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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ㅣ 레닌 전집 64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양효식 옮김 / 아고라 / 2018년 1월
평점 :
■레닌전집 읽기 64권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오랜만에 레닌전집을 읽는다.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제목만 읽는데 벌써부터 어렵다. 옮긴이에 따르면 이 책은 1916년 7월부터 12월까지 쓰인 글들을 모은 것이다. 그 유명한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단계>가 1916년 6월에 완성되었으니 이 책은 ‘제국주의론’ 집필 이후에 쓰인 글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제국주의 분석에 입각한 정세규정, 전략전술, 기회주의 경향의 뿌리 등 여러 내용들이 이전 전집들보다 더 꼼꼼하고 풍부하다.
그래도 제목에서 보듯이, 레닌전집 64권은 ‘제국주의’ 자체에 관한 내용보단 ‘제국주의적 경제주의’라는 경향을 반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제국주의적 경제주의’라는 말이 생소할 수도 있겠는데, 이 조류는 “제국주의 시대 민족자결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으로 민족자결에 관한 레닌과 볼셰비키의 입장을 거부한다. 레닌은 이를 제국주의 시대 나타난 경제주의라고 규정한다.
로자 룩셈부르크, 폴란드 사회민주당 내 일부, 부하린, 키엡스키 등에 따르면 제국주의 시대 민족해방전쟁을 불가능하다. 또 민족자결에 찬성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자결은 곧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조국방위’입장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가장 소리 높여 조국방위를 거부하고 전쟁을 내란으로 바꾸자던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지도자 레닌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회주의하에서 자결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주의하에서는 민주주의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똑같이 터무니없고 똑같이 구제할 길 없을 정도로 혼란에 빠진 것이다.” (228p)
■<유니우스 팸플릿에 대하여>
독일 사회민주당 ‘좌익 급진파’ 중 한 명인 로자 룩셈부르크는 유니우스라는 필명으로 ‘사회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소책자를 작성한다. 소책자는 지금의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논증과 독일 사회민주당 주류를 비판하는 내용 등으로 이뤄져있다. 레닌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인 저자(로자 룩셈부르크)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몇 가지 오류를 지적한다.
로자는 주장한다.
“이 야만의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 전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세계가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 분할되어 있으며, 따라서 어떤 민족 전쟁도 결국 제국주의 전쟁으로 전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레닌은 반박한다.
현재 전쟁(제 1차 세계대전)에서 일어나는 사실을 과장하여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요구되는 구체성으로부터 벗어나선 안 된다. 지금 전쟁에 대한 규정을 모든 전쟁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여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운동을 망각한다면 잘못 된 것이다. 또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나 반식민지가 민족 전쟁을 벌이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
레닌은 “민족 전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이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주장은 “민족운동들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훨씬 더 어리석고 완전히 반동적인 태도의 원인”이다. 식민지 인민을 억압하는 (유럽)민족의 성원이 “민족 전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며 박식한 체하는 태도는 곧 배외주의나 다름없다.
로자는 주장한다.
“외적에 맞서 나라를 지키는 최선의 방호벽으로 복무하는 것은 계엄상태가 아니라 계급투쟁이다.” 그러면서 프랑스에서 부르봉 왕조가 혁명에 대항하기 위해 외국침략자를 끌어들이고, 1871년에 부르주아가 코뮌에 대항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외국침략자를 끌어들였던 예시를 들고 있다. 즉 프랑스에서 그랬듯이 진정한 조국방위는 곧 계급투쟁이며, 따라서 조국방위를 명분으로 제국주의 전쟁에 찬성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레닌은 반박한다.
