007 제임스 본드도
미스터 제로랑 같이 있다면 너무 유치해 보일 만큼,
그만큼 철저하게 폼을 잡는다.
하지만 신이라는데, 사람이 아닌 신이라는데 당연한 거다.
얼굴은 왠만큼 잘 생겨야지.
만화 연재가 계속된 지 10년이 넘었다는데
지금까지 얼굴에 주름살 하나 안 늘었다.
주름살이라니!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 젊어지는 것 같다.
아는 건 또 왜 그렇게 많아.
누군가 시조 한 줄이라도 읊조리면
작가, 연대, 시대배경까지 다 알고 있다니까.
집안 대대로 가보로 내려 오는 바이올린을 보여 주면
스트라디바리우스인지, 그 스승격인 안토니우스의 작품인지까지 한눈에 맞추는 걸.
어디 그 뿐인가?
낚시면 낚시, 스포츠면 스포츠, 등산에서 스쿠버 다이빙, 요트 타기까지....
도대체 할 줄 모르는 게 뭐야?
외국어는, 어느 나라를 가든 통역이 필요없는 수준으로 구사한다.
영어, 러시아어, 불어는 물론 아랍어부터 남미 소부족의 말까지.
게다가 돈은 돈대로 많지.
의뢰 받은 일을 해결할 때마다 스위스 은행 계좌로,
전세계 갑부들의 전재산이 통으로 들어오는 데 그럼 당연한 일.
그런데도 여자 관계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여자는 커녕 주변에 가족이나 친인척 한번 아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 그 많은 호텔급 별장들은 누가 다 청소를 하나?
집사라든가 곁에 조수 한명 없는데...
밥은 매일 고급 요리로 사드실 테니 걱정 없고...
정말 프리랜서의 최고봉이다. (존경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이 만화 구라가 넘 심합니다.
뻥도, 뻥도 이런 뻥이 없지요.
그런데,
그런데도,
난 정말 진지하게 미스터 제로를 완독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제로를 읽었던 것이다.
일단 스토리가 튼튼하거든.
각 회는 그 자체로 헐리우드 영화로 제작해도 좋을 만큼 재미있거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해외 취재는 물론이고 방대한 자료와 고증을 토대로 만들어낸 이야기니까. 절묘하거든.
전세계, 전시대를 오가며 박물학적 지식을 토해내는데 그 어찌 재미있지 않으리오.
나는 제로를 읽으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
우선, 글 작가 아이 에이시와 케이 사토미는 이 한 작품에만 10년 이상을 매달렸다.
그것이 가능한 일본 출판계의 시스템이 부럽다. 글 작가의 경우, 1년의 대부분을 해외 취재차 외국에서 보낸다고 한다. (가끔 화가도 취재를 가는 모양이지만 마감 일정과 업무량 때문에 도통 집 밖에 못나간다는 푸념이, 책 날개에 자주 드러난다.)
그렇다면 출판사에서 이 경비를 다 지원한다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는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Originality(원본성)에 대한 생각을 계속 갖게 하는 점이 고맙다.
무엇이 진짜냐? 복제품은 무엇이냐?
사람들이 진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진실은? 진짜 같은 가짜는 진짜가 아닌 것일까?
작가 아이 에이시 입장에서도
어떠한 스토리를 만들어낸 다는 건,
현실 Reality에서 취한 재료를 가지고
현실만큼 진짜 같은 허구 Fiction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제로의 운명은 자기의 것이기도 할 것이다.
미스터 제로, 혹은 그의 창조주 아이 에이시.
너무너무 잘나서,
곁에 있으면 속에서 욕이 나올 것 같은 그런 사람일 것 같은데,
그래도 한번쯤은 술잔을 기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아마도 나는 약간 알딸딸한 상태에서 한국인으로서,
일본 과거사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으면서 세계 평화나 정의, 인권 운운하는
미스터 제로의 이중성을 이야기하겠지.
그럼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도 대다수의 일본 지식계층, 상류층처럼 고개를 내저으며 자리를 뜨겠지.
그럼 나는 "아듀, 미스터 제로!" 하고 혼자 건배를 하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