로자는 “계급투쟁이 침략을 방어하는 최선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일반적이며 따라서 현재의 특수한 경우에는 부적절하다.” 이런 주장은 차리즘에 동조하는 이들도 인민들을 기만하기 위해 기꺼이 동의할 내용이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전쟁 와중에 계급투쟁을 한다는 것은 결코 ‘조국방위’를 뜻하지 않고 ‘내란’을 뜻하는 것인데, 로자의 주장은 ‘전쟁을 내란으로’라는 혁명적 강령을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니우스의 소책자는, 혁명적 슬로건을 그 결론까지 밀고 가보고 그런 혁명적 슬로건의 정신으로 대중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데 익숙한 비합법 조직의 동지들 없이 혼자뿐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34p)
■<민족자결에 관한 토론 총괄 정리>
볼셰비키 중앙기관지 <사회민주주의자> 편집국과 폴란드 사회민주당 반대파 기관지 <가제타 로토브니차> 편집국은 민족자결에 대해 찬반입장이 나뉜다. 레닌은 이 쟁점을 총괄하여 요약·정리한다.
폴란드 동지들은 사회주의에서 자결권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에서는 민족적 억압을 낳는 계급이해가 사라지므로 일체의 민족적 억압 또한 사라질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민족이 경제적·정치적 단위로서 존재할 것이라고 믿을 아무 근거도 없다.”
즉 사회주의 문화권에서는 민족이 사라지니 자결권도 의미도 없다. 사회주의에서 영토적 분리는 자결권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공동으로 결정할 문제가 될 것이다.
레닌은 반박한다.
모든 반동들과 부르주아들도 강제로 속박된 민족들에게 공동의회에서 자신의 운명을 ‘공동으로 결정할’ 권리를 허락하고 있다. 폴란드 동지들은 쟁점이 되는 자결권(=분리의 권리) 문제를 계속 회피하고 있다. 또 ‘사회주의 문화권’을 말하며 “모든 국가 문제는 말소되었다는 투로 의도적으로 애매한 표현을 쓰고 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사회주의에서는 국가가 없고 당연히 국경문제, 자결권 문제도 없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없으니 민주주의, 공화제 등 정치적 강령 일체도 불필요해진다.
“이것은 일종의 ‘제국주의적 경제주의’다. 1894~1902년의 구 경제주의가 ‘자본주의는 승리했다. 따라서 정치적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라는 식의 논리를 전개했던 것처럼, 이 제국주의적 경제주의도 ‘제국주의는 승리했다. 따라서 정치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시간 낭비다!’라는 논리를 편다. 이러한 비정치적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에 극히 유해하다.” (42p)
사회주의는 경제에 기초한 것이 맞다. 그러나 경제만으로 환원될 수 없다. 사회주의는 민족적 억압을 철폐하는 경제적 토대를 마련할 것이지만, 민주주의적으로 조직된 국가가 민족적 억압을 철폐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폴란드 동지들은 조국방위 일반을 거부하며 아래처럼 주장한다.
“(병합에) 반대하는 사회민주주의자의 투쟁의 출발점은 어떠한 조국 방위도 거부하는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조국 방위는 외국 인민들을 억압하고 약탈하는 자국 부르주아지의 권리를 방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닌은 반박한다.
이러한 논리에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것도, 혁명적인 것도 없다. 사회주의자는 주적인 대국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모든 봉기를, 그것이 반동적 계급의 봉기가 아닌 이상 지지해야만 한다. “피병합 지역의 봉기를 지지하길 거부한다면 우리는 객관적으로 병합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즉 제국주의에 의한 병합에는 반대한다면서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은 거부하는 입장은 이들이 이론적 오류로 인해 일관성 없는 병합주의자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런 이론적 오류는 1916년 아일랜드 반란에 관한 일부 좌파들 입장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영국의 식민지배에 맞선 아일랜드 반란을 일부 좌파들은 ‘폭동’, ‘도시 소부르주아 운동’으로 규정했다. 레닌은 사회혁명은 민족적 억압에 반대하는 소부르주아를 포함해 성격이 각이한 여러 계급·계층이 참여할 수밖에 없으며, 다양한 색조에도 불구하고 혁명전위가 이를 하나로 묶어세워 지도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위대한 해방 전쟁에서, 제국주의가 위기를 심화·확대시키기 위해 불러오는 단 하나의 재앙에 대해서도 그것에 대항하는 모든 인민 운동을 이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우리는 매우 가련한 혁명가일 것이다.” (99p)
■볼셰비키 내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경향 비판
레닌은 볼셰비키 내부 “부하린-퍄타코프(키엡스키)-보시 그룹의 비마르크스주의적·반볼셰비즘적인 태도를 겨냥하여” <발생하고 있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경향>, <키엡스키에게 보낸 회답>,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를 집필한다. 이들 그룹은 제국주의 시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부정하고, 당이 민족자결 요구를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레닌은 지금 새로운 경제주의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구 경제주의는 ‘노동자는 경제투쟁을, 자유주의자는 정치투쟁을’하자는 우경적 오류부터 ‘정치혁명 대신 사회주의적 변혁을 위한 총파업!’을 외치는 좌경적 오류까지 정치혁명을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새로운 경제주의도 이와 비슷하게 ‘자결권’에 반대한다는 우경적 오류부터 ‘우리는 최소강령(개량 투쟁)에 반대한다. 사회주의 혁명과 모순되기 때문이다’는 좌경적 오류까지 좌·우경을 넘나들고 있다.
레닌은 이런 사상이 마르크스주의와도,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와도 전혀 관련이 없고, 이것을 내버려두면 이데올로기적 혼란 및 ‘사적 분쟁’, ‘알력다툼’ 등으로 번지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에 철저하고 단호하게 이 문제를 규명하겠다고 밝힌다.
부하린은 사회주의가 민족적 억압을 철폐할 경제적 토대를 만들어내므로 당이 이 문제에 관한 정치적 임무를 정식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제국주의에서 자결은 실현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경제적인 이유때문인지 아니면 정치적인 이유때문인지는 밝히지 못한다. 또 자결이 조국방위로 이어진다며 자결을 부정한다.
레닌은 부하린이 과거 경제주의가 자본주의의 도래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연결 못시킨 것처럼 제국주의의 도래를 개량 및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로부터, 제국주의하에서의 민주주의적 요구의 ‘실현 불가능’이라고 하는 완전한 혼란이 생겨난 것이다.”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자들의 말처럼 제국주의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동시에 대중들 사이에서 민주주의적 열망이 생기고, 민주주의적 제도가 만들어진다. 제국주의의 민주주의 부정과 대중의 민주주의 지향이 서로 충돌하며 격화된다. 물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적 개조로는 타도될 수 없다. 경제적 혁명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경제적 혁명은 어떻게 가능한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훈련되지 않은 프롤레타리아트는 경제적 혁명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 (중략) 부르주아지로부터 빼앗은 생산수단을 민주주의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전체 인민을 조직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전체 근로인민 대중, 즉 프롤레타리아·반프롤레타리아와 소농민을 끌어들여서 그들의 대열, 그들의 힘, 그들의 국가 업무에의 참가를 민주주의적으로 조직하지 않고서는 실행될 수 없다.” (135p)
레닌은 제국주의를 타도할 경제혁명은 민주주의 투쟁으로 단련된 프롤레타리아를 필요로 하며,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폐지 및 관리는 이 프롤레타리아를 비롯한 전체 인민대중이 국가업무에 민주적으로 참가해야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제국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 반향의 각성과 성장은, 민주주의적 저항과 소요의 고조와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이 새로운 경제주의는 제국주의와 민주주의 투쟁의 상호관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자결은 실현불가능하다’는 둥 ‘제국주의 시대는 오로지 제국주의 전쟁만 가능하다’는 둥 구체적 분석은 뒤로 한 채 ‘제국주의’라는 암송한 단어만 되뇌며 사회주의 운동에 혼란을 주었다.
■감상정리
레닌이 ‘조국방위’를 비판하는 글을 심심치 않게 접했는데, ‘민족자결’에 관해 논의하는 건 이번 레닌전집 64권을 통해 처음 접했다. 아무래도 민족문제는 좌파 안에서도 꽤나 묵직한 쟁점이기에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읽게 되었다.
레닌은 민족자결 문제를 민주주의 일반의 문제로 바라보는 듯하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가 민족자결에 관해 취해야할 입장은 민주주의 요구에 대한 입장과 다를 이유가 없다. 민족자결, 혹은 조국방위는 시대에 따라, 공간에 따라 진보적일수도 반동적일수도 있다. 요컨대 한때 서유럽에서 일어난 민족전쟁은 진보적이었으나 제국주의 단계에 들어서는 민족억압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조국방위논리가 동원된다. 기만적인 민족전쟁과 진정한 민족전쟁은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데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자들은 모든 조국방위를 거부한다거나 제국주의 ‘시대’는 민족자결이 불가능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일반화된 문구를 들이밀고, 심지어 민족자결을 포함한 각종 민주주의 요구 전체를 불가능하다거나 불필요하다는 입장에까지 이른다. 레닌은 이들의 이론적 오류가 결국 실천적으로 배외주의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이 새로운 경제주의를 반박하는 중에 당시 혁명에 관한 레닌의 견해가 짤막하게 드러나는 부분도 꽤 흥미롭다. 조금은 코끼리 다리만지는 격 같지만 간단히 몇 자 정리해본다.
1)현재 주 타격 대상은 대국 부르주아지다.
폴란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피병합국들의 민족 전쟁을 거부하는데, 그 이유는 해당국가 내부에도 착취계급인 부르주아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닌은 “우리의 주적인 대국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모든 봉기를 반동적이지만 않다면 지지해야한다고 말한다.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모든 인민운동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2)소부르주아를 비롯한 다양한 계급·계층이 혁명 동력에 포함된다.
식민지나 반식민지의 민족봉기, 편견에 사로잡힌 소부르주아지 일부의 혁명적 분출, 낡은 사상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의 대중운동 등이 없는 순수한 사회혁명은 불가능하다. 이들의 참여가 없으면 어떤 혁명도 가능하지 않다. 이들은 각종 편견, 반동적 환상, 약점과 오류를 운동 속에 가져올 것이지만 혁명전위인 선진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이 대중투쟁을 하나로 묶어세우고 지도하게 될 것이다.
3)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주체는 민족자결을 포함한 민주주의 투쟁으로 단련된 노동계급이다.
국제주의적 입장에 따라 각국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국 정부에 맞서 내란을 일으켜야겠지만, 이들이 혁명을 수행할 힘을 갖기 위해서는 각국 노동자들이 보다 긴밀하게 결합해야 한다. 이 결합은 병합에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 촉진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훈련된 프롤레타리아트만이 경제적 혁명을 수행할 수 있다.
4)사회주의 건설은 전체 근로인민대중이 민주적으로 국가에 참여해야만 가능하다.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폐지하고, 생산수단을 관리하는 혁명적 과업들은 프롤레타리아뿐만 아니라 소농민도 포함한 전체 근로인민 대중이 민주적으로 조직되어 국가에 참여해야만 실행할 수 있다.
구 경제주의든, 새로운 경제주의든 이들의 공통점은 모든 것을 경제로 환원하고 정치투쟁을 거부하는 데 있다. 레닌은 사회민주주의 운동 내 이런 조류에 맞서 사회혁명에서 정치투쟁의 불가피함을 말한다. 국가와 정치권력문제에 있어서 레닌은 조야한 경제환원론을 거부한다. 사회주의 혁명은 각종 투쟁으로 단련된 선진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급계층의 대중운동을 필요로 한다. 이후 건설과정에서도 노동계급을 포함한 근로 인민대중이 민주적으로 조직되어 국가업무에 참여해야 한다.
정치투쟁으로 단련되고 형성된 계급연합이 정치혁명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사회혁명을 시작한다. 내식대로 투박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아무튼 100년도 전에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자들이 그 오류로 인해 레닌 말마따나 일관성 없는 병합주의자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오늘날은 과연 어떠한지 물어보게 된다.